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전 총리는 처벌받을까? 국기모독죄는 형법에 있다. 형법 제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의도 없으면 국기 모독 아니다
국기모독죄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문서위조죄, 불법체포·감금죄와 같은 정도의 형량이다. 남의 물건을 부수면 성립되는 손괴죄도 3년 이하 징역이고, 간통죄·협박죄·과실치사죄가 징역 2년 이하, 유기죄·허위진단서작성죄도 징역 3년 이하다. 이에 비하면 국기모독죄가 얼마나 중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다.
형법에서 국기모독죄를 중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기모독죄가 단순히 국기를 손상·모욕하는 행위라서가 아니다. 국기 모욕을 통해 대한민국을 모욕하려는 것을 처벌하기 위해서다.
국기모독죄가 성립하려면 특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이를 목적범(目的犯)이라 한다. 보통 범죄는 범죄행위와 결과, 고의성만 있으면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국기모독죄가 성립하려면 이외에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사문서·공문서·통화 위조죄가 대표적인 목적범이다. ‘행사할 목적’으로 문서 또는 통화를 위조한 경우에만 범죄가 성립한다. 행사할 목적 없이 교육이나 영화촬영을 위해 지폐를 위조하면 통화위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설령 한 전 총리가 태극기를 밟은 행위 자체가 태극기를 모욕했더라도, 한 전 총리를 국기모독죄로 처벌하려면 그가 대한민국을 모욕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스스로 ‘국기를 모욕하는 행위를 한다’고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 사진을 다시 보자. 우선 한 전 총리가 태극기 위에 올라간 것은 태극기 위에 놓여 있던 추모비에 헌화를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신발을 벗고 있었다. 바닥의 태극기 주위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당시 한 전 총리는 태극기를 모욕하려는 의사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시내 곳곳에 걸린 G20 홍보물에 누군가 생쥐가 청사초롱을 들고 있는 그림을 덧그렸다. 왕객기씨는 그 그림 속 생쥐 옆에 ‘MB’라고 써 넣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왕씨를 국가원수 모독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형법에 ‘국가원수 모독죄’가 있다. 그러나 ‘국내에 있는 외국의 원수’를 모욕하거나 명예훼손을 한 경우에만 적용되고, 우리나라의 국가원수나, 외국에 있는 외국 원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2008년 말 이라크를 방문한 부시 당시 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진 이라크 기자가 국가원수 모독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우리 법원도 비슷한 수준의 형량을 선고할 것이다. 형법은 “외국 국가원수를 모욕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모독 형사처벌 근거 없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모독하더라도 대통령이 상대를 일반 모독죄로 고소하지 않는 이상 형사처벌할 근거는 없다. 한편 우리나라 원수를 모욕해도 처벌할 법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의 원수를 모욕했다고 징역 5년 이하의 형벌을 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적절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외교관계를 감안한다”며 엄하게 처벌하지만, 정작 우리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에 가 모욕을 당했을 때 그 나라에서는 별문제가 안 된다면 머쓱한 일 아니겠는가.
‘정치지도자를 마음대로 욕할 수 있는가’는 그 나라 언론 자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 대부분은 정치지도자를 마음대로 풍자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