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호

한국은 동물실험의 천국

年 400만 마리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입력2004-11-01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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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공학(BT) 산업의 성장과 함께 국내서도 동물실험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죽어가는 동물이 1년에 400만마리에 이른다.
    ”목졸라 죽일 때요? 끔찍하죠. 펑펑 우는 애들도 많습니다. 죽인 동물이 꿈에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해요.”

    서울의 한 대학 실험실에서 동물실험을 하는 A씨는 동물을 죽일 때마다 죄의식을 느낀다. 사체는 소각하는 게 원칙이지만,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질식사시킨 뒤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토끼 눈에 새로 개발한 화학약품을 집어넣습니다. 토끼를 묶어두고 약품의 강도와 접촉시간 별로 차이를 두어 관찰하는데, 약품이 강할 때는 토끼 눈이 타들어가기도 하지요.”

    대기업 소속의 수의사로 10년 동안 실험동물을 관리한 K씨의 경험담. 실험대상 동물은 호텔 같은 감옥에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간을 위해 죽어간다는 게 K씨의 설명이다.

    우리는 복제동물 탄생이나 신약개발 성공 소식을 꽤 자주 접한다. 그러나 이런 환희의 이면에는 실험으로 죽어간 수백만마리의 동물들이 있다. 비누와 세제는 물론이거니와 의약품, 각종 공업제품까지 인간의 몸에 닿는 것이라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실험용으로 죽어가는 동물은 연간 400만마리로 추산된다. 한국실험동물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실험동물 생산능력이 연 2000만마리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간 3000만마리, 세계적으로 2억마리의 동물이 실험용으로 죽어간다.

    실험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은 마우스, 랫트 등의 설치류가 80%를 차지하고 햄스터, 기니픽,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원숭이 등이 뒤를 따른다

    실험실에서는 마취제 없이 한계상황 실험(저온·고온실험), 혐오자극법, 전기충격법, 사회적 박탈실험, 학습된 무력감, 종양을 과다하게 키우는 실험이 빈번하게 행해진다. 동물 신진대사를 이용해 살아있는 생명의 반응을 보는 실험이 대부분. 실험재료가 된 동물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K대학 생리심리학연구소 C연구원(26)의 말.

    “동물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얼어죽는 일도 흔합니다. 가끔씩 비닐하우스에서 보관되고 길러지기도 합니다, 먹을 게 없으면 탈출하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서로의 몸을 뜯어 먹습니다.”



    동물실험의 천국


    지난 2월4일 밤. 성공회대 박창길 교수는 뉴스를 보다 분통을 터뜨렸다. 한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던 동물실험 장면이 방송됐기 때문.

    “담배 한 개비당 1mg의 니코틴이 들어 있는데, 같은 양의 니코틴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30초 만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었습니다.”

    이같은 기자의 멘트가 끝나고 몸을 떨며 죽어가는 쥐의 모습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방송이 나간 뒤 ‘동물권 옹호론자’들은 방송 내용에 격렬히 항의했다. 니코틴의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쥐를 이용하면서 아무런 윤리적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

    박교수는 이런 종류의 비윤리적인 실험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치 없는 실험입니다. 애들의 눈을 통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니코틴의 해로움보다 죽은 쥐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한 생명을 이처럼 원칙 없이 죽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한국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동물실험의 천국’으로 불린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동물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이 있다. ▲다른 방법을 찾을 것(Replacement)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것(Refinment) ▲실험횟수를 줄일 것(Reduction). 3R이라고 불리는 이 원칙이 한국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동물복지론자들은, 동물권 보장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실험동물의 생명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물실험이 아무런 감시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집니다. 실험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윤리적인 실험을 하라는 겁니다. 흡연 마약 무기가 동물이 만든 것입니까. 왜 인간의 죄와 악을 동물로 해결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박교수가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가 공동으로 동물실험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한 얘기다.

    우리에게는 동물복지라는 말이 너무도 낯설다. 연 400만마리로 추정되는 실험동물 통계도 정확히 검증되지 않은 수치고,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연구실, 사용되는 동물의 종류, 죽은 동물의 폐기방법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동물실험에 관련된 정부 부처는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교육인적자원부 농림부 환경부 등. 이처럼 관련된 부처의 수는 많지만, 각각의 부처는 동물실험을 제대로 관리, 규제하는 법적 장치는 미흡하다.

    농림부의 최염순 사무관은 “동물의 특성에 따라 각 부처별로 담당해왔지만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 여론에 따라 동물보호법을 강화하고 각종 법률도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고도 빈번하다. 1998년엔 바이러스실험에 사용한 개 5600마리가 식용으로 유통된 일이 있었고, 1999년엔 백신의 재료로 사용된 쥐의 뇌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선진국에서는 동물실험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무분별한 실험을 어느 정도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초 ‘24시간 이내에 실험동물에게 물과 먹이를 공급해 줘야 한다’는 실험동물 복지에 대한 제도를 마련했다.

    유럽도 2000년 4월 유럽평의회가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판매를 전면 금지키로 결정했다. 동물실험은 인간의 건강과 공익이라는 목적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유럽인들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동물실험에 관련된 인터넷 게시판에선 토론 열기가 매우 뜨겁다. 논쟁의 대부분은 ‘실험동물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개정안은 최초로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동물의 생산 연구 처리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기존 동물보호법에도 선언적으로 ‘동물복지’와 ‘고통최소화의 원칙’을 규정해 놓고는 있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었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의 이원창 간사는 “선진국들에서는 150여 년 전부터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면서 “법 체제가 낙후된 우리는 늦은 만큼 더욱 강력한 제재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실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연구자들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동물실험을 앞두고 긴장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쥐 실험마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많고, 진화된 동물에 이르면 그 고통이 더욱 심해진다.

    동물실험은 상당수가 독성물질을 테스트하는 것이기에 실험기간 동안 그 고통을 함께해야 하는 연구자의 아픔도 크다. 따라서 연구소에서는 ‘수혼비’나 ‘동물위령탑’을 세워놓고 연구를 위해 생명을 바친 동물들의 혼을 위로한다.

    전문가들은 연구자에게 동물실험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고통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입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동물실험에 적응하지 못해 전공을 바꾸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장 연구자들 중에는 법제정의 효용성을 인정하면서 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실험동물학회 한상섭 회장의 말.

    “윤리규정을 명시한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은 우리가 선진국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신호예요. 현재 논의되는 법률안에도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부규칙을 보완해 나가고 윤리성에 대한 논의가 더 이뤄진다면 동물복지에 관한 한 진일보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시민단체와 동물복지론자들도 논의중인 법안 자체의 윤리규정이 선언적이고 감시감독 기능이 미비하다고 지적 하고 있지만 법 제정 움직임에 대해선 환영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인간이 동물을 지배할 권리가 없으며 더욱이 생명의 질서를 제어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물실험이 인류복지에 기여한 사실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의 과학 수준은 동물실험에 대한 윤리성을 논할 만큼 발전해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구자는 “동물의 복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아직도 굶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며 “무작정 동물복지 추구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서울대 박재학 교수도 “실험방법을 선택하고 개발하는 것은 과학자의 영역인데 표준적인 시스템을 강요할 수 없다”면서 “법률적 규제가 많아지면 자유로운 창의력이 중시되는 과학의 발전이 억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과학의 윤리성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한국 과학계는 시민사회에 등을 돌리고 폐쇄적인 구조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학발전과 동물권 확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환경정의연구소 한면의 박사의 말이다.

    “자연을 인간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았을 경우 인류는 곧 생태계를 통제할 수 없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과학이 시민과 함께하지 못하고 보편적인 윤리를 저버릴 때가 그렇습니다. 생명일반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과학발전이 진정으로 인류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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