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28일 오전 8시. 나바타니의 라커룸에 가방을 풀어놓고 1번홀 티잉그라운드로 가기 위해 클럽하우스를 나섰다.
파란색 바지에 태국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재킷 형태의 상의를 입고 차양이 넓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캐디는 한국과 일본 골프장 캐디 대부분이 그렇듯 여성이었다. 캐디는 카트에 캐디백을 실어놓고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 골프장이 대개 4인 1조의 공용 1카트를 운용하는 데 비해 나바타니의 카트는 1인 1카트로 원캐디 원백제였다. 인건비가 낮다는 증거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1988년 분당 신도시 개발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국내 인건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덩달아 골프장에서도 원캐디 투백제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필자가 골프를 시작할 무렵인 1984년경에는 골프 연습장에도 캐디가 있었다. 연습 볼을 티업해주는 여성들이었다. 그 여성들은 1988년 이전에 서울지역 골프 연습장에선 거의 없어졌다. 인건비 상승 탓이었다.
파도 부서지는 바닷가 피날레
필자가 맨 처음 플레이 해본 해외 골프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근처의 자그마한 도시 오션사이드에 있는 ‘엘 카미노’라는 골프장이었다. 최고의 명성을 가진 골프장 중에선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Pebble Beach Golf Links)가 처음이었다. 흔히 페블비치 골프장이라고 일컫는 곳이다.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가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 몬트레이 반도 남단의 캐멀 베이(Camel Bay) 연안에는 다섯 개의 골프코스가 있다. 페블비치 링크스를 비롯해 사이프레스포인트(Cypress Point Club), 스파이글래스힐(Spyglass Hill GC), 포피힐(Poppy Hills GC), 스패니시베이(The Links at Spanish Bay) 등이 그것이다. 페블비치는 잭 네빌, 사이프레스포인트는 앨리스터 매킨지, 스파이글래스힐은 로버트 트렌트 존스 시니어, 나머지 두 골프장은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각각 설계했다.
다섯 골프장 가운데 페블비치, 스파이글래스힐, 포피힐 세 골프장에서는 매년 2월 첫째 주가 되면 PGA 투어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의 전신은 유명한 가수이자 골프광이던 빙 크로스비에 의해 1937년 창립된 ‘빙 크로스비 프로암(The Bing Crosby Pro-Am)’이다. 물론 그 대회가 출범할 당시에는 대회장으로 포피힐 대신 사이프레스포인트가 사용됐다. 페블비치 링크스가 이름과 달리 인랜드(in-land)형임에 반해 스페니시베이는 다섯 골프장 중 유일한 링크스 코스다.
5개 중 가장 먼저 생긴 골프장은 페블비치다. 골프장을 건설하기로 마음먹은 새뮤얼 모스는 1918년 잭 네빌에게 코스 설계를 의뢰했다. 훌륭한 아마추어 선수였지만 미 서부 해안에서 코스 설계를 해본 경험이 없던 네빌은 3주 동안 그곳을 직접 걸어다녀본 뒤에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를 설계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찬사가 페블비치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본다.
“최초 3홀은 내륙을 향해 이어져 있다. 하나같이 공정한 엄격함을 느끼게 한다. 다음 7홀은 5번 홀을 제외하곤 모두 해안절벽을 따라 장관을 이룬다. 11번 홀부터 16번 홀까지는 내륙을 향해 가다가 점진적으로 바다로 향해 가는데, 플레이어로 하여금 심오한 분위기에 빠지게 한다. 17번과 18번 홀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에 붙어 최고의 피날레를 맞게 한다. 페블비치를 찾아올 때마다 네빌의 대단한 연출에 늘 혀를 내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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