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고려대 교수(철학)
■ 패널 |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한신대 교수(환경사회학) 김상협 KAIST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전 대통령녹색성장기획관
■ 정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을 위한 성찰
산업화만이 살길이라며 달려오던 시절에 생태주의란 먼 나라의 호사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도 그것은 환경오염 문제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듯하다.
환경·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생태주의자들의 정치세력화 가능성이 가시화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비롯해 도시 환경을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개선하는 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한 사업이 실제로 바람직한 성과를 거뒀느냐에 대해서는 적잖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스팔트 도로 옆에 회색 빌딩들을 꽂아나가듯 이뤄지던 도시개발 방식을 비판하며 생활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성을 논의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산업화를 통해 어느 정도 생존의 조건을 확보한 뒤 더 나은 삶의 여건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열심히 달려와 보니,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던 삶이었는지 비로소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됐다는 의미도 있다. 산업화·도시화를 반성하면서 과거 농업사회의 삶 속에서 이상적 생태주의의 모델을 찾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향해온 삶의 방향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삶의 방식을 다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는 그렇게 쉽게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들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다.
그럼에도 그러한 발전 방식에 대해 다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산업화라는 발전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할지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현재의 발전 방식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다만 실질적인 대안을 가지지 못한 채로는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태주의에 관한 논의는 가시적 대안의 모색과 함께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현재의 인간사회에 몰입된 우리의 시선을 인간들이 비롯된 삶의 근원이자 결국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으로서의 자연과 우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 종족만의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구성원들이 함께 잘 살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는 데서 비롯한다. 또한 생존해 있는 동시대인만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만들어온 이전 세대들과 앞으로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 세대의 책무다.
생태주의는 이념적으로 좌우를 넘어선 것인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매우 첨예한 현실의 이해관계와 연관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산업화의 수혜를 풍요롭게 누리면서도 그 폐해를 여유롭게 차단하며 사는 사람들과 그 수혜를 적게 누리면서도 직간접적 폐해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태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우리 삶과 지속가능한 사회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특히 통일 관련 논의에서는 첨예한 정치적 이념 논쟁 속에 생태주의적 관점이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 듯하다. 그렇지만 통일이 단지 현재의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와 민족의 천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면, 통일 한반도의 구상에서 생태주의 논의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산업화를 먼저 경험한 우리가 북한 지역에서 그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생태주의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통일 한반도의 구상 속에 그 희망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밝은 전망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김형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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