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 폭행 구설로 파면된 김인혜 전 서울대 성악과 교수.
스무 살이 넘은 똑똑한 학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들어간 대학에서 교수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금품 제공을 요구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서울대가 김 전 교수를 파면하면서 적용한 규정은 학교 자체나 음대의 별도 기준이 아니다.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제61조 청렴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등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그렇다면 같은 비리, 혹은 더한 비리가 있더라도 사립대는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이다. 도가 지나치더라도 학생들이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을 받아들여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관행이라는 실체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예체능계 대학생,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음대나 미술대, 체육대는 인문대, 경상대, 공대와 체질이 다르다. 예체능대에서 교육의 핵심은 도제식 교육이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전수해주는 것, 스승의 가르침에 복종해 한 치의 오차 없이 배운 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음대는 ‘성악이냐 기악이냐’ 등 전공에 따라 입학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정해진다. 예고 학생들이나 1~2명 선발하는 희소한 악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당 교수와 알게 모르게 인연이 닿기도 한다.
대학 4년을 마치고, 석·박사학위를 받으려면 미우나 고우나 지도교수 밑에 있어야 한다. 한 교수 밑에 적게는 10명 안쪽, 많게는 수십명의 학생이 있다. 애제자가 되지 않으면 ‘자리’는커녕 그 흔한 추천서 한 장 받기 어렵다.
만약 지도교수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전공을 바꾸지 않는 한 지도교수를 바꿀 수 없다보니 한두 명은 자퇴한다. 한두 해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학교를 뛰쳐나가는 건 조수미가 아니라면 미친 짓이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적응을 못한 학생은 대부분 도태된다.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예체능계 교육의 구조적 특성에 순응해야 한다. 예체능계 수업은 전공 수업의 경우 시간표가 고무줄이다. 교수 스케줄에 따라 변동이 잦은 편이다. 대학 측에서는 이에 대비해 교수에게 언제, 어떤 수업을 했는지 보고하게 한다. 이때도 보충은 하지만 철저히 교수의 스케줄에 맞추어 조교가 통보하는 식이다. 다른 과 수업을 받거나 학생의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조정은 없다.
1000만원짜리 음악캠프
“교수님이 보충한다고 한 시간에 다른 교양 수업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조교에게 말했더니 ‘나는 그냥 전달사항만 전달했을 뿐이야’라고 하더군요. 그 뒤 수업 직전에 조교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지금 당장 오라고요. 다른 수업을 빼먹고 레슨을 받으러 갔습니다.”(서울대 음대 졸업생 L씨)
개인 레슨 시간에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적도 많다. 음악이나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은 전공수업 외에 오후 늦은 시간에 개인 레슨을 받는다. 레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레슨비는 학교마다 15만원, 20만원, 30만원 등으로 조금씩 다르지만 등록금을 낼 때 이미 포함돼 있다. 보충을 해주는 교수는 강압적이긴 하나 그나마 성실한 교수다.
콩쿠르나 발표회 때문에 하는 특별 레슨일 때에는 레슨비 부담이 크다. 이때는 교수에게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 스타급 교수 중에는 방학 때 외국에서 연주여행이란 이름으로 음악캠프를 열기도 한다. 경비가 1000만원 이상 소요되는 이 행사는 사실상 관광이지만, 애제자가 되려면 매년 참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