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치컨설턴트

돈 없으면 당선도 없다

미 선거판의 막후 주역, 정치 컨설턴트의 세계

  • 이흥환 재미언론인

돈 없으면 당선도 없다

2/3
막대한 돈을 들여 정치 컨설턴트를 고용할 수 있는 자금줄 가운데 가장 든든한 밧줄은 이른바 ‘소프트 머니’다. 기업0104조합·개인 등으로부터 제한 없이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이 대부분 소프트 머니로 들어간다. 클린턴 대통령의 1996년 재선 캠페인이 이 소프트 머니의 덕을 톡톡히 보았고, 공화당도 곧 선거판의 이 금과옥조 같은 전례를 뒤따랐다. 공화당이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모금할 소프트 머니는 무려 1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민주당 의회 선거위원회(DCCC)의 경우에는 2000만 달러의 소프트 머니를 모금해놓았으며, 광고 캠페인은 미시시피 강을 기준으로 동서부로 양분해 두 컨설팅 그룹에 나누어 주었다.

가장 최근인 9월 첫째주에 발표된 커먼 코스(Common Cause) 그룹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1999년 1월부터 2000년 6월까지 18개월 동안 공화 민주 양당이 모금한 소프트 머니는 무려 2억5600만 달러에 이른다. 4년 전인 1996년에 비해 82%가 많은 금액이다. 이 가운데 75명의 기부자는 5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최대 금액의 단일 기부자는 AT·T 전화회사로 양당에 290만 달러를 기부했다. 노동조합들에서도 160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이는 4년 전과 비교해보면 3배나 상승한다.

개인 기부자 가운데에는 톰슨 의료 회사의 대니얼 에이브러햄(Daniel Abra- ham) 회장이 민주당에 1200만 달러를 기부해 최대 금액 기부자의 기록을 세웠다. 당별로 보면 같은 기간에 공화당이 1억3074만 달러를, 민주당이 1억1800만 달러를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 선거판의 거대한 지하 수맥인 소프트 머니야말로 미국을 움직이는 필요악의 원동력이다. 민간 기업, 협회, 압력단체, 개인 등이 모두 소프트 머니의 사슬을 형성하는 주체들이다. 소프트 머니의 형성 과정과 사용 방법은 선거판의 자금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캘리포니아의 벤처 기업 D사는 민주당이나 민주당 후보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치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로컬 텔레비전 방송국의 광고시간을 D사가 사들였을 경우, 이것 역시 소프트 머니다. 그 시간에 공화당 후보나 정책을 비난하는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겉보기에 D사는 엄연한 광고주다. 광고는 물론 D사의 이름으로 방영된다. 낙태, 총기 규제, 세금 감면, 교육, 외교 및 국방 정책 등 이슈는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 D사와 민주당은 겉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런 식의 소프트 머니는 단순한 정치 기부금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노동조합이나 각종 협회 등 거의 모든 이익단체와 압력단체들이 이런 식으로 선거 운동에 참여한다. 개인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광고 시간을 살 수 있다. 이런 구조를 파악해, 각 지역의 특색과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알아야 1급 정치 컨설턴트로 군림해 큰돈을 만질 수 있다.

거액의 소프트 머니가 텔레비전 광고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만, 정치산업에서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정치 광고 전략가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부동표 공략에서 텔레비 광고 효과가 전 같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방송매체 종사자들조차 전통적인 재래식 텔레비전 광고의 영향력 감소를 경고하지만 동시에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여전히 어떤 매체보다 우위에 서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터넷이 대안 매체로 떠올랐지만, 언론 전략가들이 원하는 광범위한 시청자들을 확보해 붙들어 놓기에는 역부족이다.

바로 여기에서 방송 매체 광고의 역설이 나오게 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감소하면 할수록 방송 매체의 은행 구좌에는 돈이 더 들어오는 것이다. 영향력이 없을수록 광고 시간을 그만큼 더 많이 사기 때문이다. 광고 시간을 아무리 많이 산다 해도 효과는 같은 수준에서 맴돈다. 결국 효과가 떨어지는 것을 알면 알수록 돈은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돈 없으면 당선될 생각 말라”

선거판의 색깔을 결정짓는 것은 돈의 규모다. 없는 돈 긁어모아 푼푼이 쪼개 쓰는 선거판은 탈 많고 잡음 많고 구질구질하게 마련이지만, 선거 전략가가 한 달에 수억 원씩 챙길 돈이 흘러 다니는 미국의 선거판은 그야말로 포성만 들리지 않고 피비린내만 나지 않을 뿐 정치 생명과 사업 생명을 내건 전쟁터가 아닐 수 없다.

전미 정치 컨설턴트 협회(AAPC) 회장인 레이몬드 스트로서는 컨설턴트들의 목표야말로 ‘이윤의 극대화’라고 서슴없이 토로한다. 정치인들에게 줄 수 있는 자문의 질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컨설턴트들이 노리는 이윤의 폭이 결정된다. 스트로서는 “돈이 선거 구조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컨설턴트는 뭘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각 당에서 서열 3, 4위 안에 드는 1급 언론 전략가들은 1년에 평균 최소 100만 달러는 거뜬히 거머쥔다. 이들이야말로 정치판을 주무르고 정치 산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컨설턴트 귀족들이다. 여름은 이탈리아, 겨울은 하와이에서 보내고, 경관 좋은 휴양지에 으레 별장 한두 채 정도는 있으며, 각종 스포츠카에 고급 와인도 수집한다.

이들보다 한 급수 낮다 해도 1년에 50만 달러의 수입은 보장된다. 아메리칸 대학이 정치 컨설턴트들을 대상으로 최근에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응답자의 20%가 1년에 2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컨설턴트들의 4분의 1이 컨설팅을 하는 이유로 댄 것이 돈벌이였다. 컨설턴트들은 고객들(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에는 큰돈이 든다는 사실을 늘 설교해야 한다. 이런 설교를 하는 컨설턴트들의 낯빛에서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컨설턴트들의 정치 자문 중에는 후보자들을 ‘사회화(socialization)’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정치판·선거판의 습성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 초년생이거나 선거판에 처음 뛰어든 후보자일수록 이 사회화 학습은 필수적이다. 말이 그럴듯해 사회화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공격용 광고를 되도록 많이 방영하도록 만들고, 돈은 현대 정치라는 요리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의 재료라는 사실을 알아듣게끔 만드는 것이다.

지난 3월에 타계한 베테랑 여론조사가 윌리엄 해밀턴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후보들은 돈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필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 당선되려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별, 배신, 불신의 와일드 웨스트

선거판에 뛰어든 후보들은 정치 컨설턴트들이 만들어내는 메시지의 위력에 매혹되어 그들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끝은 종종 비극이 된다.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고 공개될 수도 없는 돈 문제 때문에 후보들은 자신이 고용한 컨설턴트들을 해고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후보와 컨설턴트를 맺는 끈은 돈이다. 또 선거판 특수를 노려 한몫 단단히 챙기는 컨설턴트들이 만지는 돈이 워낙 어마어마한 탓에 후보와 컨설턴트 사이의 경계와 불신의 강도는 공존공생의 필요성 못지않게 살벌하고 질기고 강하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자문이 천문학적 숫자의 자문비를 요구하자 면전에서 노발대발한 적이 있다. 이 일화는 컨설턴트 세계에서 금세 화제가 되었다. 마이크 머피(Mike Murphy)는 공화당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표급 언론 컨설턴트다. 동료와 같이 만든 텔레비전 정치 광고를 각기 다른 두 고객에게 팔았다가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로 역시 컨설턴트 귀족 대열에 드는 베테랑인데, 컨설턴트와 고객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내가 만약 삼류 정치 지망생이고 컨설턴트를 구하는 중이라면, 금속 탐지기와 거짓말 탐지기를 구입하기 전에는 절대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겠다. 솔직히 말하면 컨설팅을 그만둘 생각이다. 좀더 합법적인 일, 예를 들면 개 경주에 돈을 거는 게 낫다고 본다.”

컨설턴트들 간에도 불신의 벽은 높다. 컨설팅 펌이 깨졌다면 필시 돈이 연관되어 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현재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의 1급 전략가로 뛰고 있는 스튜어트 스티븐스(Stuart Stevens)라는 사나이다.

스티븐스는 지난 1998년 컨설팅 동료였던 더글라스 매컬리프(Douglas McAuliffe)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매컬리프가 자기 고객인 의회 의원들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매컬리프는 즉각 벤저민 긴스버그(Benjamin L. Ginsberg)라는 변호사를 고용했다. 긴스버그는 “불행한 소송건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스티븐스가 경쟁자인 공화당의 언론 컨설턴트들을 상대로 똑같은 수법을 써먹고 있다는 사실이다”라면서 자신의 고객인 매컬리프를 변호했다. 그렇게 말했던 긴스버그는 지금 고객의 고소인이었던 스티븐스와 함께 부시 후보 진영에서 선거 자문을 맡고 있다.

부시 진영의 손꼽히는 일급 자문역 가운데 한 사람인 칼 로브(Karl Rove)의 일화 역시 비정한 컨설턴트 세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칼 로브는 연방 항소 법원에서 리처드 손버로(Richard L. Thornburgh)와 맞붙었다. 손버로가 1991년 특별 선거에서 상원 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칼 로브가 그의 정치 컨설턴트였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 손버로가 17만 달러의 컨설팅비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칼 로브의 주장이다. 손버로는 지금 칼 로브가 돕고 있는 조지 W. 부시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사람이다.

대개의 경우 컨설턴트들은 후보들보다 늘 한수 위다. 컨설팅비가 비싸다거나 너무 무관심하다고 컨설턴트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는 컨설턴트에게 ‘해고’당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보통 컨설턴트가 후보보다 더 이름이 나 있기 때문에 후보로서는 늘 컨설턴트를 모시게 된다. 이런 역학 관계를 모르고 컨설팅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등 컨설턴트를 박대했다가는 후보로서는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투표일을 불과 몇 주 남겨놓고 컨설턴트가 보따리를 싼 예는 비일비재하다. 유타주 상원 의원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오린 해치 의원도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경우에 해당한다. 공화당의 베테랑 전략가 샐 루소(Sal Russo)를 고용했다가 대선 중도 하차 한 달 전에 샐 루소에게 ‘해고’당했다.

2/3
이흥환 재미언론인
목록 닫기

돈 없으면 당선도 없다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