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사랑한다, 보고 싶다…기러기 가족의 애틋한 사랑방

  • 글: 박하영 IT칼럼리스트 nikoala@hanmail.net

    입력2005-04-21 15: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랑한다, 보고 싶다…기러기 가족의 애틋한 사랑방
    “오늘은 뭐하셨어요? 전 수영장에 갔었어요. 서울은 지금 봄이죠? 여긴 너무 더워요. 술 많이 드시지 마시고 식사 거르지 마세요!” “공원에 가서 찍은 사진 올렸어요. 이번 방학 때는 꼭 갈게요. 제 머리 많이 길었죠? 제 머리 어때요?”

    아홉 살 딸이 아빠에게 쓴 쪽지다. 딸과 부인을 싱가포르에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이정우(44)씨는 ‘토끼’와 ‘여우’가 보고 싶을 때마다 미니홈피에 접속한다. 요즘 이씨는 오늘은 딸이 어떤 말을 남겼을까, 어떤 사진을 올렸을까 확인하는 재미로 산다.

    이씨는 “미니홈피에 딸이 올린 사진을 보고 방문자들이 남긴 글을 읽는 게 즐겁다”며 “가끔 외로움을 털어놓는 일기를 쓰기도 하는데, 그걸 본 아내와 딸이 위로의 글을 올리고 다시 그 글에 댓글을 다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기러기 아빠가 된 김종진(38)씨도 미니홈피로 사랑을 나눈다. 엄마를 따라간 다섯 살짜리 아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고 아빠 사랑도 느낄 수 있도록 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 미니홈피에 이솝우화를 올린다. 부인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는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이라며 “몸은 떨어져 살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고 장래를 위한 좋은 투자까지 된다면 해볼 만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미니홈피는 인간관계를 넓히는 데도 좋다. 일촌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거나 모르는 사람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 김씨는 방명록에 기러기 아빠라고 소개한 40대 남자와 사이버 친구로 지내면서 다른 기러기 아빠들을 알게 됐고, 술도 한잔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는 “미니홈피로 만난 기러기 아빠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글을 보고 아내가 아주 좋아했다”며 웃었다.



    기러기 아빠뿐만 아니라 아들이나 딸, 손자, 손녀를 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쉽지만 미니홈피를 갖고 있는 가족은 그렇지 않다. 전화비가 들지 않고 실시간 채팅은 물론 얼굴을 마주보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건네기 쉬워진다. “사랑한다”는 말도 더 자주 하게 되고 마음속 고민도 털어놓는다. 싸이월드가 지난 1월 발표한 미니홈피 운영자 분포도를 보면, 40대 이상이 6%나 된다.

    하지만 미니홈피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이버 공해’로 전락하기 쉽다. 김종진씨의 관리 노하우는 이렇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사진을 올린다. 좋은 글이나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매일 쓴다. 가족이 공통으로 일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방명록에 반드시 댓글을 단다. 음악, 배경그림, 기타 액세서리 등 아이템을 사서 미니홈피를 꾸민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