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수십 년 내공의 진정한 매력

노년에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

  • 정연진 │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2-07-20 1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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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는 여느 운동에 비해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부상할 위험도 적다. 그래서 노년에도 즐기기 좋은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노년의 골프는 오랫동안 쌓은 내공 덕에 더욱 흥미롭고 여유롭다. 황혼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이 듦을 건강하게 만끽할 수 있게 돕는 노년의 골프는 해 질 녘 노을이 만들어내는 장관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수십 년 내공의 진정한 매력
    주변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잔디는 최상의 질을 유지했다. 꽃과 나무는 생명력을 머금었다. 하늘에서는 옅은 구름이 노닐었다. 필드에는 한 편의 그림이 펼쳐졌다.

    5월 중순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컨트리클럽. 노부부는 골프를 치며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언뜻 봐도 환갑을 한참 넘긴 것 같았다. 하지만 부부애만큼은 젊은 커플 못지않았다. 상대의 샷에 연신 응원의 목소리를 얹고, 토핑이 나도 타박하는 법이 없었다. 다음 홀이나 그린으로 이동할 때는 어김없이 손을 맞잡았다. 캐디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이미 선망의 대상이었다.

    “두 분은 여기 회원이세요. 회원에 한해 2인 플레이가 가능하죠. 오로지 두 분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세요. 기분 전환 겸 운동 삼아 오시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얼마나 챙기는지 질투가 날 정도예요. 캐디에게도 매너가 좋아 인기 최고죠. 다들 두 분처럼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해요. 골프나 인생 모두 욕심 없이 즐기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습니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가 골프 묘미

    2009년 디 오픈의 주인공은 단연 톰 왓슨이었다. 연장 혈투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갤러리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환갑의 나이에도 골프의 매력을 온몸으로 보여준 노장의 투혼은 동료 선수들까지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이자 우승자였다.



    PGA에 톰 왓슨이 있다면 LPGA에는 줄리 잉스터가 있다. ‘할머니 골퍼’로 불리는 잉스터는 현재 우리나라 나이로 52세다. 지금도 20대 선수 못지않은 열정과 패기를 지닌 그녀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베스 다니엘이 가진 LPGA 최고령(46세) 우승자 타이틀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또 다른 목표는 젊은 선수들이 꿈꾸는 롤 모델이 되는 것. 골프팬들은 그녀의 도전과 집념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골프는 황혼기에도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프로 선수만의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스코어에 대한 부담이 덜한 아마추어 골퍼에게 더 알맞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더욱이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즐거움을 동시에 안기는 스포츠여서 어떤 골퍼는 골프를 두고 “사람이 건강하게 늙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노화를 막으려면 여러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중 적당한 운동량과 가벼운 스트레스는 필수다. 이 두 가지는 골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필드에 나가면 평소보다 많이 걷게 되고, 자연스레 삼림욕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골퍼는 임팩트 순간에 무아지경이 되는데, 무의식에 빠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뇌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골프를 노화 방지를 위한 최고의 스포츠로 치는 이유다.

    아마추어 골퍼의 첫째 로망은 은퇴 후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자면 몇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시간과 경제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라운드 동반자다. 시간과 경제력을 갖췄지만 선뜻 떠오르는 동반자가 없다면 골프의 진짜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골프 5박자_시간·돈·동반자·건강·실력

    세 가지 조건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요소가 또 있다. 건강과 실력이다. 18홀을 무난히 돌 수 있는 체력이 없다면 동반자에게 짐이 될 뿐이다. 실력은 친구들과 함께 필드를 거닐며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더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동반자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이다. 한 타를 덜 친다고 해서 황혼의 골프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최고의 골퍼는 실력보다 매너를 갖춘 동반자다.

    세 가지 조건과 두 가지 요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연습 없이 보기 플레이어가 될 수 없듯이, 젊었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그러면 노년의 골프는 한층 즐겁고 풍성해진다.

    혈기왕성할 때와는 달리 노년에는 주의할 점이 많다. 과욕은 절대 금물이다. 비거리에 욕심을 내다 부상하기 십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거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정확성으로 핸디캡을 유지하면 된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페어웨이는 젊은 골퍼도 건강을 잃을 수 있는 환경이다. 반면 기온이 내려가면 몸 풀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몇 년 전 클럽을 창고로 옮긴 정열영(72) 씨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30대 중반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 다른 운동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필드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갔어요. 머리를 얹어준 사람만 수십 명 됩니다. 50대 중반까지 싱글 수준을 유지했지만 60대에 접어들자 하루가 달라졌어요. 드라이버 비거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파4홀에서 ‘투 온’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 허리를 삐끗했어요. 준비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인데 허리가 쉽게 낫질 않네요. 건강은 괜찮지만 골프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여서 말년의 유일한 호사를 못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라운드를 나가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워요. 골프 대신 가벼운 등산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노년에 빛나는 구력, 욕심을 버려라

    2011년 일본 시니어투어 상금 왕으로 등극한 김종덕(61) 프로. 그는 한때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에 진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일본 시니어투어를 발판 삼아 제2의 골프 인생을 열었다. 그의 도전은 일본에서 멈출 것 같지 않다. 지난 7월 한국인 최초로 US시니어오픈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미국무대 진출을 선언했다. 그는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며 “한 계단씩 오르며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추어 중에는 김 프로처럼 ‘늦바람’ 난 골퍼가 적지 않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늦바람이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사업을 하는 이규황(57) 씨가 좋은 사례다. 이씨는 30대 후반에 처음 클럽을 잡았다.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남들처럼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들어선 50대 초반,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날은 유난히 손맛이 좋아 베스트 스코어인 81타를 친 겁니다. 동반한 친구, 후배에게 기분 좋게 한 턱 쐈죠. 그 다음부터 골프의 참맛을 알겠더라고요. 이젠 욕심 버리고 즐깁니다. 나이 들수록 핸디캡도 늘어나겠지만 개의치 않아요. 지금은 골프가 내 삶의 활력소입니다. 3년 전 아내에게도 클럽을 선물했어요. 요즘 부부 동반으로 한 달에 한두 번 라운드를 나가는데, 사업에서 손을 떼면 아내나 친구들과 함께 골프나 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길 생각입니다.”

    노년에도 한창때처럼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날릴 수는 없다. 대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귀신 같은 퍼팅으로 커버할 수 있다. 흔히 구력 골프라고 한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내공은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사실 골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즐길 줄 아는 여유다. 그런 여유가 있는 골퍼는 라운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고 동반자의 코스 매니지먼트까지 향상시킨다. 노년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골프는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 라운드에서의 재미와 여유는 황혼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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