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담에 ‘힘써 농사짓는 것보다는 풍년을 만나는 것이 낫고, 착하게 벼슬살이하는 것보다 임금에게 잘 보이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정말이지 빈말이 아니다. 여자만 미모와 교태로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벼슬살이에도 그런 일이 있기 마련이다.
정계와 관계에서 편히 잘살려면 권력자에게 잘 보이는 것이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서한 왕조에 들어와서 갖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황제에게 잘 보여 출세한 자들을 열거했다.
이들 아첨꾼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 고조 유방은 성품이 사납고 강직해 아첨꾼들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군주였다. 하지만 적(籍)이라는 아첨꾼을 총애해 늘 곁에 둘 정도였고, 대신들이 보고를 올릴 때면 이자를 통해야만 했다. 유방의 아들 혜제(惠帝) 주변엔 굉이란 아첨꾼이 있었다.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젊은 예비 관료 대부분이 굉처럼 새털로 꾸민 모자와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허리띠에 분을 바르고 다니면서 공공연히 굉의 패거리로 행세할 정도였다.
사마천은 두 아첨꾼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순종하고 아부하는 것으로 황제의 마음을 흔들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권력자가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자기 말에 무조건 복종하고 비위를 맞추는 아부꾼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아부와 아첨의 정치가 통치자를 흔들고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간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눈치 못 채게 전달하라

‘첨유지술(諂諛之術)’이라고 하는 이 기술의 핵심은 상대가 눈치채지 않게 어떤 표현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전국시대의 유명한 유세가 장의(張儀)가 초나라에서 식객으로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장의는 초나라 왕의 태도에서 자신을 점점 멀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자신에게 냉담한 것은 물론 자신의 견해에 대한 감정도 악화돼갔고, 심지어는 시종들 사이에서도 자신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장의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초왕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귀국에서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으니 북쪽 위나라 군주를 만날까 합니다.”
“좋소. 원한다면 가시오!”
“덧붙여 한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대왕께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위나라에서 가져다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금은보화나 상아 등 모든 게 우리 초나라에 흔한데, 위나라의 무엇이 필요하겠소?”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군요.”
“무슨 소리요?”
“정(鄭)이나 주(周)나라는 중원에서도 아름다운 여자로 유명해서 흔히 사람들이 선녀로 오인할 정도지요.”
장의는 이 대목을 유달리 강조했다. 당시 초나라는 남방의 후진국으로, 문화가 앞선 위나라 등 중원 지역의 나라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을 갖고 있던 차였다. 그러자 초나라 왕은 더 이상 오만하게 굴지 않았다. 왕은 이렇게 말끝을 흐렸다.
“초나라는 남방에 치우쳐 있는 나라요. 중원의 여자가 그렇듯 아름답다는 것은 소문으로만 들었지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소. 그러니 신경 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