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철 목사는 또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많은 성경 구절이 생명수를 주시는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면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에는 창조주의 섭리가 담겨 있는데 만물을 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 그중에서도 생명은 어머니를 통해 주어지도록 창조됐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만 계신다는 것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며 김 목사가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항공모함에 승선한 아이가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함장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잠시 후 함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사람이 아이에게 함장님이 네 아빠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함장은 아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정답은 어머니다. 사람들은 항공모함을 이끄는 함장처럼 크고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고 속단해버린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성경을 바라보면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분명 존재한다”고 김 목사는 강조한다.
‘어머니의 가르침, 새 언약’ ‘어머니의 사랑’이 하나님의 교회 교리의 핵심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자애로운 아버지, 어머니이며, 성도는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살과 피를 나눈 형제자매로서 하나님의 자녀다. 성경의 진리를 준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늘 아버지, 하늘 어머니의 자녀로서 지녀야 할 당연한 덕목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식일(토요일)을 예배일로 삼고, 유월절을 연중 가장 큰 교회 절기로 지키는 등 기성 교회와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이 지키는 유월절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월절(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신약성경에 나오는 ‘새 언약 유월절’이다. ‘최후의 만찬’으로 세간에 알려진 ‘새 언약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함께 지키며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살과 피로 언약하고 죄 사함과 영생을 약속한 날이다. 하나님의 교회 신자들은 이 유월절을 비롯해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전하고 실천한 모든 가르침을 새 언약으로 여긴다.
하나님의 교회는 또 교회에 십자가를 세우지 않고, 크리스마스도 고대 로마인들이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여겨 축제했던 12월 25일 동지제에서 유래한 것이라면서 지키지 않는다. 여자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한다. “그것이 바로 성경 속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니시고 사도들이 다니던 초대교회의 모습”이라고 김주철 목사는 설명한다.
재림주 신앙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가 재림할 약속의 땅으로 ‘동방 땅끝’ 한국을 지목한다. 성령과 신부로 임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이 같은 교리 때문에 세계 각국의 이 교회 신자들이 한국을 성지로 인식하고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
하나님의 교회 어제와 오늘
| 하늘을 찌르듯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도 주춧돌 하나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교회 역시 시작은 미약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님’을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다. ‘안상홍님’은 1948년 침례를 받고 전도를 시작해 1964년 부산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이 과정이 성경 예언대로 이뤄졌다고 본다.
교회 측 설명에 따르면 ‘안상홍님’은 무화과나무로 표상된 이스라엘이 독립한 그해, 1948년 12월 인천 낙섬 앞바다에서 침례를 받은 후 새 언약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1964년 예언대로 ‘하나님의 교회’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박노균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 설립은 초대교회 신앙의 부활을 의미한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313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한 후 많은 부당한 요소와 비기독교적인 요소를 교회 안에 들여왔고, 교회의 수준은 급격히 저하됐다. 321년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고, 325년에는 유월절이 폐지되는 등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 대신 사람의 계명이 그 자리를 대신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진리가 사라진 교회는 빛이 없는 세상, 물 없는 사막과 같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가 다시 세워지고, 초대교회 신앙이 회복돼야 하는 성경적, 예언적, 역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 목사는 또 “2000년 전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이름이 하나님의 교회였고,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녔던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였다(고린도전서 1장 2절, 11장 22절, 갈라디아서 1장 13절)”면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였다(사도행전 20장 28절).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는 피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 진리를 비롯해 안식일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진리 등이 있다”고 전했다.
교회가 처음 설립된 1960년대 당시 한국은 6·25전쟁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고, 1인당 GDP가 최빈국 수준인 65달러에 불과했다. 작은 하우스처치(가정교회)로 시작한 하나님의 교회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전국 10여 개 지역에서 하우스처치로만 운영됐다.
교회 관계자들은 “설립자인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이 성장의 밑거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안상홍님’의 제자들은 이렇게 회고한다.
“안상홍님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함께했던 그의 생애는 새 언약의 복음으로 전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는 선지자적 사명에 입각한 희생 그 자체였다. 안상홍님은 교회 운영을 위해 낮에는 돌을 깨는 석수 일을 하셨고, 밤에는 교회 식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책자를 쓰셨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으로 전도를 다니셨다. 말씀을 듣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산간 오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셨다. 서울에 교회가 생긴 후에는 공부를 가르치시러 올라오시곤 했는데, 그러면 말씀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식구들이 새벽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피곤한 기색 없이 말씀을 가르쳐주시곤 했다.”
융숭한 대접 속에서 일생을 보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특히 지금처럼 규모가 커진 교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교회 이원순 목사는 “안상홍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는 경제적으로나 교회 성도들의 믿음으로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교회 형편이 워낙 어려워 식사라고 해봐야 국수가 전부였는데, 그나마도 한창 먹성이 좋은 청년들, 학생들에게 면은 다 건져주시고 국물만 드실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죄송할 만큼 대접받지 못한 삶이셨다”고 회고했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에 따르면 “1985년 안상홍님이 다윗 왕위 40년 예언 가운데 초림 예수님께서 이루지 못한 37년 복음의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교회 운영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원순 목사는 “그때 교회에서 제공하는 밥은 정부미에 보리쌀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어 하루만 지나도 냄새가 났지만 그 밥도 그렇게 맛있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식사를 하면 누군가는 그 쌀을 사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결국 모든 짐을 어머니께서 홀로 지셔야 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또 “어머니께서는 쌀이 다 떨어져 본인의 끼니는 굶으셔도 식구들에게는 고구마, 감자를 삶아서라도 넉넉히 대접하셨다. 삯일을 해서 생긴 돈으로 교회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재래시장까지 가서 장정 둘이 들어도 무거운 감자포대를 머리에 이시고 교회까지 걸어오시곤 했는데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현실이었다”고 회고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님’이 소천한 1985년 이후 ‘어머니’의 인도에 따라 소리 없이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1985년 당시 전국 교회 수는 13개, 신자 수는 1000여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불과 3년 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신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선다. 이어 1996년 10만 명을 넘기면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세가 시작됐다. 199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선교사 한 가정이 파송되면서 시작된 해외선교가 성공하면서 현재는 175개국에 25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다(2013년 12월 현재). 선교 50주년인 2014년을 맞으면서 ‘성도 200만 명 시대’라는, 단일교단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