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와 소통 방해하는 세력 때문에 힘들었다
- 이해 부족해 ‘분산 개최’ 주장…시간 낭비 말아야
- 88서울올림픽, 기업에서 뺏은 돈 쓰고 남았다고 흑자?
- 국민 관심 낮아 걱정…지역이기주의 버리자
‘飛翔韓國(비상한국).’ 대한항공 회장 접견실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 글귀다. 1979년 3월 1일 대한항공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쓴 글이라고 한다.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이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들인 조양호(66) 회장은 지난해 7월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정부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니, 2대에 걸친 묘한 인연이다.
“요즘 대한항공 업무는 거의 못해요. 조직위원장을 맡았으니 조직위원회부터 성공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당장 내년 2월부터 시작하는 테스트 이벤트(동계종목 월드컵대회와 챔피언십)를 통해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준비를 마칠 때까지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이날 조 회장은 대한항공 업무보고도 ‘신동아’ 인터뷰 때문에 취소했다고 한다. 인터뷰는 10월 8일 오전 11시 ‘飛翔韓國’ 휘호가 걸린 회장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평창올림픽 정부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다. 대회 운영 준비는 조직위원회가 맡고, 경기장과 선수촌, 숙소 등 대회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건설하는 것은 강원도 소관이다. 이질적인 조직이다보니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IOC와 ‘신뢰’ 회복”
여기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까지 나서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지 깊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해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이 그만두고 조 회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 요즘 IOC와 문체부, 강원도 등과의 관계는 좀 어떻습니까.
“소통과 신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IOC와는 신뢰 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문체부도 상하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도와준다면 소통이 잘될 것 같아요. 오늘 문체부 장관을 만났는데, 조직위에 유연성을 좀 달라고 해서 어느 정도 합의를 봤어요. 조직위는 공무원과 민간이 섞인 ‘반관반민(半官半民)’이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경직될 수 있어요. 강원도와의 관계는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지사 밑에 있는 사람들이 중간에 방해를 해서 소통이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 어떤 사람들이 방해를 한다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고, 도지사에게 부탁해서 그 사람을 교체했어요. 올림픽에 대해서 잘 이해도 못하고 강원도의 이익만을 생각하다보니 자꾸 반대하고 시간만 끌면서 일을 지연시켰죠. 올림픽은 강원도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인데 말입니다.”
▼ 경기장 공사가 많이 늦어졌는데요, 내년 테스트 이벤트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공사는 걱정 안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죠. 국제 경기 운영 노하우를 사람들이 제대로 습득해야 하는데 얼마나 잘할지 모르겠어요. 첫 번째 테스트 이벤트(FIS알파인 남자월드컵)는 실패를 각오하고 교훈으로 삼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최소한 패스(통과). 낙제는 면해야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죠. 경험자를 얼마만큼 확보하고 훈련을 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 분산 개최 문제는 이제 정리된 겁니까.
“일부 사람들이 자꾸 오해를 하는데, ‘어젠다 2020’이라는 게 무조건 분산 개최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조금 떨어져 있어도 기존 시설이 있으면 그걸 활용하자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동계스포츠가 발달하지 않아 ‘기존 시설’이랄 게 없어요. 다 새로 지어야 해요. 어젠다 2020의 취지와 맞지 않아요. 일부에서 주장하는 분산 개최는 ‘지금 짓는 경기장 공사를 중단하고 다른 곳에 새로 지으라’는 것인데, 그건 테스트 이벤트 일정상 공정을 맞출 수 없어요. 예산도 더 들어가요. 이제 더 이상 시간낭비는 하지 말아야죠.”
진정한 흑자 올림픽
▼ 당초 예산이 8조8000억 원에서 13조 원으로 늘다보니 ‘과잉 투자’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처음 예산을 짤 때, 동계스포츠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핑크빛 미래만 꿈꾸면서 편의대로 짜놨어요. 올림픽을 유치하고 난 뒤 IOC와 국제경기연맹(IF) 등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건설계획에 반영하면서 예산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것도 확정된 설계도면이 아니었어요. 실제로 공사를 하다보니 우리가 모르던 게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예산이 늘어난 겁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요. 예를 들어 10원이 들어가는 공사인데 예산을 15원으로 잡았다가 12원으로 깎아주는 것하고, 8원으로 잡았다가 10원으로 맞추는 것 중에 어느 편이 예산을 절감하는 겁니까. 내용을 잘 보고 판단해야지, 단순 발표만으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예산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예산 절감이라는 말씀인가요.
“나중에 보면 다 알겠지만, 구매하기로 계획한 것을 다 렌털(임차)로 바꿨어요. 예를 들어 설상 장비나 대회기간에만 필요한 4000~5000대의 자동차 같은 것은 살 필요가 없거든요. 한꺼번에 다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한 2000억 원 가까이 줄였습니다. 획일적으로 숫자를 줄인 것이 아니라, 저희 나름대로 최대한 따지고 검증해서 효율적으로 예산을 절감하는 거죠. 제가 기업인이다보니까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 동계올림픽 개최지로서 강원도 평창의 매력은 어떤 것입니까.
“군(郡)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관광단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죠. 그래서 ‘한국의 알프스’라고 부르는 것 아닙니까. IOC나 국제경기연맹 인사들도 극찬합니다. 문제는 교통과 숙박시설, 음식점 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을 얼마나 갖추느냐죠.”
▼ 지금 상황에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까요.
“먼저, ‘흑자 올림픽’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조직위가 부동산으로 잔뜩 돈을 벌었는데, 말이 후원이지 사실상 기업들로부터 강제로 뺏은 거죠. 그 돈으로 실컷 쓰다 남으니까 흑자라고 한 겁니다.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흑자 올림픽이라는 것은 올림픽을 치르고 10년, 20년 이후를 보면서 그 유산이 투자 가치가 있었느냐를 따지는 것이거든요.
평창올림픽 예산 13조 원 중에서 조직위 운영자금은 2조 원 정도이고 대부분 강원도 개발을 위한 예산인데, 장기적으로 지역 균형 발전의 효과가 얼마나 나는지를 봐야 해요. 지금까지는 강원도에 관광객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불편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안 갑니다. 일본이나 동남아, 유럽 등 해외로 나가죠. 이제 전 세계가 경쟁체제에 돌입했어요. 이번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 시설은 물론 호텔 및 숙박, 서비스, 위생시설 등의 기반을 닦아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이 강원도를 찾아오도록 만드는 게 흑자 올림픽이라고 저는 봅니다.”
▼ 그런 걸 언제쯤 평가할 수 있을까요.
“2018년 3월 올림픽 직후에 수지타산을 따지면 안 됩니다. 그때는 적자일 게 뻔하거든요. 최소한 2020년이 지나야지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 거라고 봐요.”
“대한민국을 보여줘야”
▼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위생 상태는 둘째치고, 지금 강원도 음식점 메뉴판을 보면 다 우리말로만 돼 있고, 아무런 설명도 없어요. 종업원이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강원도와 협의 중입니다.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각국 언어로 다 설명해주고, 대화가 안 되더라도 소통할 수 있도록 각국 언어로 카드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위생 점검 기준 수준도 좀 더 올리고 ‘추천 식당’을 선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에요. 강원도가 성공하면 전국적으로 다 그렇게 하도록 해야죠.”
▼ 정부가 기치로 내세운 것이 ‘문화올림픽’입니다.
“평창만 보여주면 안 돼요. 대한민국을 보여줘야죠. 뭘 보여줘야 하느냐는 다 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에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문화가 아니라, 외국인이 관심 갖는 한국 문화를 찾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문화가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 외국인에게 전파될 수 있거든요.
우리 문화는 굉장히 풍부해요. 제가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한·불 교류의 해’ 양국 공동조직위원회) 한국 측 위원장인데, 양국에서 200개 넘는 이벤트가 진행 중이에요. 프랑스 각 지역에서 우리나라 문화행사를 100개 이상 하거든요. 전부 프랑스 쪽 전문가들이 직접 보고 골라간 거예요. 우리 문화 전문가와 외국 문화 전문가들이 협력해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하는 문화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창올림픽 관전법
▼ 조직위원장을 맡은 지 1년 3개월이 지났는데,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는다면?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돼요. 문제는 평창올림픽 유치 당시와 비교할 때 국민의 관심이 무척 저조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사실 올림픽 때도 가장 걱정되는 게,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못 따면 국민의 관심이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그러면 흥행에 크게 실패할 수도 있거든요. 우리 선수가 출전하지 않아도 국민이 즐길 수 있도록 컬링이라든지 생소한 동계올림픽 종목 ‘관전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포츠 선진국이 되려면 장애인올림픽이 성공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실패했어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도 그랬고. 그건 조직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그건 국민의 책임이 큽니다. 성공도 국민의 성공이고, 실패도 국민의 실패예요.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평창올림픽은 강원도 체전이 아닙니다. 지역이기주의를 버려야 해요. 강원도는 불평할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해요. 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을 따지면 고속철도가 강릉까지 깔릴 수 없는데 올림픽 때문에 그게 가능해진 거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협력할 것이냐를 먼저 생각해야지, 왜 강원도 사람에게 공사를 맡기지 않느냐를 따질 게 아니거든요. 철도청도 그래요. 올림픽을 위해 공사를 먼저 해주고 나서 따질 걸 따져야 하는데, 국가적인 행사라는 의식이나 이해가 굉장히 부족한 것 같아요.
조직위에 다 맡겨놓고 ‘뭐가 잘못됐다’ 훈수만 둘 게 아니라 뭔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해요. 너무 부정적인 분위기로 흐르다보니 다른 지역에서는 관심이 없는 것도 큰 문제인데, 그걸 바꾸는 게 앞으로 조직위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언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