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1일 세상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납꽃게 사건’은 지금껏 해결되지 않고 미궁에 빠져 있다. 사건 직후 양국 합동 조사단이 구성되었지만 무엇 하나 시원스레 밝혀낸 것이 없다. 우선 한국 외교부가 이 사건을 쉬쉬하고 있다. 이는 중국 외교 당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외교 당국은 이 사건과 관련해 ‘신동아’의 공식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서울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한·중 양국 외교부가 이 문제를 서로 덮자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국 외교 당국이 이를 밝힐 의지가 없기 때문에 사건은 그야말로 기억 저편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던 중 ‘신동아’는 중국 외교 소식통을 통해 사건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정보를 접했다. 지난 추석날인 9월12일 주한중국대사관 우다웨이(武大僞) 대사는 주한 중국인들을 불러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일 모레 내가 한국 외교부에 항의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을 납꽃게로 비난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였다. 꽃게는 북한산으로 밝혀졌고, 우리 당국이 관련자를 체포했다. 관련자 10명 가운데 4명이 북한인이다. 납꽃게의 98%는 북한산이고, 납도 북한산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총괄 기획은 한국인이 했다”고 말했다.
우대사는 이보다 앞선 9월8일에도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아시아·태평양 정책연구회’ 초청강연회에서 납꽃게 사건과 관련해서 “꼭 중국 상인이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언론에 우대사의 발언에 항의하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우대사는 무슨 이유인지 더이상 해명하지 않았다.
또 다른 주한중국대사관 당국자도 ‘신동아’가 요청한 비공식 인터뷰에서 납꽃게가 북한산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 당국자는 “8월21일 납꽃게 파동이 일어난 지, 1주일 안에 중국의 대외무역부·공안부·상품수출입검사국·세관 등 5개 부서로 구성된 조사단이 단동에 가서 조사했다. 조사한 결과 한국 시장에 팔리는 꽃게는 이미 중국 연근해에서는 자원이 사라져 잡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그 꽃게는 모두 북한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것도 중국회사가 북한산 꽃게를 수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람이 직접 단동으로 와서 한국으로 들여가는 식이었다. 단동은 단순히 포장만 하는 장소였고 현장 활동가도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이 모든 진상을 파악했고 이를 공개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 진상을 공개하면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냥 덮었다. 중국이 납꽃게가 북한산이라고 공개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한반도의 남북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제일 원칙은 남북관계 완화에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수산업자가 중국 수산물 인상을 나쁘게 하려고 북한 사람과 같이 꾸몄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중국은 진상 조사 결과를 한국 외교 당국에는 통보하되,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기로 했다. 현재도 납꽃게 문제를 조사하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더라도 남한과 북한, 중국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공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당국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납꽃게는 북한산이고, 범인은 북한인이나 한국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견해는 한마디로 ‘납꽃게는 중국산이고 중량을 늘리기 위해 중국 어민이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인천지방검찰청 반부패특별수사부는 사건 관련자로 수산물 수입업체 ‘이십일세기 상사’의 한국인 수입중개업자 양아무씨(43)를 식품위생법위반으로 구속 수사중이다. 그러나 양씨는 중국 현지(중국 동항: 단동의 위성도시)에 거주하며 꽃게 냉동공장에서 꽃게를 모아 국내 수입업체에 넘겨주는 수집상이었을 뿐 납을 직접 투입한 범인은 아니다.
인천지검 특수부 김광로 부장검사는 “양씨는 납을 넣은 범인이 아니라 현지 수집상이다. 그를 구속한 사유는 중국 현지에서 냉동꽃게를 수집할 당시, 납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국내 수입상에 이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씨는 이 혐의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 현장은 중국 단동이다. 인천 지검은 직접 현지 수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상을 밝혀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사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해양수산부는 주중한국대사관 관계관(참사관, 해양수산관, 관세관)을 8월21일∼9월1일 사이에 중국 현지인 단동, 위해 지역에 파견하여 실태를 조사했다. 해양수산부 어업정책국 관계자는 “당시 조사단이 중국의 수출업자, 현지 검역당국과 면담한 결과 납을 넣은 것은 중량을 늘리기 위한 현지 어민들의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산인가 북한산인가
주중한국대사관 조사에 따르면 납이 검출된 꽃게·복어·병어 선적지가 단동지역에서부터 산동성(위해), 절강성(하문) 등 중국 전역이라는 것이다. 신의주와 맞붙어 있는 단동 지역에서만 납이 나왔다면 북한산이라든지 북한어민 소행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중국 전역에서 수입된 수산물에서 납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중국 어민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주중한국대사관 조사 결과 납복어의 경우 복어잡이 그물이 1회용이며 값이 싸서(한화 약 9000원), 어민이 중량을 늘리기 위해 폐어구 납추를 넣었을 가능성이 크며, 복어 한 마리당 250g을 넘으면 50위안이고 250g 이하는 30위안이므로 조금만 무게를 늘려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한·중 외교 당국이 문제를 쉬쉬하고 있지만, 물밑 의견차는 분명하다. 중국은 납꽃게가 북한산이고, 범인이 한국 또는 북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은 북한산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중국측 소행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납이 검출된 꽃게가 중국산인가 북한산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자. 이를 위해서는 꽃게의 서식지와 생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꽃게는 서해 바다에서 주로 서식한다. 동해바다는 영덕대게처럼 몸통에 견주어 다리가 상대적으로 긴 종류가 잡힌다. 동해에서 나는 게는 서해게보다 크기도 크고 껍데기도 부드러워 먹기가 훨씬 수월하다. 반면 서해에서 잡히는 게는 크기가 작고 껍데기도 단단하다. 당연히 상품 가치는 동해 것이 서해 것보다 높다. 서해에서 잡히는 게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꽃게다. 중국 쪽에서 잡히는 꽃게는 한국 꽃게보다 크기가 작고 다리도 짧고, 껍데기도 딱딱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이 게를 중국인들은 ‘팡세’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요릿집에서는 매우 비싼 값을 받는다.
꽃게는 북위 31도 이북 서해 바다에서 잡히는 것이 상등품이다. 북위 31도 이북이면 중국 연안이든 한반도 연안이든 잡히는 종류가 같다. 황해 바다 중에서도 꽃게가 사는 곳은 수심 20∼25m의 대륙붕 바닥이고, 그것도 육지의 강물이 바다와 섞이는 곳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은 꽃게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더구나 육지에 홍수라도 나면 강을 통해 온갖 부유물이 바다로 흘러내려와 더할 나위없는 서식처가 된다.
이는 과거의 꽃게 어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70년대 당시 한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꽃게가 나는 곳은 목포 앞바다였다. 이는 영산강 때문이었다. 영산강의 민물이 진도까지 흘러갔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하루에 꽃게를 2만kg이나 잡았고,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영산강 하구에 둑을 쌓는 바람에 민물 공급이 끊겼다. 꽃게도 사라졌다. 군산 앞바다의 안마도, 고군산열도, 연도 부근도 좋은 꽃게 어장이었다. 이곳도 금강에서 흘러나온 민물 덕분에 형성됐던 것인데 금강 하구에 둑을 쌓는 바람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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