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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SK텔레콤 최연소 상무 윤송이 박사

“과학 밝히는 작은 호롱불 되고 싶다”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SK텔레콤 최연소 상무 윤송이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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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얼짱’도 그저 하나의 길일 뿐이라는 말이네요. ‘비(非)얼짱’ 여성들한테 희망을 주는 발언이군요.

“얼짱도 엄연한 하나의 길이죠.”

-일상생활에서는 실례가 되는 질문도 인터뷰에서는 할 수 있거든요. 답변하기 거북하면 노코멘트 해도 됩니다. 스스로의 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코멘트 할래요.”

과기대 수석졸업, 만 24세에 MIT 박사



여기서 잠깐 윤 박사의 커리어 패스를 살펴보자. 서울 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했다. 한국과기대(KAIST)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만24세의 나이였다. 논문주제는 ‘감성을 가진 합성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 합성캐릭터는 인간과 기계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다. 그는 이 논문으로 미국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세계에서 단 한 명을 골라 주는 최우수학생 논문상을 받았다.

미디어랩에 처음 갔을 때 박사과정 3년차의 미국 남학생이 자신을 소개하며 윤 박사에게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윤 박사가 학위를 받고 귀국해 지난해 와이더댄닷컴 이사로 근무할 때 그 남학생으로부터 곧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이메일이 왔다. 윤 박사가 빠른 것일 뿐 그 남학생이 늦은 건 아니다. 보통의 경우 학위를 받는 데 6~8년이 걸린다.

MIT 미디어랩에서 윤 박사는 6명과 팀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전시회에 출품하는 합성캐릭터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다. 그녀는 석달 동안 하루 20시간씩 작업을 강행했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마감일에 맞춰 프로젝트를 완성한 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수면부족과 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급히 날아온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

-그렇게 집중하고 몰두하니까 박사학위도 남보다 훨씬 빨리 딴 것 아니겠습니까. 머리만 좋은 사람보다 집중하고 몰두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천재형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집중하는 노력형이라고 생각합니까.

“게으름을 많이 피워요. 천재도 아니구요.”

MIT 미디어랩 소장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디지털 전도사’로 통한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1995년 출판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원자(물질)의 시대는 가고 비트(정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네그로폰테 교수에게 직접 배웠습니까.

“네그로폰테 소장은 강의하거나 연구지도하지는 않아요. 내외부적 코디네이터 역할을 합니다. 내 아이디어에 대해 가끔 의견을 주고받았죠. 전세계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랩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15년 후 생활양식의 변화를 몰고올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데서 그분의 역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네그로폰테 스위치(switch·전환)라는 게 있어요. 1980년대만 하더라도 TV는 무선이었습니다. 전원만 꽂아놓으면 방송국에서 TV까지 무선으로 신호가 왔습니다. 당시 전화는 모두 유선이었죠. 그런데 네그로폰테 교수가 TV가 무선이고 전화는 유선이지만 곧 전화는 무선으로, TV는 유선으로 바뀔 거라고 예측했죠. 네그로폰테 교수는 다양한 응용분야에서 그런 식으로 어떤 기술의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연구를 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과학에 관심

윤 박사는 서울 양천구 목동 단독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0~80년대 목동은 도시와 농촌의 중간지대였다. 서울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반대편으론 논밭이 펼쳐졌다. 곤충채집을 하며 8시간씩 집 뒷산을 헤맸다. 길을 잃지 않으려 지도를 그려 가지고 다녔다. 양 옆으로 아카시아 나무가 늘어선 길이 있었다. 아카시아꽃이 폈다 지면 길이 흰 꽃잎으로 뒤덮였다. 바람에 실려오던 아카시아 꽃향기. 산에는 잠자리 사마귀 무당벌레 서식처가 있었다. 가다보면 호박밭도 나타났다.

부친 윤호식(56)씨는 서강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산업은행에 근무하다 한국증권금융으로 옮겨 상무를 지내고 2002년 퇴임했다. 어머니 이지수(54)씨는 한글 서예가로 국전 심사를 하기도 한다. 자녀를 위한 기도문, 이해인 수녀의 시, 정철의 사미인곡, 성경구절을 궁체로 즐겨 쓴다. 윤 박사는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소양을 물려받았다. 서예도 배웠고 바이올린 연주도 즐긴다. 과기대에 다닐 때는 그림 동아리 ‘그리미주아’를 만들어 활동했다.

-어머니는 예술인이고 아버지는 금융인인데 과학도의 길을 걷게 된 건 누구의 영향인가요.

“주변에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위인전 전집을 사주었다. 12권짜리 위인전 전집에서 마지막 11, 12권이 과학자편이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 유명한 과학자는 모두 등장했다. 다른 분야의 위인들은 한 번씩 읽고 넘어갔는데 과학자편은 반복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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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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