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호

사내유보금 과세, 과연 옳은가

  •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교수

    입력2014-09-19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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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을 제외한 금원 중 기업이 투자를 위해 사내에 유보한 돈. ‘사내유보금’이라 불리는 이 돈에 대한 과세 문제로 기업과 정부가 줄다리기를 한다. 투자, 배당,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기업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누구 말이 맞을까. 2014년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515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은 사내유보금 과세정책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소액주주에 대한 배당, 임금 상승 및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게 이 제도 도입의 목적이다. 하지만 당장 내지 않던 세금을 내야 하는 기업들은 ‘사실상의 법인세 증액’ ‘이중과세’ ‘재무구조 악화’ 등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한다. 반면 투자·배당, 임금 상승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정치권과 학계에서 만만찮다. 옹호하는 측에선 “이보다 더 강력한 투자유도 과세정책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사내유보금이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을 제외한 금원 중 기업이 투자를 위해 사내에 유보한 돈(자본)이다. 현재 국내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총 515조 원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보율로 계산하면 약 1733%다. 물론 이것이 모두 현금 형태로 보관된 건 아니다. 상당 부분은 재투자된 토지나 시설설비 형태로 존재한다.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사내유보금(현금 자산)은 이 중 20%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에도 유사한 형태의 과세제도가 있다. 미국은 주주의 배당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배당하지 않고 유보하는 경우 징벌적 성격의 과세를 하는 제도를 오래전부터 운영한다. 다만 조세 회피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을 때 과세가 가능하다. 구체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있는 계획, 사업상의 필요성만 입증되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사내유보금이 투자를 촉진한다는 기업의 논리를 충분히 인정하는 셈이다.

    그래서 미국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피하기 위해 재투자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선순환구조의 재투자가 일어나도록 노력한다. 현재 우리 정부가 내놓은 사내유보금 과세제도(기업소득환류세제)는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를 상당 부분 차용하면서 설계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내유보금 과세, 과연 옳은가
    미국, 일본에서도 논란



    일본도 사내유보금을 통해 배당소득을 회피하는 경우 과세하는 제도를 채택한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과세가 이뤄져 종종 논란을 빚어왔다. 기업의 불만이 커 여러 번 제도 폐지가 논의됐을 정도다. 이 제도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일본의 기업들은 “유보소득을 이용한 재투자와 같은 기업의 노력과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과세정책의 정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사내유보금 과세 제도를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사내유보금 과세방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투자나 배당, 임금 상승 등을 촉진하면서도 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추가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기업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얘기다. 일단 과세 대상이 되는 유보금의 범위를 과거로부터 축척된 모든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앞으로 발생하는 사내유보금에만 한정한 점이 그렇다. 과세 대상 금액도 기업에 유리하게 설계했다. 기업의 현실을 반영해 통상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사내유보금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하도록 하기 때문. 게다가 투자, 배당, 임금상승분에 대해서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세금 공제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제도 자체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기업에 대한 편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제되는 투자금액도 당해연도가 아닌 3년간에 걸쳐 계획된 투자금을 공제하도록 해 상당히 탄력적인 운영이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 제도는 앞으로 3년간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정돼 있다. 제도를 실제로 집행해본 후 계속 운영할지, 아니면 수정 보완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여럿 눈에 띈다. 당장 우리 정부가 내놓은 안대로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기업들은 제도 시행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는데, 기업의 업종이나 투자의 성격에 따라서는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돌리는 데 3년 이상이 걸릴 수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이나 업종의 특성에 맞게 융통성을 갖고 탄력적으로 적용돼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기왕에 제기된 이 제도를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앞서 언급한 이유처럼, 투자 부분이 인정되는 3년이라는 기간은 반드시 손볼 필요가 있다. 업종에 맞게 서로 다른 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과세 행정의 편의만을 생각해 개별 기업의 특성이나 투자 목적에 따른 특성을 무시해 제도를 시행한다면, 이 제도가 기업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처럼 합리적인 사업상의 필요성을 입증할 경우 세금 부과를 면제 혹은 유예하는 제도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사내유보금을 주주 배당으로 돌릴 경우 자칫 대기업 오너나 상당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들만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 있다.

    기업의 ‘탈(脫)대한민국’ 가능성

    이 제도 때문에 불가피하게 상승하는 임금이 오히려 경제성장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고임금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사내유보금과 성격이 비슷한 적정유보초과소득세 제도를 채택했다가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한다는 이유로 폐지한 적이 있다. 당시의 경험과 고민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집중적으로 늘린 건 외환위기 이후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환율 리스크나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해 재원 확보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상당수 대기업이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 특히 상장사의 경우 외국인 투자 비중이 증대하면서 헤지펀드의 공격,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비하기 위한 재원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됐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한 우리의 법제도도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널리 인정되는 포이즌 필 등의 제도가 도입되지 않는 등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자구책으로 사내유보금을 늘린 것이다. 만약 자기주식 취득이나 포이즌 필 같은 인수합병 방지장치가 폭넓게 도입돼 시행돼왔다면 기업들이 지금처럼 사내유보금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이번 사내유보금 과세제도가 국내 유수 기업들의 ‘탈(脫)대한민국’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기업들이 이 제도의 도입을 ‘자율성 침해 정책’으로 인식한다면, 향후 국내에 법인을 세우기보다는 법인세율이 낮은 지역을 찾아 떠날 공산이 크다. 특히 국내에 제조 기반이 없는 기업이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기업 활동에 제약이 없으면서 세금도 적은 나라, 흔히 조세회피지역이라 불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현상이 가속화한다면 정부의 제도 설립 목적은 달성되기 어렵다. 아니, 이전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세수 확보라는 목적만을 보고 함부로 제도를 집행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중소기업들이 받을 불이익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줄어든 이익, 높아진 임금과 배당을 중소기업의 부담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중소 협력업체의 희생을 딛고 이익을 늘려온 우리 대기업의 생리상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을 배려하고 보호할 정책이 동시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내유보금 과세, 과연 옳은가
    김승열

    1961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학과,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LL. M.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금융위원회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Paul Weiss(미국 뉴욕) 변호사


    이처럼 사내유보금 과세와 관련해 당장 떠오르는 고민과 걱정만 정리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투자와 내수를 촉진하고, 배당과 임금 상승을 유도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기대만 가져선 안 될 이유가 너무나 많다. 일단 해보고 부작용은 수정, 보완하자고 하기엔 너무나 무겁고도 중요한 주제이고 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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