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쇼’였나
16명이 사망한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성남시장 이재명의 집요한 ‘책임 회피’
정치 양극화 체제에서 환영받는 음모론
대선후보 반열에 오르게 한 ‘SNS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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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배우 김부선은 한겨레신문의 ‘김어준이 만난 여자’에서 변호사 출신 정치인과 데이트를 즐겼고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털어놓았다. “총각이라는데 그 인생 스토리가 참 짠하더라. 인천 앞바다에서 연인들처럼 사진 찍고 지가 내 가방 메주고 그러면서 데이트했다. 그러고서는 같이 잤지 뭐. 며칠 안 가서. 난 그때 급했으니까. 그렇게 나한테 적극적인 남자는 없었어. 진짜 행복하더라”라고 말했다. “‘여우 같은 처자와 토끼 같은 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라고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김어준은 “결국 그 ‘남자’가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단 걸로 맺음된다. 듣고 보니 유명 정치인이다. 하지만 실명은 내지 말란다. 그가 가진 권력으로 자신을 괴롭힐 거라고. 그저 말하지 않고선 억울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했단다”라고 설명했다. 당사자로 이재명이 지목되자 뜨거운 논쟁과 논란이 10년 넘게 벌어지지만, 여기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의 소개만 하는 걸로 끝맺고, 이후 다루지는 않겠다. 사실상 이젠 사건이 마무리된 데다 그 누구도 이 사건의 재론을 원치 않을 것 같아서다.
이재명의 공사(公私) 구분 의식
이번 호의 이야기는 2011년 11월 하순에 벌어진 작은 사건에서 시작해 보자. 그해 11월 25일 경기도 성남시의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 나선 시의원 이덕수는 “금년 10월 모 봉사단체 행사에 사모님이 관용차를 이용해 오셨는데, 공무원이 약 20여 명은 도열을 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얼마나 욕을 퍼부었는지 본 의원조차 낯이 뜨거웠다”면서 “사모님 홀로 관용차를 이용하는 것은 시민들은 반기지 않을 것이며 적절한 처신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모님께서 관용차량을 이용한다는 의혹과 관련해 시장 관용차 운행일지를 요구했는데 (시에서) 제출을 거부했다”면서 “시정을 감시 견제하라고 선출해 준 의원이 자료를 요구하는데 무엇이 두려워 공개를 기피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물론 이때의 성남시장은 이재명이었다. 약 10년 후인 2021년 9월 10일 이젠 경기지사이자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가 된 이재명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어떤 탄압에도 살아남기 위해 ‘부패지옥, 청렴영생’을 외치며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처신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재명이 자주 내세우는 자신의 강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엔 이재명의 공사(公私) 구분 의식이 투철했던 것 같진 않다.

2010년 7월 12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시청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한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라며 지불유예 선언을 했다. 성남시
지난 호에서 짧게 언급했던 ‘모라토리엄(채무 지급 유예) 선언’도 그런 괴리가 있는 사건이었다. 2012년 4월 20일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성남시의 ‘배째라’ 모라토리엄 선언, 현명했다”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재명은 자신의 모라토리엄 선언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성남시의회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은 “모라토리엄 선언 당시 현금 유동성 위기를 가져올 만한 채무 상환 독촉을 받은 증거가 없다”며 “모라토리엄 선언 자체가 꼼수”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공무원으로 당시 성남시 부시장을 지낸 박정오는 “(그때 공문을 보더라도) 국토부나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어느 기관도 성남시에 돈을 갚으라고 한 적이 없다. 당시 성남시 재정 규모와 재정건전성은 230개 기초단체 중 선두권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이재명이 한겨레(2015년 5월 30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내놓은 다음 말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모라토리엄 선언이 정치 쇼였단 지적이 있는 건 안다. 하지만 재정 감축과 구조조정을 하려면 시민들에게 성남시의 재정 상황을 충격적인 방식으로라도 알려야 했다. 나더러 쇼했다고 하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 덕에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고 재정 감축에 동의해 줬다.”
이재명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쇼’였나
이재명은 나중에(2017년 2월) 관훈토론회에서도 모라토리엄 선언이 ‘쇼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치적 이유에 의한 보여주기’라는 측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사실 그렇게 해서 저는 재정 구조조정을 3년 6개월 만에 끝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뭐 그런 측면, ‘정치적 쇼 아니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요. 쇼적 요소도 있습니다.”그런 ‘정치적 쇼’ 또는 ‘쇼적 요소’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은 없었을까. 이재명은 모라토리엄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2010년 12월 성남시 소속 12개 직장 운동경기부 해체를 결정했다. 이게 바로 성남시 소속이었던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하게 된 배경이다.
2010년 12월 13일 중부일보는 이재명이 직장운동선수 및 감독 40여 명과의 대화에서 “여러분은 나와 정치적으로 적이 될 것이다. 죽이고 싶겠지”라고 말하는 등 문제 있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여러분 3명의 인건비면 (고아들을 돌보는) 그룹홈에서 밥해 주는 취사 인건비 예산이 해결된다”거나 “전통이 오래되고 성남을 대표하는 하키, 육상 등은 유지를 하지만 여러분 대다수는 이대엽 전 시장 시절에 들어온 종목으로 알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시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취재기자는 “녹취록을 확보해서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발언은 모두 사실이다”라며 “다만 이재명 시장 측에서 전후 맥락이 빠졌다는 등의 이유로 언론중재위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월간조선’ 2014년 4월호)
어떤 이유에서 12개 직장 운동경기부 해체를 결정했건, 말을 꼭 그렇게 살벌하고 독하게 해야 했을까. 하지만 이게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이재명 스타일’인 걸 어이하랴.

2014년 10월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동 유스페이스 앞 환풍구 붕괴 사고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 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동아DB
16명이 사망한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박근혜 정권은 위기에 몰렸지만, 50일 후 치러진 6·4 지방선거 결과는 뜻밖이었다. 세월호 충격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광역단체장 기준으로 8곳, 새정치민주연합은 9곳에서 승리했다. 전국의 22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새누리당이 117곳을, 새정치민주연합이 80곳을 이겼다.경향신문은 ‘새정치연합은 ‘선거 민심’ 제대로 읽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광역단체장에서 ‘9대 8’, 기초단체장에서 ‘80대 117’의 지방선거 결과를 야당의 승리라고 매길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심판론’을 내걸었으나 분노한 민심조차 대변하지 못했다. 대안 세력으로서의 능력과 신뢰감을 시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세월호 심판론’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심판으로 귀결되지 않은 것은 야당의 무기력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재명은 이 지방선거에서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으며, 이후 시정 운영을 착실하게 잘 해나갔다. 자신을 띄우는 홍보술 솜씨는 날이 갈수록 진화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4년 10월 17일 판교 환풍구가 무너져 27명의 사상자가 나온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별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 전말을 좀 살펴보자.
10월 17일 오후 5시 50분경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위치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광장에서 걸 그룹 포미닛이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근 건물에서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관람객 27명이 해당 건물의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환풍구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환풍구가 붕괴하면서 올라가 있던 인원 전원이 지하 18.7m로 추락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최종 집계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 후 6개월 만의 참사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사고 닷새 후인 10월 22일 국회 안전행정위 국정감사에서 경기지사 남경필은 “경기도에서 일어난 사고인 만큼 책임을 지겠다”고 한 반면, 이재명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17년 12월 20일 전 경기부지사 박수영이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참사 비화(秘話)를 공개했다.
왜 3년여가 지난 시점에 비화를 털어놓게 된 걸까. 그는 “(세월호 때문에) 6개월간 사회가 어지러웠는데 또다시 환풍구 붕괴 비화를 끄집어내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도 많이 지나 세월호도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이재명 시장이 도지사로 출마한다고 한다. 이 시장은 40% 가까운 지지율을 받는 등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유권자들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알권리’를 (내가) 충족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판단은 시민들이 할 일이지만, 알 것은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박수영의 인터뷰 내용은 이재명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어 유익하며 동시에 재미도 있어 길게 소개하고자 한다. 주요 내용은 검증 가능한 것이어서 그대로 싣지만, 그래도 박수영의 정치적 이력으로 인한 정파성의 개입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니 독자 스스로 이 점은 감안해 주시기 바란다(박수영은 행정고시 관료 출신이지만 2015년 9월 부지사 퇴임 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기도 수원시 정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인터뷰 당시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수영은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독일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 타고 있는 시간에 벌어져 부지사인 내가 앞장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돌 그룹 공연 다음 순서가 이재명 시장의 축사였다. (이 시장이) 현장에 있었다는 얘기다. 나는 예산 심의 도중 보고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오후 6시 30분께 도착했다. 사고 환풍구 바로 옆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의 작은 책상에서 나와 이종훈 국회의원, 이재명 시장, 그리고 경기도 소방본부장이 긴급 현장 회의를 했다. 피해자 중·고등학생은 없었는데, 일부 언론이 세월호처럼 학생들 피해가 있는 것 같다는 보도를 하고 있어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대변인을 통해 팩트를 알리는 게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재명의 집요한 ‘책임 회피’
이재명과 박수영 사이에선 3개의 갈등이 벌어졌다. 모두 다 ‘책임 회피’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재명이 아예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시도를 집요하게 한 것이다. 이를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생활화’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생업을 위해 일하는 사인(私人)이 그런 자세로 일한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재명과 같은 공인(公人)은 다르지 않은가.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공직을 맡겠다고 나섰는가?”라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럼에도 이재명의 그런 시도는 다 이재명의 뜻대로 관철됐으니, 이재명이 적어도 그런 면에선 탁월한 능력자였다고 볼 수 있겠다.
2014년 10월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청에서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가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 장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에 대해 “경기도에서 발생한 사고는 모두 도지사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동아DB
“이 시장에게 대책본부장을 맡으라고 하니까, (이 시장이) 펄쩍 뛰면서 ‘성남이 아무 관계도 없는데 내가 왜 대책본부장을 맡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법령이 그렇게 돼 있다고 해도, 사고가 성남에서 난 것이 아니냐고 해도, 현장에 있었던 분이 아니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시간은 흐르고 언론은 밖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고, 어찌 됐든 빨리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도지사와 시장이 공동대책본부장을 하자’는 중재안을 냈고, 이 시장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둘째, 대책본부를 어디에 설치하느냐는 문제도 논쟁거리였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춰 성남시청에 설치하자고 얘기했더니 또 이재명이 펄쩍 뛰었다고 한다. “‘성남이 무슨 책임이 있다고 성남에 설치하느냐, 이 사고와 관련해서 성남의 ‘ㅅ’자도 꺼내지 말라’면서 말이다. 시간이 급하니 할 수 없이 내가 양보해서 분당구청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게 된 것이다. 그전까지는 이 시장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결정적 순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드니까 적잖게 실망했다. 이건 책임의 문제가 아닌 수습의 문제가 아닌가.”

2014년 10월 22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 사고 관련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동아DB
“‘경기도 판교 환풍구 사고 대책본부’로 돼 있었다. ‘성남시’라는 글자가 아예 없었다. 마치 성남시는 전혀 관련이 없고 경기도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부시장을 불러 ‘성남시가 없어졌냐, 판교가 경기도 직할이냐’고 질책했더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마도 시장에게 보고하고 문구를 만들었는데 부지사가 질책하니 중간에 끼어 입장이 곤란했던 모양이다. 결국 총리 올 시간이 다 돼가고 해서 앞부분 경기도를 잘라내고 경기도도, 성남시도 없는 ‘판교 환풍구 사고 대책본부’로 만들어 붙이고 총리를 맞게 됐다.”
박수영은 비화 중 핵심이라며 이재명이 유족 대표 등과의 합의문에 사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총리 방문 후) 사흘간 성남시가 잘 도와준 것은 사실이다. 김밥이라든지 생수라든지 팩스나 컴퓨터 설치 등 대책본부가 기능할 수 있도록 잘 도와줬다. 그 사흘 동안 유족 대표들과 여러 차례 회의가 있었다. 언론에 많이 알려졌던 것처럼 사고는 금요일에 발생했고, 월요일 새벽 3시 30분에 57시간의 협상이 완료되고, 그날 새벽 발인을 마침으로써 사고 수습이 종료됐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벽 협상이 종료되고 경기도, 성남시, 행사 주체인 E언론사, 그리고 유족 대표간 합의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일은 또 벌어졌다. 이 시장이 사인을 못 하겠다고 버텼다. ‘성남시가 무슨 책임이 있다고 합의서에 사인을 하느냐’면서 말이다. 경기도청에 최종 합의문 문서가 있다. 도청에 문서공개 청구하면 부지사인 나와 행사 주체인 E언론사 대표, 유족 대표의 사인은 들어가 있는데 성남시장 사인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수영은 합의 발표 당시와 이후 이재명의 행보에 대해서는 ‘금도(禁度)’를 어긴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월요일 아침 10시 합의 발표가 있었다. 모든 언론, 방송이 왔고 유족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음을 발표해야 했다. 이재명 시장이 오더니 발표는 자기가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합의서에 사인도 안 하고 책임도 없다던 분이 웬 발표냐’고 했더니 ‘그래도 명색이 공동대책위원장인데 TV에 한번 나가게 해달라’고 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사람이 모질지 못하고 사흘 동안 성남시청 공무원들이 고생한 것도 있고 해서 타협안을 냈다. 이 시장은 시작할 때 짧게 합의가 원만히 이뤄졌음을 얘기한 뒤 빠지고 합의 내용은 유족 대표가 발표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 시장은 좋아라 하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TV 생중계에 나온 이 시장은 새벽에 한 약속은 깡그리 무시하고 합의 내용까지 본인이 전부 발표해서 10분가량의 생중계 시간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유족 대표는 이 시장 발표와 중복되는 얘기를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생중계라 중간에 자를 수도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지난번 대선 때 보니 유튜브 등에 (이 시장) 본인이 판교 환풍구 사고를 수습한 영웅인 듯한 동영상을 올려놓았던데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 금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정치 양극화 체제에서 환영받는 음모론
박수영은 2023년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나중에 나와 유족 대표가 이재명 시장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1분만 연설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따지니 그는 씩 웃으면서 ‘우리 부지사님은 정치를 너무 몰라요’라고 말하고 가버리더라. 사상자가 나온 사건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대표가 공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박수영에 비해 정치를 잘 아는 이재명은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가 일어난 지 약 70일이 지난 2014년 12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자라고 확신한다”라는 주장을 펼쳐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재명 성남시장 “세월호 주인은 국정원” 주장에 인터넷 후끈’이라는 한겨레 기사 제목 그대로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재명은 이미 보수 쪽에선 불신의 아이콘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 ‘채널A 뉴스’ 기사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 시사해 준다. “18대 대선을 ‘헌법질서를 파괴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종북 콘서트 논란을 빚은 황선 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조언하는 등 각종 돌출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온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이번에는 지난 4월 침몰한 세월호와 관련된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정부와 검찰의 수사 결과를 전면 부정한 것입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새누리당 의원 하태경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건 거의 입원해야 될 상태로 보이는데요”라면서 이재명을 비난하자, 이재명은 이에 대해 “이해해 달라. 그래야 변절자를 믿어준다. 끊임없이 충성심을 보여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하태경은 “논리가 안되면 꼭 욕을 하는 분들이 있다”라고 했지만, 이재명의 이런 논법 또는 화법은 자기 진영에선 잘 먹혀드는 것이었다. 이재명은 자신을 비난하는 누리꾼에게 “관운장 따라 함부로 청룡언월도 휘두르다간 허리 부러지는 수 있다”는 ‘협박’ 댓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 또한 지지자들의 전투 의욕을 자극하는 이재명 나름의 기법이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한 당시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불신은 곧 진보진영의 환호를 의미했다. 특히 음모론은 적(敵)의 사악함을 시사하고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어 강성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경향신문의 관련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성남시민 부럽습니다. 진정 깨어 있는 저런 분을 시장으로 모시고 싶네요.”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한 ‘SNS 정치’
2015년 3월 성남시는 그해 하반기를 시작으로 2018년까지 수정·중원·분당 3개 구에 저소득층, 다자녀 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해 무상으로 운영되는 공공 산후조리원을 설치·운영하겠다고 밝혔다. 8월에는 성남시가 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무상으로 교복을 지원하는 내용의 무상교복 전면지원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한다.이재명은 이런 새로운 진보적 정책과 더불어 본격적인 ‘SNS 정치’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런 지명도를 업고 2015년 3월 27일 김어준의 ‘파파이스’ 43화에 출연해 성남의료원 설치, 무상 산후조리 사업 등의 복지 사업에 관한 자신의 철학과 앞으로의 비전을 설명해 나갔다. 이에 ‘나꼼수’ 김용민은 이재명에게 “대통령이 되면 전국적인 무상 산후조리원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이재명은 “산후조리원 뿐만이 아니라요. 그전에 작살을 좀 내야죠”라고 말해 녹화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재명의 발언에 김용민·김어준은 한동안 멍하니 이재명만을 바라보았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박수가 쏟아졌다.
이는 이재명이 얻은 여러 별명 중 하나인 ‘작살’이 생겨나게 한 사건이었지만, 열성적인 팬덤을 구축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나중에 언론은 ‘사이다 발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그건 ‘사이다’ 이상의 것이었다. 한 지지자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며 환호했는데, 이렇게 전율한 지지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지지자들의 온몸에 전율이 일게 만드는 언행을 하는 건 이후 이재명 팬덤 정치의 실천 강령처럼 됐다. 이재명이 병역 회피와 입국 금지 문제로 논란을 빚은 가수 유승준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매우 거친 공격을 퍼부은 것도 그런 원칙에 따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2023년 3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일화에 대해 발언하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전 경기도부지사). 지호영 기자
5월 19일 유승준은 인터넷 방송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군대를 가겠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아이들과 함께 떳떳하게 한국땅을 밟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이재명은 다음 날 “그게 진심이라면 그대는 여전히 심각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우습게 아는 교만한 사람”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외국인 한 명을 위해 오천만에게 적용되는 대한민국 법을 고치거나 법을 위반하라고 하는 것”이라며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그대는 눈물에 약한 한국민의 착한 심성을 악용해 또다시 능멸한 것”이라고 비난했다(유승준이 국적 회복을 하더라도, 그는 이미 만 39세로, 군 입대할 수 있는 나이 상한인 만 38세를 넘긴 상태라 입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이재명이 눈물을 흘릴 때마다 ‘눈물에 약한 한국민의 착한 심성을 악용’ 운운한 이재명의 발언이 소환되곤 했다).
이재명은 한겨레(2015년 5월 30일자) 인터뷰에서 “굳이 안 나서도 될 분야까지 나서 논쟁을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가수 유승준의 귀국 문제까지 나서서 비판할 필요가 있나. 유승준이 성남시로 이사 오겠다는 것도 아닌데”라는 질문에 대해 “국가 공동체를 지키고 무질서를 바로잡는 건 성남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런 사회적 책임감도 있었겠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런 치열한 노력에 힘입어 이재명은 2015년 5월 기준 트위터에서 12만7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SNS 스타’로서 다양한 사회 이슈에 직접 ‘돌직구’ 발언을 던지고, 연예 매체까지 발언을 중계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 됐다. 한국갤럽은 이미 2015년 5월 초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와 함께 그를 대선후보로 분류했다. 야권 정치인 중 4위권에 늘 오르내리던 충남도지사 안희정을 제치고 그가 그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기초자치단체장이 대선후보로 분류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더도그 이재명의 놀라운 승리
그것만으로도 언더도그의 놀라운 승리였다. 사실 한국은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인지 몰라도 정치에서 언더도그 출신을 우대하는 세계 최고의 ‘언더도그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출간된 이재명 홍보용 책들이 한결같이 그의 소년공 시절을 비롯한 고난과 시련의 세월에 초점을 맞춘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인간 승리 스토리는 지지자들의 온몸에 전율이 일게 만들곤 했다.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강성’인 정청래마저 ‘인간 이재명’이란 책을 “흐느끼며 읽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나중에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기득권 세력의 소년공이라는 출신 배경에 대한 편견과 반감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이는 진실인가. 이미 상업고등학교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언더도그 공화국’에서 그게 말이 되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소년공 출신 배경엔 ‘정의로운 진보’라는 후광이 부여되며, 자신을 언더도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재명에 대해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다음 호에 계속)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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