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학원 안 가도 공부 잘하고, 휴대폰 없어도 기죽지 않아요”

  •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2/4
용돈이 궁한 은아는 가끔 음식점 전단지를 돌렸다. 주변 아파트를 돌고 나면 몇천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친구들처럼 휴대폰을 갖고 싶었지만, 전단지 돌리고 받는 돈으론 어림도 없었다. 겉모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갖고 싶은 가방도 있고 신고 싶은 신발도 있을 것이다. “부러웠냐?”고 묻자 은아는 “잠시 부러웠지, 그 뒤엔 별로 갖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요” 하며 씩 웃었다.

아버지는 연구원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정보통신 분야의 벤처기업을 설립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엄마 말에 따르면 “사람을 너무 믿은 게 탈”이라고 했다.

“아빠는 사업가적인 꼼꼼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냉정하질 못해요. 사업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한번 실패했으니까, 그래서 경험이 생겼으니까 다음엔 잘하실 거예요.”

은아는 아빠가 반드시 다시 일어서서 사업을 일굴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곧 예전에 살던 곳으로 이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래도 은아는 아버지가 연구원 생활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고 바랐다. 아빠가 안정적인 직장엘 다녀야 자기 마음도 편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실패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늦은 밤까지 뛰어다녀야 하기에 주말에나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다. 또 막상 아버지를 대해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뭐든 훌훌 털어놨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유흥가 점령한 ‘실패 부모’ 아이들

은아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이들과 함께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보면서 채워줬다. 어머니와 딸 셋이 좁은 방에 앉아 성경책도 읽고 그날 일어난 일도 얘기했다.

“힘들 때 엄마와 동생들이 함께 모여 얘기하면 마음이 좀 풀렸어요.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우리가 탈선을 하거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빠와 엄마가 더 힘들어하신다는 것을 대화하면서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은아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처럼 잘살지는 못하지만,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게다가 가고 싶어한 과학고에 진학해 유전공학도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어릴 때 필리핀에 선교활동을 하러 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배가 볼록 튀어나왔어요. 아파서 그렇대요. 그때 불치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유전공학자로 성공하면 공익재단도 만들고 싶어요. 저처럼 한때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어요.”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한 해 폐업이나 휴업신고를 하는 벤처기업은 1700여 개에 달한다. 매월 150개의 벤처기업이 문을 닫는 셈이다.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김대중 정부 때부터 벤처기업 지원책을 펴왔지만, 망한 기업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처지는 극명하게 갈리지만, 특히 사회안전망이 탄탄하지 못한 한국에서 실패자가 겪어야 하는 좌절은 상상 이상이다.

가장이 부도를 내고 식구들이 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상황에선 누구보다 아이들이 큰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갈 곳을 찾지 못한 아이들이 부모처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실제 최근 3~4년 동안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면서 유흥가는 신용불량자 자녀들이 드나드는 곳이 됐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범죄심리학)는 “밤 12시쯤 수원역에 가보면 술집과 유흥가를 점령한 것은 샐러리맨이 아니라 10대”라며 “대부분 부모가 빚을 지고 도망다니거나 사업에 실패해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집안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성공만 찬양했지, 실패의 후유증에 대한 면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정부가 실패한 벤처기업가에게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벗겨주고, 빚 상환을 유예해주는 등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준다는 발상은 높이 살 만하다. 아쉬운 점은 사업가들에게만 재기의 기회를 주지 말고, 덩달아 고생하는 이들의 자녀에게도 관심을 갖는 ‘가족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는 무관심하지만, 아이들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낸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준영이가 그렇다. 준영이는 초등학교 때 삼풍백화점이 주저앉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을 봤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어린 그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전교 석차 5등 안에 드는 준영이의 꿈은 그래서 훌륭한 토목기사가 되는 것이다.

2/4
글: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목록 닫기

‘아빠의 부도’ 그 후… 아이들이 살아가는 법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