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집중기획 | 중국은 적인가, 친구인가

반미정서 + 사대주의 ‘적(美)의 적(中)’은 친구?

한국 진보는 왜 親中일까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6-08-23 11: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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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에 굴종해야 생존’ 논리 전파
    • 사회주의 국가 동경
    • 속으로 ‘북한 핵무기’ 지지
    한국 사회의 진보세력은 친(親)중국이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을 거치면서 분명해진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어렴풋하게나마 보수 진영이 친미국 성향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 신한국당 출신 대통령과 대통령후보가 모두 미국을 가장 중시했다. 보수 단체가 서울시청 앞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면서 집회를 하는 장면도 쉽게 연상된다. ‘보수=친미’ 등식은 한국에선 거의 틀림없는 사실인지 모른다.

    우리는 진보 진영이 친중국 성향일 것이라고는 쉽게 예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사드 논란을 통해 ‘진보=친중’ 등식이 확실히 성립되고 있다.



    반대하지만 표 때문에…

    사드 배치 찬성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 데 동의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신뢰가 근저에 깔려 있다. 사드 배치 반대는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니 중국을 위해 사드 배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중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드 배치 반대는 미국보다 중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태도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단순화한 논리이긴 하지만, 사드 배치 찬성은 친미에 가깝고, 사드 배치 반대는 친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7월 8일 사드 배치 선언 이후 이를 적극 추진하거나 지원하고 있으니 친미 성향임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야권과 진보 진영은 대체로 사드 배치에 반대하니 친미보다는 친중에 훨씬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사드 배치에 대해 명확한 반대 당론을 천명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지식인, 유명 인사들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 연예인 김제동이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에 내려가 “대통령도 외부세력”이라고 말한 게 좋은 예다.

    야권의 맹주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더민주당은 “국민이나 야당과 사전에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며 양다리를 걸쳤다. 이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재밌다. ‘집권하기 위해서’란다. 속으론 사드 배치 반대인데, 중도 성향 유권자의 표를 얻어야 하니 적어도 외형적으론 이도저도 아닌 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더민주당의 속마음이 사드 배치 반대라는 것은 쉽게 확인된다. 이 정당의 실질적 대주주인 문재인 전 대표는 개인 성명에서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결정이라고 판단한다. 재검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드 배치 반대를 천명한 셈이다.



    “손혜원의 뻘짓거리”

    더민주당의 주류인 친노무현 그룹도 기다렸다는 듯 같은 행보를 보인다. 차기 당 대표 후보들도 모두 ‘반대’를 외친다. 추미애 의원은 페이스북에 사드 배치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린 데 이어 야당의 반대와 국회의 동의 요구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은 아예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이 정당의 초선의원 6명이 성주를 방문해 반대시위에 참여하더니 ‘중국에 이용당할 것’이라는 청와대의 만류에도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더민주당 원내대표가 방문 결과 보고서도 못 내게 할 정도로 성과는 미미했던 것 같다.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중·고교 동창으로 대표적인 친문재인계 인사인 손혜원 의원도 이들 6명 중의 한 사람이다. 손 의원은 ‘사드 반대 10만 명’ 서명을 받아 미국에 전하는 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문 전 대표의 인재영입 1호인 표창원 의원은 “더민주당이 그동안 사드 배치 반대를 제대로 못 하고 겁쟁이가 돼 있었다”고 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더민주당 역시 실제 성향으로는 ‘사드 배치 반대 및 친중국’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사람의 진면목은 평상시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결정적 순간’에 드러난다. 사드 논란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여권과 보수 진영은 친미라는, 야권과 진보 진영은 친중이라는 자신의 진면목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손혜원 의원의 10만 서명 전달 운동은 도가 지나친 ‘뻘짓거리’ 같다. 더민주당이 참고 참았던 본색을 이제야 드러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진보는 왜 친중일까. 이런 의문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여러 지식인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의 진보가 친중인 것은 ‘반미(反美)정서와 사대(事大)주의의 결합’에 따른 산물이다.



    중국에 경도된 NL계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의 상당수 인사는 기본적으로 ‘북한 정권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미국을 싫어하는 성향’을 공유하는 것으로 비친다. 친노·친문계의 뿌리는 1980년대 학생운동권이다. 1980년대 전반기 운동권과 후반기 운동권은 성격이 다르다. 후반기 운동권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좋게 보는 NL(민족해방)계열이 주도했다. 종북 논란의 주사파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성향의 운동권이 친노·친문계의 주축이 되다 보니 친노·친문계는 줄곧 종북 논란에 휩싸여왔다.  



    친노·친문계는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킬 때 선거운동 실무 라인을 담당하면서 이른바 노풍(盧風)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참여정부’의 산파역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서 국회에 대거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사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북한의 핵 보유 논리에는 일리가 있다며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인도의 핵 보유는 용인하면서 북한은 왜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불안하다고 느끼냐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 해도 불안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진보 진영은 대체로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논리를 가졌는데, 노 전 대통령도 이를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 지금도 진보 세력은 이 논리를 자주 들먹인다.

    북한이 미국을 적으로 여기기에 북한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NL계 출신들도 미국을 적으로 여겼다. 이들 운동권은 한반도에서 몰아내야할 대상을 ‘미 제국주의자’로 규정해왔다. 이런 뿌리의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은 지금도 마음속으론 반미정서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이들의 관점에서 중국은 ‘적(미국)의 적’에 해당한다. 적의 적은 친구이니, 이들은 쉽게 중국에 경도될 수 있는 것이다.

    진보 진영의 상당수 인사들은 중국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동경해 마지 않던 사회주의 체제 국가라는 점 때문에 친중 성향을 갖기도 한다. 1990년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이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레닌에 심취한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 주축인 한국 진보 세력들은 아직도 사회주의에 향수를 느끼는지 모르겠다.  



    ‘대국론’의 허상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이 중국의 시각을 대변하면서 내세우는 가장 중요한 논리는 ‘대국(大國)론’이다. ‘중국은 한국에 이웃한 대국이니 한국은 중국의 뜻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던 것을 연상시키는 사대주의의 연장선이다.

    진보 진영은 “중국이 한국에 경제적 보복을 가하면 한국은 경제위기에 빠질 것이다”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면 한국은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공포심을 조장하면 의외로 대중에게 잘 먹혀든다.

    이어 진보 진영은 ‘중국에 어느 정도 굴종해야 한국은 생존한다’는 논리를 전파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설령 사드 배치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의 생존권 확보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필 대국인 중국의 핵심 이익에 반하므로 한국은 당연히 중국에 양보해야 하는 것’이 된다.

    진보 진영은 한국 대중을 미국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공포심, 불안, 생존욕구를 교묘히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대주의는 가장 봉건적이고 퇴행적인 적폐라는 점에서 진보적 가치와는 상극이다. 한국 진보 진영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는지 모른다.

    진보 진영을 비판하고 심지어 불신하는 몇몇 이론가는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친중 성향을 보이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묻는다.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은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해주기 위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친중 성향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하는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친중 성향을 보이면 한국은 남남갈등에 휩싸인다. 이것만 해도 북한에 이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이 드높아져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철회되면 이것은 북한에 결정적으로 이로운 일이 된다. 북한 핵·미사일의 효용성은 훨씬 커지고 한미 군사동맹은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北 돕기 위해 사드 반대?

    진보 진영 인사 상당수는 노무현의 발언에서도 확인되듯이 속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옹호하고 북한의 자주권을 지켜주는 데 열성인지 모른다. 이런 그들이 실제로는 북한을 도와주려는 목적에서 사드 배치 반대에 나선다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론으로 돌아가서, 더민주당 대표 후보들은 왜 사드 배치에 반대할까. 문심(文心)을 얻기 위해서, 나아가 표밭인 친노·친문계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민주당 지지층의 다수(65.9%)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

    많은 국민이 보수 정권 10년에 실망했다. 만약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이겨 집권하면, 이들은 과연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까. 친노·친문계와 진보 진영의 반미·친중 편향성이 사실이라면, 심히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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