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활동 무대 옮기는 창업 브로커들
사회적 경제 활성화… 대학생이 새로운 타깃
사회적 기업으로 유혹한 뒤 협동조합 제안
컨설팅 비용 최소 150만 원부터 최다 600만 원
공공기관 우선 구매 제도, 일반 기업엔 역차별
“세금 지원보단 사회적 경제 조직 자생력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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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씨는 주로 서울 지역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브로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한국사회적기업◦◦◦◦ 대표이사 ◦◦◦’란 글자가 새겨진 명함을 건네기 때문에 그를 브로커로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S씨는 주로 예비 창업자가 정부의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받아 창업할 수 있게끔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브로커와 예비 창업가의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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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일부 불법 브로커들에 의해 어지러워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사회적 경제는 수익을 내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활동 전체를 뜻한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기업·소셜벤처·사회적 협동조합·마을기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회적 경제 단체에 각종 지원금과 세제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금융 상품도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B씨와 S씨의 행위는 과연 합법일까 불법일까. 특정인을 상대로 한 로비로 정부 지원사업을 따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현행법상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 만약 해당 기관 관계자가 브로커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면 이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및 공무원·공단 임직원 윤리규정에 의거해 처벌 대상이 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09년부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지역 본부 내에 ‘정책금융 불법 브로커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제3자(브로커 등)가 정책자금 지원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공단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정책자금 제3자 부당개입 온라인 신고’를 받고 있다. 정부는 사회적 경제 승인에 제3자가 부당 개입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브로커는 물론 신청자에 대해서도 형사고발 조치를 취한다. 또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한다.
제3자 부당 개입이란, 정책자금을 신청하는 업체에 재직하지 않으면서 정책자금 신청 및 대출 과정에서 기업의 피해를 유발하고 정책 목적을 훼손하는 행위를 뜻한다. 제3자 부당 개입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정책자금 대출 관련 업무대행 및 컨설팅 등의 대가(수수료)로 보험계약 체결을 요구한 경우 ▲성공 조건부 계약을 체결하고, 수수료를 선(先)지급 받은 후 대출 실패 시 선지급금 반환청구에 응하지 않은 경우 ▲재무제표 분식, 사업계획 과대포장 등 허위로 신청 서류를 작성하고 수수료를 수령한 경우 ▲지원 자격이 안 되는 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을 받아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한 경우 ▲정부기관, 공단 직원 등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책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착수금을 수령한 경우 ▲제3자가 정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명함을 임의로 사용하거나 허위로 정책자금 관련 기관 지원을 사칭한 경우 ▲제3자가 보수를 받고 기업 현장평가 및 대면평가 시 동행해 사업에 대해 언급하는 등 기업 실태조사 등 평가에 관여한 경우 ▲제3자가 부당하게 개입해 대출 알선 등 업무 추진을 위해 기관에 사례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금품 등을 요구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사회적 경제 컨설팅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 인증 절차와 인증 요건,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 사례를 두루 살펴보며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안내하는 컨설턴트의 강의라면 합법적 컨설팅에 해당한다.
“대학가 주변 컨설팅 소모임 부쩍 늘어”
7월 5일 대전 유성구 무역전시관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 [뉴시스]
“올해 8월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해당 분야의 창업 수요가 부쩍 늘었어요. 한편 이를 계기로 정부나 공공기관의 감시가 한층 강화된 탓에 다수의 브로커는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있죠.”
다수의 업계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회적 경제가 더욱 활성화하면서 불법 브로커도 덩달아 기승을 부린다고 입을 모은다. 1~2년 사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정부지원사업 무료 설명회가 부쩍 늘어난 것을 보더라도 현 정부가 사회적 경제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박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회적 기업 창업을 희망하는 대학생과 청년이 늘어나면서 지방에도 사회적 기업 컨설팅 수요가 부쩍 늘었다. 브로커들 입장에선 새로운 목표물이 생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북 소재 대학에 다니는 김모 씨는 “최근 들어 창업 컨설팅 소모임이 급작스럽게 늘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금요일 저녁이면 학교 근처 카페에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창업 컨설팅을 받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창업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정부 지원사업 컨설팅 업체로부터 ‘공짜 창업’ 얘기를 듣고 혹해서 컨설팅까지 받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는 정부 지원사업 승인 방법을 컨설팅해주겠다는 업체들의 광고가 난무한다. 특히 블로그나 SNS, 유튜브 등에는 ‘공짜 창업’을 내건 홍보 게시물과 영상이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이들은 ‘정부지원 사업으로 스타트업’ ‘나랏돈 2000만 원 지원받은 후기’ ‘공짜창업’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예비 창업가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랏돈으로 공짜 창업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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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문료는 정부 지원사업 종류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협동조합이라도 다 같은 게 아니다. A업체의 경우, 일반 협동조합은 150만 원, 사회적 협동조합은 180만 원,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은 24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의료 소비자 생활 협동조합과 의료 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은 각각 400만 원, 600만 원을 요구했다. 또 사회적 기업과 마을기업 자문료는 모두 200만 원이었다.
또 다른 브로커는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창업 컨설팅은 20회 기준으로 총 200만 원(부가세 별도)을 선지불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가 “1회씩 컨설팅 받아볼 수 없느냐”고 묻자 브로커는 “20회 기준으로 저렴하게 책정된 금액”이라며 “1회씩 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컨설팅 내용을 자세히 좀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이템만 확실하면 사업계획서를 다각도로 분석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가는데, 여러 번 수정을 거친 뒤 프레젠테이션(PT) 위주로 강의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브로커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미끼 삼아 고객을 유혹한 뒤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아이템 설명서나 사업계획서를 e-메일로 보내주면 피드백을 주겠다”고 하면서 추가 상담을 유도한 뒤 “아이템이 애매하고 계획서도 너무 엉성해 수정이 필요하다”며 “차라리 사회적 기업보다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받는 게 좋겠다”고 말을 슬쩍 바꾸는 것. 사회적 기업은 정부와 지자체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컨설팅이나 행정 대행으로도 따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브로커는 “사회적 기업 인증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정작 컨설팅업체를 통하면 본인이 원하는 사회적 기업이 아닌 다른 종류의 창업으로 컨설팅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지원받아야 할 곳은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사회적 경제 업체에 돌아간다. 한편 정부는 브로커의 부당 개입을 막기 위해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명백한 위법 행위를 한 업체는 엄중히 처벌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와 공단, 시민사회가 꾸준히 모니터링하는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들은 이름만 사회적 기업이지 다른 유통 창구를 통해 직접 생산한 물건이 아닌 다른 제품을 공급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A업체에서 보조배터리, B업체에서 USB, C업체에서 이어폰을 각각 납품받아 이를 패키지 상품으로 구성해 사회적 기업 제품으로 둔갑시켜 납품하는 것이다. 직접 제작한 물건은 없지만 새로운 상품을 만든 것이니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런 업체들만 찾아다니는 브로커도 많다. 그들은 “여성기업(한국여성경제인협회), 장애인표준사업장(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증을 추가로 받아 정부부처나 공공기관과 거래하면 매출도 올리고 ‘공공기관 우선 구매 제도’ 혜택도 누릴 수 있다”고 업체들을 부추긴다.
공공기관 의무구매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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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의무구매 비율은 총 구입 금액 대비 중소기업 제품 50%, 여성기업 제품 5%, 중증장애인 제품 1%로 법제화돼 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진 않지만 권장 비율은 3%로 규정돼 있다. 지자체 처지에선 이왕이면 사회적 기업이면서 여성기업이고, 중증장애인 고용 기업인 업체의 물건을 사는 게 유리하다. 한 번 구매로 여러 건의 실적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브로커들이 ‘바지사장으로 둘 만한 여성을 알아봐주겠다’ ‘내가 아는 장애인 기관을 소개해줄 테니, 서류상 직원으로 등록해달라’는 식으로 거래를 제안하면서 비용을 청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단순히 공공구매 총량을 늘리는 것으로 기업을 지원하려다 보니 특정 기업에만 혜택이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6년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015년 서울시의 사회적 경제 조직 지원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해 분석한 결과, 서울시 전체 사회적 경제 조직 2689개 중 특정기업 2곳에만 약 15억~20억 원 가까이 구매 지원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회적 경제 조직과 경쟁해야 하는 일부 영세업체나 중소기업에는 역차별이나 다름없다.
한편 인건비나 용역 지원, 물품 거래 등 세금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보다 사회적 경제 조직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직접 지원 방식으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끊어질 경우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자생력 없는 사회적 경제 조직만이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