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5월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에스크리바 신부의 시복식 광경.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자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개봉된 영화 ‘다빈치 코드’로 유명세를 탄 가톨릭 조직 ‘오푸스데이(Opus Dei)’는 ‘하나님의 사업’이란 뜻을 지녔다. 댄 브라운의 원작소설은 오푸스데이를, 가톨릭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살인을 일삼고 극한의 고행을 행하는 은밀한 조직으로 그렸다. 그런 오푸스데이가 실존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세간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하다. 교황의 은밀한 밀사, 21세기에 그런 조직이 존재하다니….
“암살자 집단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오푸스데이 회원인 박재형씨는 “오푸스데이는 가톨릭 내 수많은 단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오푸스데이는 ‘비판서적만 참고해 그려낸 엉터리’라는 반박이었다. 오푸스데이가 존재하는 건 맞지만 왜곡된 표현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말 피가 날 정도로 채찍질을 하느냐” “비밀 결사냐”고 사람들이 묻는 통에 답답해 죽을 지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푸스데이는, 1928년 스페인의 성인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신부(Jose Maria Escriva·1902~75)에 의해 설립된 후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60개국에 8만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오푸스데이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도사가 아닌 평신도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것. 세속의 평신도도 수도사와 같은 성스러운 삶을 살면 거룩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근본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가톨릭 극우파’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오푸스데이의 조직은 크게 신부, 회원, 협력자로 구성된다. 회원은 성직자에게 맹서하고 단체생활을 하는 미혼회원과, 결혼해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기혼회원으로 나뉜다. 협력자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방법으로 오푸스데이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박재형씨는 미혼회원이다. 그는 현재 홍콩의 한 오푸스데이 센터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있다. 오랜 기간 페루에서 생활한 박씨는 대학시절 오푸스데이를 처음 접했다. 15년 전 회원이 된 후 의사직을 그만두고 오푸스데이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오푸스데이의 불모지인데다 ‘다빈치 코드’로 말미암아 오푸스데이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할 것”이라며 오푸스데이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크지 않은 규모지만 한국에도 오푸스데이의 공식 조직이 있다. 알려진 회원은 2명, 협력자는 40~50명이다. 1986년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제1차 한국오푸스데이 세미나’가 최초의 공식행사였다.
봉천동 빌라 꼭대기층
구성원의 직업군은 다양하지만 교수, 의사, 번역가 등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는 설명이다. 해외유학 때 오푸스데이를 알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 협력자 가운데 대표격인 황적인 서울대 명예교수도 독일 유학시절 오푸스데이를 처음 접했다. 오푸스데이 구성원이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한 학기 동안 생활한 것이 계기였다고. 협력자가 아닌 회원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에 거주하는 최재한 변호사도 이민지인 호주에서 오푸스데이를 알게 됐다. 그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기혼회원이다. 이렇듯 한국의 오푸스데이 구성원들은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과 남미 등 오푸스데이 활동이 활발한 주요 국가를 경험한 이가 대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