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동반자들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 한 사람은 OB 대열에 합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좌측 러프에 빠진다. 나머지 한 사람이 그나마 페어웨이를 지키지만, 그린까지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티업 시간에 간신히 맞춘 데다 몸까지 제대로 풀지 않아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첫 홀의 긴장감까지 더해 4명의 볼은 거의 산탄(散彈) 수준이다. 홀 아웃을 한 후 한 사람이 캐디에게 으레 그랬던 것처럼 외친다.
“첫 홀이니까, 올 파로 하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체면 불고하고 뛰어들고 싶은 녹색 물결과 눈이 부실 만큼 파란 하늘. 골프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모든 골퍼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최상우(46)씨가 바로 그렇다. 김씨는 말 그대로 왕초보다. 정식 레슨은 아예 받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라운드 횟수가 10번을 간신히 넘어 구력이랄 것도 없고, 핸디캡은 아예 계산이 안 된다. 티샷을 하기 전에 동반자들한테서 “OB 티에서 티샷을 하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이 산 저 산 뛰어다니다 보면 그린에 도달하기 전에 ‘양파’로 OK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운드가 모두 끝난 뒤 골프장 전경은 둘째 치고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만 생생하다.
마약에 비유되는 골프의 중독성
손꼽히는 국내 보험회사 법인영업팀에 근무하는 김승원(44)씨는 주위로부터 ‘호타준족’이란 소릴 듣는다. 핸디캡 12의 준수한 실력에 카트를 타는 법이 없어 이런 별명을 얻었다. 그가 필드에서 항상 걷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다. 코스를 철저히 분석해놓았다가 내기에서 이기려는 속셈이다. 남다른 승부욕을 갖고 있는 그는 단돈 1000원이라도 자기 주머니에 들어와야 직성이 풀린다. 내기의 액수가 커지면 어금니에 은근히 힘이 들어간다. 그러니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청설모나 이름 모를 새에 눈길이 갈 리 없다.
최씨와 김씨는 유별난 골퍼일까. 여유를 갖고 골프 자체를 즐기는 골퍼, 생각만큼 많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력이 모자라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내기에 집중한 나머지 즐거움 자체를 잊을 수도 있다. 빡빡한 티업 간격으로 골프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도 핑계가 된다. 굳이 변명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골프를 흔히 마약에 비유하곤 한다. 오죽하면 ‘바람 난 남편에게 골프채를 사주라’는 말까지 있을까. 그만큼 골프에는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매력을 넘어선 ‘마력’이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의 모 골프장 헤드 프로는 골프 때문에 이혼까지 당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골프의 중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일주일에 많게는 6~7번 라운드를 나갔다. 레슨 프로인 걸 감안해도 많은 수치다. 그러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갑자기 골프와 가정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더라. 난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골프를 선택했다. 아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골프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가정을 버린 날 모든 사람이 비난했다. 그래도 골프 약속이 잡히면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다. 지금은 매일이다시피 라운드를 즐긴다. 아내에게 골프를 가르치지 않은 게 후회된다.”
힘 빼는 데 3년 걸린다
속내를 털어놓아도 좋을 동반자들과 함께 대자연에서 즐기는 여유로움. 골프의 묘미를 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골프는 일정 정도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 그 이상의 기쁨과 재미를 선사한다. 단,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욕심을 버리고 즐길 줄 아는 멘탈(Mental)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