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근 몇 년간 한·일 양국은 밀월관계를 누리고 있다. 특별한 쟁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계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활발한 문화교류가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일 양국이 월드컵을 끝낸 뒤 지금처럼 좋은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02년까지는 걱정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위협하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역사 교과서 왜곡 현상이다. 아직 그 심각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문제는 한·일 관계의 시한폭탄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은 늘 과거사에 대한 인식 차와 독도로 대표되는 영토문제였기 때문이다.
20년 전으로 후퇴한 日 역사 교과서
일본의 중학교는 2002년부터 현재의 97년판 대신 새 역사 교과서를 사용한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한 출판사와 기존의 7개 출판사가 2002년판 중학교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 역사 교과서의 기술내용이 일본의 침략사실을 부인하거나 왜곡하는 등 기존 역사 교과서보다 훨씬 후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97년판에서 종군위안부에 대해 모두 기술했던 기존 7개 출판사의 교과서 가운데 6개사가 관련 내용을 삭제하거나 표현을 바꾸었다. 기존 교과서는 또 이번 검정 신청에서 난징(南京) 대학살, 731부대,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조선의 항일운동 등에 대한 기술도 완전히 삭제하거나 표현을 애매하게 바꾸었다.
특히 이 교과서들은 ‘침략’이라는 표현을 ‘진출’로 바꾸거나 아예 삭제해버렸다. 이는 ‘침략’과 ‘진출’이라는 표현을 놓고 빚어졌던 82년 ‘일본 역사 교과서 파동’ 이전으로 회귀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 일본 문부성은 한국과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를 배려해서 기술한다”는 ‘근린 제국(諸國) 조항’이라는 것을 신설해서 검정에 임했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들어가고 ‘침략’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도 이 조항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같은 배려를 완전히 무시하고 20년 전으로 후퇴했다.
더 큰 쟁점은 기존 교과서보다 이번에 처음으로 검정 신청을 한 새로운 교과서다. 초강경 우익 인사들로 구성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저술한 교과서가 바로 그것. 출판사는 일본 우익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산케이 신문사 계열의 후요샤(扶桑社)다.
극우파 ‘새로운 역사… 모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96년 12월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전기통신대 교수를 회장으로 창립 기자회견을 갖고 이듬해 1월 정식 발족했다. 이들은 기존의 역사관을 ‘자학(自虐)사관’이라고 몰아붙인다. 일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저자세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자유(自由)사관’이라고 하며, 철저히 ‘자유사관’에 입각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니시오 회장은 그 전 단계로 지난해 10월 ‘국민의 역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77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의 침략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일본의 행위를 미화하는 내용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 책을 근거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신청했다.
이 책은 최소한 6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역사관에 박수를 보내는 일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보인 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설마 ‘국민의 역사’를 그대로 교과서에 담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빗나갔다. 따라서 이 교과서는 기존 역사 교과서보다 훨씬 왜곡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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