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과도한 탐욕 억제하고 남의 일자리를 소중히 하라

  • 김용기|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7-05-11 16: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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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좋은 일자리 만드는 비법 세 가지를 제안한다. 공공 사회서비스 부문의 확대, 중소기업 일자리 질의 개선, 그리고 새 노사화합 모델을 통한 기업의 국내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서울대가 최근 도입한 통합경비시스템의 사례를 보면서 일자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방식이 현재와 같은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자초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술의 혁신, 제조업 생산기지의 중국과 동남아로의 이전 등 ‘고용 없는 성장’을 초래한 불가피한 요인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용 사정을 악화시킨 것은 일자리를 경시하는 태도가 활개 치도록 우리 사회가 용인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4월 1일 인문대, 사범대, 자연대 소속 건물 25개 동에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 건물에 근무하던 50대 중심의 경비원들은 다른 곳에 배치됐다. 당장 해고는 피했지만 정년퇴임으로 ‘자연 감소’할 예정이다. 신규 채용은 없다는 뜻이다. 경비원의 순찰을 통해 이루어지던 건물 내 보안은 폐쇄회로 TV와 센서가 대신하게 된다. 물론 100% 대체는 불가능하다. 문제가 생기면 보안업체 직원이 출동한다. 하지만 기존 경비원의 숫자보다는 훨씬 적은 수의 직원으로 경비가 가능하다. 기존 경비원의 일자리가 ‘기술과 보안업체 직원 소수’로 대체된 것이다.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위축되고 이에 따라 이들이 그간 노력해왔던 최소한의 처우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대 경비 노동자들은 청소 노동자들과 함께 2000년에 시설관리노조를 설립한 이래 처우를 놓고 학교 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이후 시설관리노조가 어용화됐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복수노조가 허용된 2011년에는 민주노총 산하 일반노조 서울대 분회가 별도로 결성돼 활동해왔다. 



    일자리에 대한 비정한 태도

    서울대 통합경비시스템 운영 계약업체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에스원이다. 에스원은 서울대  외에도 많은 대학과 경비 계약을 맺고 있다. 많은 경우 에스원이 직접 경비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자회사인 휴먼티에스에스나 에스원씨알엠에 업무를 위탁한다. 위탁 용역을 받는 이들 회사의 직원 보상 수준은 에스원에 비해 훨씬 낮다. 위탁 경영을 통해 에스원은 직접 관리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에스원 대표이사와 휴먼티에스에스 직원의 평균 연봉 간 격차는 2016년의 경우 40배 수준이다. 에스원의 대표이사와 에스원 직원의 연봉은 25배 차이가 난다. 노동시장 내 격차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누가 특별히 잘 적응했고, 다른 누구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결과가 아니라 이런 간접고용과 같은 방식을 통해 확대된다.

    에스원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K스포츠 재단에 10억 원을 기부한 회사다. 사세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 내 주요 관계사인 삼성물산(15억 원), 제일기획(10억 원)과 비등한 돈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의 사례는 일자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정함과 불합리한 단면을 드러낸다. 과연 경비원들이 통합경비시스템에 치여 일터에서 밀려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대학본부로선 골치 아픈 노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득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다른 선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비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무인경비시스템의 도입을 반대하는 이른바 ‘착한 아파트’는 다른 선택의 사례다. ‘기계가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며 상생과 연대를 통해 경비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개선과 일자리 보전을 중시하는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 

    간접고용 내지 위탁 용역의 결과는 과연 합리적인가. 과거에는 본사가 직접 고용해서 하던 일을 이제는 자회사나 용역업체에 대행시키게 되면서 동일한 노동을 제공하지만 노동자의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보수는 형편없이 낮아진다.


    구의역서 숨진 김모 군의 경우

    지난해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에 숨진 김모(19) 군 사례를 보면 그에게 지급된 돈은 월 140만 원 남짓이었지만, 서울시에서 김군이 수행했던 업무를 위해 책정한 예산은 200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안전 업무를 간접고용 방식으로 외주화해 1인당 60만 원 이상의 돈이 안전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종사자가 아니라 그를 고용한 용역업체나 그 용역업체가 원청업체로부터 계약을 수주하기 위한 목적에서 영입한 불필요한 낙하산 인사들에게 줄줄 흘러가고 있었다.

    간접고용을 통해 창출된 이윤을 기반으로 원청회사 CEO와 고위 임원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졌다면 간접고용이라는 방식이 과연 일터에서의 혁신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혁신이나 창의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부풀려진 보상은 정당한 것이라 하기 어렵다.
    일자리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나라는 없지만 한국만큼 최근 들어 일자리 상황이 빠르게 나빠진 나라를 찾기도 어렵다.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미국보다 높다. 정당하지 않은 이윤 추구와 그것을 위한 간접고용이 이러한 상황의 악화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2015년 기준 임금근로자 1931만 명 중 월 225만 원(임금근로자 중위소득 180만 원의 125% 수준) 이상 소득을 올리는 정규직 일자리는 전체의 34.9%인 674만 개에 불과하다. 이 중 청년(15∼29세) 일자리는 63만7000개다. 전체 청년 950만 명 중 취업자가 395만 명이다. 취업 문턱을 넘는 것도 어렵지만, 취업을 해도 6명 중 한 명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는 게 현실이다.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25만 명이 몰리는 이유다. 



    500대 기업 22.5% 신규채용 감소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2017년 상반기 500대 기업 신규채용계획’(200개사 응답)에 따르면 작년보다 신규채용 계획규모를 줄인 곳이 27개사(13.5%)이고, 신규채용이 전혀 없는 곳도 18개사(9.0%)나 되었다. 이렇게 채용을 줄이거나 안 하는 기업이 22.5%에 달해 채용을 늘리는 기업(11.0%)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채용시장이 악화된 만큼 기업의 상황이 어려우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올해 1분기(1∼3월) 상장기업의 실적을 보면 기업 수익은 역대 최대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1분기 코스피 전체 상장사의 영업이익은 43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치인 지난해 1분기의 36조5000억 원보다 19.9% 늘어난 액수다. 기업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오히려 일부 기업의 경우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거나 일자리를 나쁘게 함으로써 이익을 키울 수 있었다는 설명이 사실에 더욱 부합한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미국 노동부 산하 근로기준분과 첫 종신 행정관인 데이비드 와일은 국내에 번역된 자신의 저서 ‘균열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The Fissured Workplace, 황소자리 펴냄)에서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부터 많은 회사들이 불안정한 자본시장에 부딪혀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 직결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경제활동 영역들을 과감히 털어버렸다. 그 결과 떨어져 나온 직종이 청소부와 경비원, 경리, IT 기술자 등이다. …직접고용 문제를 털어버린 대기업은 과거 사내에서 이루어지던 활동이나 서비스를 외부업체에 맡김으로써 경비 절감은 물론 고용주의 법적 책무도 함께 전가했다. …대기업이 고용을 외부로 돌리면서 임금 설정 문제가 대기업 울타리 밖의 계약 결정사안으로 바뀜에 따라 원래 사내에 있던 대다수 직종의 실질임금이 사실상 정체되어버린 것이다.”


    근본적으로 바뀔 노동의 미래

    국제노동기구(ILO)는 4월 6, 7일, 이틀 동안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ILO 본부에서 ‘노동의 미래(the Future of Work)’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의 배경은 노동과 일자리의 성격 자체에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기술 변화는 물론이고, 경기침체와 저성장, 그리고 인구구조의 변화 및 생산과 일터의 조직 형태가 변화하는 등 여러 요인이 노동과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각국 정부의 정책적 약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혁신과 기술 변화가 경제와 사회를 변형시켜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경로 자체가 바뀌고 있다. 그 결과 기존에 존재하던 노동이나 직업이 위협받고,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노동의 본질이나 조직 형태도 바뀌게 된다. 인구구조의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고령화한 사회와 30대 이하 청년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회의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 환경적 제약도 기업이나 노동자, 그리고 사회에 쉽게 예측하고 계획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전통적인 일자리 정책은 작동하기 어렵다. 정부뿐 아니라 노사, 그리고 사회단체나 전문가 그룹 모두 혁신과 기술 발전이 새롭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ILO의 생각이다.  

    전통적인 정책과 결별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공공 사회서비스 부문의 확대, 중소기업 일자리 질의 개선, 그리고 새로운 노사화합 모델을 통한 기업의 국내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전통적 일자리 정책과의 결별

    첫째, 사회서비스 부문은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지금도 국내에서 일자리 증가를 주도하는 분야다. 생애주기위험(출산, 보육, 장애, 요양)에 대비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를 말하는데, 이 부문에 지급되는 인건비는 사실 대부분 국가 예산을 기반으로 한다. 2015년에만 13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달리 한국에서 사회서비스 제공의 주체는 민간에 위탁돼 있다. 민간이 중간에서 일정한 이윤을 추구한 결과 일부 시설의 경우 종사자의 처우와 대국민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15년의 경우 일자리 순증이 가장 큰 부문이 사회복지서비스업(9만7000개)인데 종사자의 임금 수준과 고용안정성이 낮았다. 결국 사회복지서비스업에서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전체적인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데, 여기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필요하다. 공공 부문이 직접 관리하는 비중을 높임으로써 동일한 예산으로도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좋은 일자리의 제공)하고 대국민 서비스 질을 개선할 수 있다. 2015년의 경우 공공 부문 일자리 중 지속 일자리의 비중이 86.4%였던 반면, 소멸된 일자리의 대부분(98.9%)은 민간 부문에서 발생했다. 공공 사회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경우 보육과 요양의 책임을 맡느라 가정에 머물렀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또한 높아질 수 있다.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

    둘째, 중소기업 정책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기존 대기업과의 불공정한 관계를 유지한 채로 현금 지원 위주로 진행되는 중소기업 정책이 변화의 대상이다. 불합리한 원·하청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업 여건 개선을 통한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중소 제조업의 3분의 1, 중소 서비스업의 86%는 대기업 하청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장우헌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분석에서 드러난 것처럼 2003∼2015년 기간 중 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기관 3곳에서 이뤄진 정책자금 81조 원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계기업의 양산과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정책 목표가 복지나 시혜적 관점이 아닌 경쟁력과 생산성, 특히 고용창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분명하게 설정돼야 할 것이다. 혁신적인 중소기업이 광범위하게 형성돼야만 그간 중소기업에 퍼져 있던 좋지 않은 일자리의 질 개선이 가능해질 것이다.

    세 번째로, 제조업의 국내 투자를 가로막는 노동시장 내 구조화된 격차와 노사 간 대립·불신 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국내 제조업이 해외에서 계속 생산기지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국내로의 신규투자 동기는 저하돼온 게 사실이다. 자동차의 경우 22년째 국내에서 완성차 공장을 증설한 적이 없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 비중은 2016년의 경우 35%에 불과하다. 세계와 국내시장에서 팔리는 현대차 3대 중 1대만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다.

    최근 광주시가 주도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이러한 문제점을 돌파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해외로 투자가 유출되는 요인을 ‘다양한 혁신’을 통해 제어함으로써 국내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나 투자자 혜택 중심의 전통적인 정책과도 구별된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

    여기서의 다양한 혁신은 갈등적인 사용자와 대기업 노조 간 담합 구조를 철폐하는 것이고, 노동자가 부분적으로 경영에 참가하는 것이며, 사회연대적 ‘적정임금’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유연근무제의 실현, 자율적인 작업 방식과 공장에서의 지속적인 ‘학습’도 혁신의 내용이다. 이를 통해 해외 생산기지를 뛰어넘는 생산성의 제고가 이뤄져야만 기업의 국내 투자가 가능한 것이다.

    노사의 의식적인 노력과 정부의 지원, 생산 현장에서 혁신을 통한 신규투자 유치와 국내에서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작금의 일자리 상황을 근원적으로 돌파하기는 어렵다. 남의 일자리를 소중히 하고 과도한 탐욕을 절제하는 사회적 노력이 이와 동시에 추구될 때 문제 해결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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