월호

미국, 대한민국 핵무장 원하는 때 온다

[이근의 텔레스코프] 커가는 북·중·러 핵 위협…

  •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2024-07-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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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脫냉전 + 北붕괴 예상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했건만…

    • 북한·중국·이란 핵확산, 힘 부치는 美

    • 우방국 위해 핵전쟁 감수할 美 국민 얼마나 될까

    • 트럼프 집권 시 동맹국 핵무장 가속화 가능성↑

    • 韓, 언제든 핵무장할 준비 갖춰야

    21세기 들어 ‘수평적 핵확산’ 현상으로 북·중·러 수정주의 국가들의 핵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의 확장억지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Gettyimage]

    21세기 들어 ‘수평적 핵확산’ 현상으로 북·중·러 수정주의 국가들의 핵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의 확장억지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Gettyimage]

    핵무기(이하 핵)를 가진 두 국가가 전쟁한다고 가정해 보자. 선공하는 국가는 핵을 사용한 1차 타격에서 상대방을 궤멸하고자 할 것이다. 즉 상대방의 핵을 무력화하고 전쟁 시 가동되는 군사·산업시설을 파괴하며, 필요시엔 대도시를 파괴해 상대방의 반격 능력과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것이다.

    소련의 핵 개발이 초기 단계이던, 미국이 핵을 독점한 시기인 1945년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이러한 1차 타격 개념을 핵전략에 포함하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소련이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1차 타격에서 생존할 수 있는 다량의 핵을 보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에서 1차 타격능력(1차 타격으로 적을 궤멸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개념은 자취를 감춘다.

    폭격기, 잠수함, 지상에 핵을 분산하는 이른바 육해공 3각 체제(Triad)가 형성되면 1차 타격에서 3각으로 분산된 핵을 완전히 파괴함은 불가능해진다. 1차 타격에서 살아남은 핵을 가지고 보복하는 것을 2차 타격(second strike)이라고 하며, 2차 타격에서 인구·산업·군사력에 가공할 만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을 2차 타격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이라고 한다.

    이 2차 타격능력, 즉 보복능력 때문에 핵을 가진 두 국가 간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라는 억지(deterrence)가 성립한다. 내가 먼저 핵 공격을 하더라도 저쪽에서 핵 보복을 하기에 처음부터 핵을 쓸 생각을 못 하게 되는, ‘핵억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핵억지를 상호확증파괴(MAD·Mutual Assured Destruction)라고 한다. 미국과 소련 간에 이러한 상호확증파괴가 작동했기에 냉전기 강대국 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러한 ‘핵균형’ 시대에도 핵이 없는 국가들은 안보 부문에서 고충을 겪어야 했다. 특히 소련을 상대해야 하는 미국의 서유럽 동맹국들은 소련의 1차 핵타격에 대한 보복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에 프랑스는 아예 자체 핵무장을 했고, 미국은 독일·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튀르키예 등에 전술핵(tactical nuclear weapon)을 배치하는, 이른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공유’를 시작했다.



    한국에도 다양한 전술핵이 주한미군을 통해 배치돼 미국의 핵우산을 강화했다. 1991년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모든 전술핵이 한국에서 철수했다. 남과 북의 경제력·군사력이 역전됐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굳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일로 판단된다.

    한국 정부는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소 간에도 핵전쟁의 위협이 감소했고,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북한은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됐다고 여겼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도출해 낸 것이다.

    美, 수평적 핵확산에 敵 늘었다

    5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마친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이들은 “북한 등에 대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5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마친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이들은 “북한 등에 대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AP 뉴시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급반전하기 시작한다. 급반전을 주도한 국가는 북한과 중국, 확실한 엔진을 달아준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그리고 이젠 전후 오랫동안 초강대국의 권위와 능력을 독점해 온 미국이 동맹국과의 안보 분업에 더욱 의존하게 된 상황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에 북한의 핵이 가장 큰 안보적 위협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단연 미래 위협을 현실 시점으로 앞당긴 사건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미래 비전이다.

    과연 이 나라들이 핵을 실제로 사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핵의 ‘활용성’ 면에서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즉 핵을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사실 이 불안감이 그동안 억지력으로 작동해 왔지만)이 증폭되면서 비핵국가와 핵국가 간 긴장관계가 냉전기보다 더 심각한 형태로 재등장했다.

    현재 국제적 핵 분포가 냉전기의 그것과 근본적 차이를 가져오는 이유는 이제 미국이 자국의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다수 수정주의 국가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냉전기에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이 동서 간 세력균형이 성립돼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군사력·경제력을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이 압도적 힘의 우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소련이 2차 타격 능력을 가진 핵을 보유한 이후 미소 간 상호확증파괴가 성립되면서 ‘공포의 균형’이 생겼을 뿐이다. 핵이 힘의 차이를 일거에 보완해 준 셈이다.

    냉전기엔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나라는 소련밖에 없었다. 또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인도 등 민주주의 국가가 핵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군사력으로 국경선을 변경하려는 수정주의 세력이 아니었다(인도와 이스라엘은 좀 다르다). 게다가 핵 사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작동한 덕분에 핵이 실제 사용 목적보다는 억지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른바 수평적 핵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과 수직적 핵확산 (vertical proliferation)이 동시에 일어난다. 수정주의 세력인 북한이 핵을 갖게 되고, 이란도 핵개발을 시도하면서 핵은 수평적으로 확산됐다.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은 핵탄두 숫자와 종류를 늘리고, 중장거리 운반체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수직적 핵확산을 이끌고 있다.

    그간 중국은 주로 대도시와 산업시설에 핵 타격을 한다는 최소억지(Minimum Deterrence) 전략을 유지해 왔으나 핵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점차 군사시설과 군 관련 시설에 핵 타격을 하는, 이른바 ‘전쟁 시 상대국의 공격으로부터 자국의 피해 및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damage limitation)’을 목표로 전략 방향을 선회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수평적 핵확산과 수직적 핵확산은 한국에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수정주의 세력, 특히 북한·중국·러시아·이란이라는 수정주의 연대에 상당한 군사적 이점을 제공한다. 이제 민주주의 국가의 핵능력을 뛰어넘는 전체주의·수정주의 세력의 그것이 아시아와 유럽에 널리 분포하는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5월 17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국방공업기업소를 찾아 생산활동을 점검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 총비서가 “우리의 핵무력을 보다 더 급속히 강화하기 위한 중요활동들과 생산활동을 멈춤과 주저 없이 가속화해 나가라”고 주문했다고 5월 18일 보도했다. [뉴스1]

    5월 17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국방공업기업소를 찾아 생산활동을 점검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 총비서가 “우리의 핵무력을 보다 더 급속히 강화하기 위한 중요활동들과 생산활동을 멈춤과 주저 없이 가속화해 나가라”고 주문했다고 5월 18일 보도했다. [뉴스1]

    힘 잃어가는 美 확장억지

    상황이 이렇건만 동아시아엔 핵을 보유하거나 공유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중국은 과거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실지 회복’ 및 ‘영향권(sphere of influence) 구축’을 꾀하고 있으며, 잠재적 핵 국가인 북한과 이란이 이들에 연대해 전략적·경제적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연대는 군사적으로 가히 막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핵심 공급원인 대만을 중국이 병합하려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대만 유사 시 중국의 재래식 미사일이나 핵미사일이 한국의 주한미군 기지나 한국군 기지를 타격하도록 세팅돼 있다면 미군 혹은 한미연합군이 대만으로 이동하거나 참전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 중국은 미국 본토를 향하는 전략핵도 보유하고 있기에 미국의 참전은 자칫 잘못하면 초강대국 간 전쟁, 심지어 세계대전을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이 비군사적 전략과 군사적 전략을 섞어서, 수위를 서서히 높여가는 대만 병합을 진행한다면 우방인 민주주의 국가들은 리스크가 큰 군사적 지원보다 자국에 대한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위험회피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이 핵강대국이 비핵국가를 대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 핵 사용 위협으로 다른 민주주의 강대국의 직접 참전을 막으면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 즉 핵으로 향하는 긴장 수위 상승 전략(escalation)을 구사하면 미국을 위시한 민주 진영의 반격은 어려워진다.

    이러한 선례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줬으며 결국 민주주의 진영에서도 “전쟁 수위가 더 상승하기 전에 휴전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가 슬슬 나오고 있다. 지금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경선 안에서만 행해지고 있고, 러시아 국민은 평시와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여유마저 보이고 있다. 수정주의 세력이 핵강국이 되면 비핵국가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히 보여준 사례다.

    게다가 북한과 이란 등으로 수평적 핵확산이 발생하면서 수정주의 핵국가들은 서로 자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분업을 형성하면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북한·중국·러시아가 연대해 동시다발적으로 핵 사용 위협을 가하고, 이들 가운데 한 국가가 한국, 대만, 우크라이나 병합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유럽·아시아의 민주국가를 지키기 위해 잠재적 핵전쟁의 전선을 여러 개 형성해야 한다. 여러 국가에서 날아오는 핵을 앞에 두고 미국 국민 가운데 동시 확장억지를 지지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핵무장하면 명실상부 강대국

    한국은 핵 위협을 가하는 북한뿐 아니라 핵강대국 중국도 상대해야 한다. 제국의 향수를 가진 국가는 주변에 영향권을 구축하려 든다. 제국은 주변 국가를 자국에 충성을 바치는 위성국가로 만들어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제 시장이라는 무기와 더불어 군사력이라는 무기도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굳이 핵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이 뒷받침하는 강제력(coercion)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도를 그려갈 것이다. 또 한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해 국제사회에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집요하게 한국을 자국 세력권에 넣기 위해 손을 뻗어올 것이다.

    한국이 강대국이 되는 방법은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시장에서 힘을 키우는 것은 물론 동아시아의 ‘민주주의 핵강국’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제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여러 핵 전선을 동시에 상대하기 위해선 각 전선에 민주주의 핵 동맹국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하나의 세계시장으로 연결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선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 역시 큰 혜택을 보며 부강해졌다. 따라서 미국은 가까운 미래에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책임·의무를 민주주의 국가들과 더 공평하게 나누려 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그 경향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자국 국민의 희생 못잖게 민주주의 동맹국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는 ‘확장억지체제 민주화’를 시도할 수 있다. 물론 지금 확장억지를 제공함으로써 생기는 영향력을 미국이 쉽게 놓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또 하나의 작은 핵우산을 펴겠다”는 민주주의 강국이 나타나면 일정 부분 협상에 나설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아무리 전술핵을 배치해도 그 핵이 한국 것이 아니라면, 즉 핵 사용 권한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한 한국의 ‘핵 보복’이라는 카드는 약해진다. 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진 미국을 향한 전략핵이 여기저기서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이 국내 여론을 무시하고 자국 핵을 ‘안보 무임승차’ 동맹국에 제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는 확장억지력의 전반적 약화로 이어진다.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건재한 이상 자체 핵무장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돼 있다. 그리고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국제사회뿐 아니라 수정주의 핵국가와도 상당한 수준의 군사적·경제적 긴장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핵무장이라는 카드를 계속 살려놓으면서, NPT 체제와 미국의 확장억지가 흔들릴 때 가장 신속한 방법으로 핵무장하는 전략을 짜놓아야 한다. 물론 한국의 핵을 미국의 글로벌 확장억지체제의 한 부분으로 엮는 전략도 구상해야 한다. 이 전략이 실현되는 순간 한국은 그 어느 국가도 무시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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