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한국 경찰, 미군 피의자에게 질문도 못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 황일도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09-01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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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네 살 어린 나이의 두 소녀가 좁은 시골길을 달리던 미군의 궤도차량에 깔려 숨졌다. 사고 직후 국방부는 “한미합동조사단이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6일 후 조사결과를 들은 유족과 사회단체들은 ‘한미합동조사단’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과연 한국과 미국은 이 사건을 ‘합동’으로 조사했을까. 고개를 가로젓는 관할 경찰서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군. 진실은 무엇인가.
    사건이 발생한 것은 6월13일 경기도 양주군 56번 지방도. 피해자는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중학교 1학년생 신효순(14)양과 심미선(14)양이다.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왕복 2차선 도로의 갓길을 걸어가다 변을 당했다.

    사고차량은 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던 미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부교운반용 궤도차량(AVLM). 탑승자는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과 선임탑승자 페르난도 니노 병장. 54t 무게의 궤도차량이 피해자들을 완전히 깔고 지나가면서 시신이 훼손돼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고현장은 미군에 의해 수습됐고 운전병과 선임탑승병은 기지로 호송됐다. 한국 경찰은 사고현장 부근에 있던 미선양 이모부 내외의 신고를 받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6월19일 한미합동조사단은 “악의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 관련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결성되어 항의시위를 벌여나갔지만, 마침 월드컵 기간이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6월29일 미2사단 공보실장이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결과 사건당시 안전수칙은 제대로 이행됐으며 누구도 힐난받을 사람은 없다”고 밝히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건이 일어난 6월13일, 보고를 받은 국방부는 사망자가 둘 다 여중생이라는 점,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반미감정이 높아진 점 등을 고려해 신속히 한미합동조사 방침을 밝혔다. 황의돈 국방부 대변인은 발표를 통해 “사고발생 즉시 한국 경찰과 주한미군 헌병대가 조사를 진행중이지만, 더욱 철저하고 공정한 조사를 위해 주한미군 헌병대와 한국 육군헌병이 합동으로 조사반을 편성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믿고 장례 치른 가족들

    죽은 신양의 아버지 신현수씨는 “아이가 죽은 것을 알고는 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찌 됐건 정부에서 잘 처리해줄 것이라 믿었다”고 말한다. 한국 경찰과 국군이 합동조사단에 참여하는 만큼 사고 경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

    사건 초기부터 가족들과 접촉해온 대책위 김종일 공동집행위원장은 “당초에는 유가족들이 사회단체의 개입을 썩 환영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비록 미군 관련 사건이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을 믿고 있더라는 것. 사건 발생 후 이틀 만에 장례식을 치르며 시신을 화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대책위에서는 “차후라도 의혹이 생길 수 있으니 시신을 화장하지 말자”고 했지만 유족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정부를 철썩같이 믿고 있던 유가족들은 6월19일 저녁 미2사단 영내에서 진행된 한미합동조사단 명의의 사건조사결과 브리핑에 참석하고 난 후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날 미군측은 ‘의도적인 사건이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AVLM 차량의 특성상 운전자의 우측 시야가 가릴 수밖에 없고, 운전병과 선임탑승자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긴 비극적 사고”라는 주장이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에 사용된 합동조사단의 정식명칭은 ‘한미군경합동조사단’. 보고서는 “대한민국 경찰, 대한민국 헌병대 및 미 육군 안전부서와 더불어 우리는 본 사고의 철저한 조사를 실시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브리핑 말미에서 미2사단측은 “한국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수사를 종료했고, 우리도 이번 브리핑을 통해서 사건을 종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군측 발표는 유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브리핑이 대부분 미2사단 작전보좌관과 헌병참모 등 미군에 의해 진행됐을 뿐 한국 경찰이나 군인들의 역할은 미미했던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운전병의 신문과정에 한국 경찰이나 군인들이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가장 큰 의문은 피해자들을 먼저 발견한 선임탑승병이 왜 운전병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는가에 대한 부분. 합동조사결과 발표 당시 미군측은 “당시 훈련으로 인해 무선교신이 많았기 때문에 운전병이 선임탑승자의 무전지시를 듣지 못했을 뿐이며, 통신장비에 고장이나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수장비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주파수가 다르고 선임탑승병과 운전병 간의 교신은 필수이기 때문에, 외부교신이나 주위 소음으로 인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족과 대책위는 이날 이후 “한미합동조사는 명목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과연 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합동조사단은 어떻게 구성됐을까. 한국측 참여인원은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이들은 과연 ‘합동조사단’이란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했을까.

    ‘주한미군지위에 관한 한미행정협정’(SOFA·이하 한미행정협정)에 따르면 주한미군에 의해 공무중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일반 법원과 미군이 ‘경합적 재판권’을 갖는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이번 사고의 진상조사에 미군과 함께 참여해야 하는 한국측 1차 당사자는 대한민국 경찰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사고 발생지역을 관할하는 의정부경찰서 교통사고처리반 사고조사계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 ‘한미군경합동조사단’에 참여했을까.

    “그 얘기라면 묻지 마십시오.”

    합동조사 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담당경찰관은 “이 사건 맡고나서 고생만 엄청나게 했다”며 고개를 젓는다.

    “사정이야 뻔한 것 아닙니까. 미군이 일일이 우리한테 상의하면서 조사했다고는 말 못하죠. 저도 피의자한테 질문 한번 못해 봤습니다.”

    미군 이외에 사건 발생을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피해자 심미선양의 이모인 이삼숙씨로 오전 9시40분에서 10시 사이다. 그러나 의정부경찰서가 사건 발생을 인지한 것은 10시50분경. 미군은 한 시간 가량 관할경찰서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셈이다.

    사고조사반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11시10분경 사고차량 탑승자들은 이미 현장에 없었다. 이후로 경찰관 중 누구도 이들을 신문하지 못했다.

    “현장에 나갔더니 미군 병사들이 비디오카메라 촬영을 막더라고요. 사진은 되지만 동영상은 안된다는 거예요. 이만하면 말 다했지 않습니까.”

    합동조사단 운영방침이 발표된 이후에도 미2사단과 조사단의 조직체계나 운영방침, 역할분담 등을 상의한 일은 없었다고 담당 경찰관은 말한다. 6월17일 열린 현장검증에도 “국방부에서 합동조사단 만든다고 했으니 모양새를 위해서라도 나와달라”는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참석했다는 것. 6월19일 조사결과 브리핑이 있기 전에 보고서를 검토하거나 내용을 토의한 적도 없었다.

    경찰은 결국 미군측에서 넘겨받은 운전병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도로교통법에 따라 ‘과실에 의한 교통사고’로 6월27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과실책임 규명과 관련해 경찰이 그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군 관련 사고에서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단 관할이 아니니까요. 더구나 미군 관련 사고다 보니 접근에 한계가 있었지요. 사고현장 측정 같은 기초조사는 우리도 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어요.”

    의정부경찰서 수사 관계자의 말이다.

    의정부경찰서는 6월28일 미2사단 참모장, 우리 육군 1군단 헌병대 등과 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이는 사고수습 대책회의였을 뿐, 미군측으로부터 합동조사단의 지휘체계나 역할분담 방안 논의를 제의받은 적은 없었다는 전언이다.

    “광적면에 가면 경찰만 죄인이에요. 얼굴을 들 수가 없다니까.”

    ‘합동조사’라는 명목은 있었지만 한미행정협정과 관할권에 묶여 옴짝달싹 못했다고 이 관계자는 토로했다.

    그렇다면 군은 어땠을까. 기자는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한국군 요원들에 대한 정보를 미2사단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2사단 채양도 공보관은 “대한민국 육군 1군단 헌병대를 중심으로 예하 사단인 25사단 헌병대 요원 일부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채공보관은 또한 “한국측 요원들의 조사 태도는 충분히 열성적이었으며, 이는 현장검증을 옆에서 지켜본 내가 보증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6월19일 브리핑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측 요원들이 조사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죽은 심미선양의 아버지 심수보씨는 “결과발표 자리에 참석한 한국군 관계자는 25사단 소속 위관장교 1명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당시의 브리핑 녹취기록을 살펴보면 ‘한국군 요원이 조사한 것’이라고 명확하게 언급된 부분은 사고발생 도로에 대한 수치 측량과 운전자의 시야에 관계된 사진 촬영뿐이었다.

    기자는 조사에 참여한 우리측 군 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기 위해 1군단 헌병대와 접촉했다.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우리측 요원들 가운데 최선임자였던 1군단 헌병대의 김종윤 대령은 군단 공보담당자의 허가 없이는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단 공보담당자는 육군본부에, 육군본부는 다시 국방부에 허가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 공보실측의 설명은 또 달랐다. “소속 부대원의 인터뷰에 관한 사항은 개별 부대에 위임된 권한이므로 국방부가 허가할 사항이 아니다”는 것. 또한 이 공보담당자는 “왜 미군 사고에 국방부가 개입해야 하느냐”며 “국방부의 입장은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우리측 요원들에 관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고 직후 국방부 대변인이 ‘합동조사단 운영방침’을 밝혔으므로 그 부분만큼은 국방부 소관사항이 아니냐는 기자의 재질문에 공보실측은 “이 문제에 관해 국방부는 언급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측 조사 요원들에 대한 인터뷰는 어디서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자는 수사에 참여했던 우리 군 초급장교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해야 했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이 장교는 “민간인 사고에 경찰이 아닌 육군이 개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국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조사에 임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운전병에 대한 신문 등에 참여한 일이 있는가”를 묻자 “허가받지 않은 인터뷰이므로 더 이상 대답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왜 국방부는 합동조사단에 참여했다는 우리측 조사요원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일까. 6월26일부터 민간단체를 대표해 진상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의 이석태 변호사는 “우리측 요원들의 명확한 설명이 있다면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제대로 했다면 파문도 적었을 것”

    민변은 합동조사단 조사의 성실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합동조사단은 최초의 한국인 현장 목격자인 미선양의 이모와 이모부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벌인 바 없다. 차량의 특성상 5m 이내에서 시야가 가릴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30m 이상 떨어졌을 때는 피해자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에 관해 유족들에게 보충설명이나 추가답변을 해준 우리측 요원은 없었다. 이들이 미군측에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운전병에게 독자적인 신문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단서도 없다. 이들은 조사단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군이 관련 당사자와의 접촉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어 더 이상 추적이 불가능했다.

    현행 한미행정협정 어디에도 ‘주한미군에 의해 발생한 형사사건에 대해 한미양국이 합동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대신 한미행정협정 28조는 ‘상호 협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에 관해 합동위원회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그 운영방식을 기술하고 있지만, 이번 합동조사단은 이와는 전혀 달랐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번 사건의 합동조사단은 법률적인 근거 없이 만들어진 임시조직인 셈이다.

    따라서 주한미군은 합동조사단 운영방침을 한국과 상의할 법률적 의무가 없고, 우리측은 그 운영이나 조사결과에 대해 이의나 의견을 제기할 법률적 근거가 없었다. 한 경찰관계자는 “사건 초기에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공개조사를 했다면, 논란의 상당부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 대응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7월10일 미군측에 운전병 등 관계자의 재판권 포기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한미행정협정에 따르면 미군은 최장 42일 이내에 포기 여부를 ‘호의적으로 고려해’ 우리 정부에 통보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이전과는 다소 달라진 자세를 보여줬다. 6월18일에는 미군 주둔 사상 최초로 부대 안에서 ‘희생자를 위한 촛불 추모행사’를 열었고, 6월19일 2사단장 사과, 7월4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 명의의 사과문 발표, 7월8일 허바드 주한 미대사의 사과발언 등을 통해 한국 국민들의 감정 진화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군이 한국 정부의 재판권 포기요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에서나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군이 검찰조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권 이양을 거부할 경우, 이 사건 피의자들에 대해 한국 수사기관은 단 한 차례도 직접조사를 벌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여야 국회의원들로 이루어진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의원모임’과 대책위는 7월9일 공동발표문을 통해 “주한미군의 범죄나 사고를 조사할 상설전담조사반이 한미 양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한미행정협정을 조속히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일본 열도는 오키나와에서 발생한 주일미군 병사의 일본여성 성폭행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와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고 부시 미대통령은 직접 유감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두 여중생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7월13일 현재까지 청와대를 포함해 정부 어느 부처도 이와 관련된 공식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말 없는 대한민국 정부. 그 이유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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