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롤리타’에 빠진 일본

  • 남원상│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surreal@donga.com│

    입력2009-09-09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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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한 등장인물 이름인 ‘롤리타’는 나이가 어린 소녀에 대한 성인 남성의 비이상적인 성적 관심 등 소아성애 성도착증을 뜻한다. 최근 일본에선 롤리타 현상이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까지 급속히 파급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롤리타’에 빠진 일본
    2009년 8월4일 일본 도쿄의 그랜드프린스호텔 아카사카. 신문, 잡지, 방송 등 언론 취재진이 몰려든 가운데 호텔은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이 호텔에서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의 본선이 열렸다.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는 일본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를 선발한다는 취지의 대회다.

    올해 이 대회는 12회째를 맞았다. 대회에 대한 일본인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대회를 후원하거나 협력한 기업 프로필도 화려했다. 아사히TV와 영화사인 도에이를 비롯해 소프트뱅크, 음반사인 에이벡스, EMI뮤직 저팬, 워너뮤직 저팬 등 11개 기업이 후원했다. 협력사에는 롯데, 캐세이패시픽, 미즈노, 베네통 등 일본 국내외 15개 기업이 포함됐다.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의 참가자격은 12세부터 20세까지, ‘소녀’로 불릴 만한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올해 대회에 지원한 소녀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총 9만4810명에 달했다. 이 중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21명의 후보가 본선 진출 자격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열두 번째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의 영예를 차지한 주인공은 미야자키(宮崎) 현 출신의 중학교 1학년생 구도 아야노(13) 양이었다. 구도 양은 본선의 ‘모델 부문’에서도 수상해 역대 그랑프리 수상자 중 최초로 2개 부문을 휩쓸었다. 구도 양의 수상 장면은 곧바로 일본의 인터넷, TV를 통해 소개됐고 신문, 잡지들은 이 소식을 앞 다퉈 전했다. 열세 살의 미소녀는 하루아침에 전국적인 톱스타로 부상했다. 구도 양 이외에 본선 각 부문에서 상을 받은 소녀들도 화제가 됐다. 수상자 7명은 모두 12~15세에 불과했다.

    후보들이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나이가 어린 점을 고려할 때 ‘귀엽고 깜찍한 소녀를 뽑는, 재롱잔치 수준의 대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본에서 미소녀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대회를 보는 시각은 사뭇 달라진다. 미소녀는 일본 연예계, 애니메이션, 게임 등 대중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다. 큰 눈망울에 앳되고 청순한 얼굴. 하지만 묘한 ‘섹시함’을 겸비해 남성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지닌 캐릭터가 바로 미소녀다. 미소녀엔 ‘성(性)적인 매력’도 내포돼 있는 것이다.



    성적 매력 가진 미소녀 선발대회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가 단순히 ‘예쁘장한 소녀’를 가려 뽑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시상 부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엔 적절한 후보가 없어서 ‘해당자 없음’으로 발표됐지만, 이 대회엔 ‘그라비아 부문’이라는 상이 마련돼 있다. 그라비아는 원래 사진 기법을 뜻하는 용어다. 그러나 일본에선 젊은 여성의 수영복 화보집, 동영상 DVD 등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일본으로부터 이 말이 유입돼 ‘그라비아 모델’ ‘그라비아 화보’ 등으로 쓰이고 있다.

    ‘그라비아 부문’은 초등학생도 참가하는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에서 수영복 자태도 심사기준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이 부문 역대 수상자는 미성년자 신분으로 수영복 화보집 등을 발간하며 그라비아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또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 홈페이지에는 역대 수상자 프로필에 키와 더불어 소위 ‘B-W-H 스리 사이즈’(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길이)가 소개돼 있다. 미소녀를 판단하는 기준에 얼굴 못지않게 몸매도 중요한 부분임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에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두고 ‘여성의 성상품화’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상파TV 방송사가 방영을 중단하는 등 대회 규모가 축소되고 대중의 관심도 낮아졌다. 케이블TV로 방영되며 계속 열리긴 하지만, 여성계를 중심으로 이를 비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 같은 국내 분위기에 비춰볼 때, 초등학생도 후보로 나서는 일본의 ‘미소녀 선발대회’는 충격적이다.

    미소녀와 ‘로리콘’

    하지만 일본에선 이 대회를 두고 청소년의 성상품화라는 비판이나 논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소녀들은 스타의 꿈을 안고 도전하며 연예계에서도 신인 발굴을 위해 큰 기대를 거는 미인대회다. 여러 대기업이 후원하고 전국에서 응모자가 9만4810명에 이르렀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미소녀에 대한 거리낌 없는 선호 현상은 일본 사회 전반에 깊숙이 배어든 ‘로리콘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로리콘’(ロリコン)은 ‘롤리타 콤플렉스’를 줄인 일본식 외래어다. 롤리타 콤플렉스는 원래 유아, 소녀 등 나이가 어린 여성에 대한 (연령대가 높은 성인)남성의 성적 관심 등 소아성애 성도착증을 뜻한다. 원래 롤리타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소설 ‘롤리타’에 나온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이 소설은 1955년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됐으나 내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됐다. 그러나 1958년 미국에서 다시 발간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롤리타’에 빠진 일본

    로리콘 인터넷 쇼핑몰

    소설 ‘롤리타’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성 험버트는 열두 살 소녀인 의붓딸 롤리타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사랑을 느낀다. 험버트가 자신의 딸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안 아내 샬롯트는 충격을 받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험버트는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롤리타와 연인 사이가 되지만, 롤리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만다.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은 이 소설이 논란을 일으킨 뒤 러셀 트레이너 박사가 이 같은 심리를 연구한 내용을 쓴 ‘롤리타 콤플렉스’가 발간되면서 등장했다. 처음엔 나이 많은 남성을 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심리와 성충동을 의미했지만, 이후 성인 남성이 소녀에게 갖는 소아성애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게 됐다. 일본에선 ‘로리타’나 ‘로리콘’이 롤리타 콤플렉스를 대신해 자주 쓰인다. 이 말은 소아성애 경향을 보이는 성인 남성의 성도착증을 비롯해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등장하는 여자 유아 및 소녀 캐릭터에 매료된 팬이나 이 같은 취향을 다루는 문화를 전반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사실 나이가 훨씬 어린 여성을 찾는 남성의 취향은 일본만의 특화된 정서는 아니다. 중년, 혹은 장년의 남성 재력가가 젊은 여성과 불륜관계를 맺거나 결혼했다는 뉴스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종종 보도된다. 여성이 젊을수록 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선호한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로리콘은 남성의 본능 차원을 벗어나,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어내고 대중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성상품이 된 로리콘의 대상이 사춘기에 접어든 10대 청소년에 그치지 않고, 열 살 미만의 아동이 포함된다는 것도 특기할 점이다.

    로리콘은 일본에서 오타쿠(특정한 것에 취향을 가지거나 한 가지 취미에만 몰두하는 사람) 문화가 발전하면서 확산됐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연령에 해당하는 미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삼고 이들의 누드 사진이나 수영복 사진을 담은 화보집 등 상품화된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 대상에는 나이가 더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일본에서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는 로리콘 만화를 살펴보면, 이 문화에 심취한 변태적인 오타쿠들이 소녀에게 성적으로 원하는 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본 만화,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속옷이 드러나는 짧은 교복치마를 입고 청순한 표정을 짓는 미소녀로 대표된다. 이 같은 만화 중에는 중년 남성들이 소녀의 옷을 벗겨 묶어놓고 성적으로 괴롭히는 내용도 나온다.

    18세 소녀 모델의 누드집

    일본의 로리콘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후반 선보인 문예지 ‘아리스’와 1979년에 ‘아리스’의 후속으로 나온 ‘롤리타’, 만화잡지 ‘시베루’ 등을 통해 대중문화의 한 코드로 등장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로리콘 오타쿠들 사이에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루팡 3세-칼리오스트로의 성’(1979년 작)에 나오는 미소녀 캐릭터 클라리스가 로리콘 문화 확산에 불을 지폈다는 얘기도 있다.

    또 1970년대부터 미성년자를 모델로 하는 각종 누드 화보집이 팔리기 시작하고 성개방적인 풍조가 만연하면서 ‘미소녀와 로리콘’은 대중 속으로 더욱 파고들게 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로리콘 문화는 절정에 이르렀다. 미소녀를 내세운 누드 화보집과 잡지 등이 출판업계에 쏟아졌다. 만화, 영화, PC게임, 가요 등 대중문화계 전반에 걸쳐 미소녀 아이돌이나 미소녀를 성적인 코드로 상품화한 각종 콘텐츠가 유행하며 이른바 ‘롤리타 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1985년엔 미소녀 30여 명으로 구성된 아이돌그룹 ‘오냥코클럽’이 여중고생의 성생활과 관련된 가사를 담은 데뷔곡 ‘세라복(교복)을 벗기지 말아요’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일본에서 여고생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의 이 소녀들은 지상파TV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해 ‘친구들보다 빨리 섹스를 하고 싶지만’ ‘주간지에 나오는 것 같은 섹스’ ‘데이트 신청을 받아도 처녀인 채로는 시시해요’ 등의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불렀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로리콘 문화가 거리낌 없이 확산되고 이 같은 세태에 일반 대중도 호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물론 일각에선 미성년자의 누드나 이들을 성적 표현 대상으로 삼는 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부 잡지사가 소녀의 노골적인 누드 사진을 게재하는 대신, 만화 속 미소녀 캐릭터를 통해 더욱 선정적이고 변태적인 ‘롤리타 판타지’를 그려내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반발을 피해보려는 의도였다.

    롤리타 붐으로 미성년자가 성문화를 쉽게 접하게 되면서 성윤리 쇠퇴 등 문제가 불거지자, 맨 처음 반발하고 나선 것은 학부모들이었다. 이 같은 여론에 일본 의회는 1984년 잡지 등에서 소녀를 포르노의 대상으로 삼거나 노골적인 누드 사진을 게재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미성년자를 모델로 한 변태적 포르노 잡지가 강제로 폐간되는 등 제재도 한층 강화됐다. 특히 1988~89년 도쿄, 사이타마(埼玉)현 등 일본 각지에서 어린 소녀가 납치돼 강간, 살해당한 범죄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로리콘에 대한 비판 여론은 빠르게 확산됐다.

    미소녀 포르노물을 게재하던 로리콘 잡지들은 여론의 질타 속에 앳돼 보이는 성인으로 모델을 바꿨다. 그러나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포르노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해외에서 제작한 미소녀 포르노는 여전히 판매됐다. 1991년엔 18세 모델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 화보집 ‘산타페’가 발매됐다. 이 화보집은 예술작품임을 내세워 촬영(1990년) 당시 17세 이던 미야자와의 음모를 그대로 드러낸 ‘헤어누드’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산타페’ 출판사는 아사히신문 등 유력 일간지에 미야자와의 누드 사진을 전면광고로 싣기도 했다. 이 누드집이 각광받자 일본 출판업계에선 ‘헤어누드 붐’까지 일어 여성 연예인들이 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누드집을 잇따라 선보였다.

    독버섯처럼 번져나가는 로리콘 붐

    1990년대엔 중년 남성이 여자 중고등학생에게 돈을 주고 단발적, 혹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원조교제가 유행처럼 번졌다. 얼마 후 한국에서도 일본의 원조교제 행태가 그대로 유입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원조교제는 ‘미소녀 판타지’를 현실에서 찾으려는 중년 남성들이 만들어낸 로리콘의 부작용 중 하나였다. 1996년 처음 열린 ‘아동 성매매 금지 세계총회’에선 “전세계 아동 포르노물의 80%가 일본에서 생산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일본의 로리콘이 인터넷 등 통신망을 통해 각국으로 확산된 결과였다.

    일본 정부는 ‘아동 포르노 최대 생산국’ ‘변태적 문화 천국’ 등 국제적 비판에 시달리게 되자 1999년 ‘아동 성매매 및 아동포르노 금지법’을 제정했다. 여기엔 성문화가 개방적인 일본 내에서도 로리콘 문화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혹은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의 성매매 행위 증가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잇따른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 걸쳐 독버섯처럼 번지며 자리 잡은 로리콘을 근절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로리콘 산업은 경찰의 단속과 법적 제재를 피해 음지로 숨어드는 한편, 더욱 변태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우선, 누드 대신 비키니로 주요 신체부위를 가린 미소녀 그라비아 상품이 아동포르노 금지법의 영향으로 각광받았다. 성기, 유두 등이 노출되지 않으면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 모델들의 비키니 사진, 동영상이 로리콘 콘텐츠의 새로운 인기 상품으로 부상했다. 급기야 2007년엔 네 살 여자 아이의 로리콘 동영상 DVD가 발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치원 시리즈, 나쓰미 4세 1편’이라는 제목의 이 DVD는 주인공 나쓰미를 유치원생이라고 소개하며 수영복 차림으로 촬영한 동영상 등을 담았다.

    남자 어린이도 로리콘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같은 해 일본의 한 온라인 쇼핑몰은 4세 남자 어린이를 모델로 내세운 DVD ‘겐토군 4세’를 내놓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겐토군 4세’의 표지엔 상의를 벗은 아이가 배꼽 아래로 물을 붓는 모습을 근접 촬영한 사진이 실렸다.

    아이의 키, 몸무게 등 신체 사이즈와 함께, ‘남자인지 소년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같은 홍보 문구도 적었다. 당시 일본에서도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내세운 로리콘 상품이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세태에 대해 “이런 데에 자녀를 출연시키다니 대체 어떤 부모인가” 하는 비판이 거셌다. 인터넷 게시판엔 아동포르노 금지법을 강화해서 수영복 화보집 등에도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글이 대거 올라왔다.

    그러나 일본의 로리콘 전문 쇼핑몰들은 지금도 법적 규제 기준을 교묘히 피해가며 15세 미만 소녀들이 비키니 수영복이나 노출이 심한 교복 차림으로 촬영한 화보집, DVD 등 로리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상품 겉면엔 ‘초등학교 1학년’ ‘7세’ 등 연령을 큰 글자로 강조해서 ‘어릴수록 흥분한다’는 로리콘 오타쿠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진화(?)하는 변태적 성향은 나이가 어려지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2007년엔 한 로리콘 오타쿠가 개설한 ‘교통사고 키즈’라는 인터넷 사이트 실태가 언론에 보도돼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사이트는 교통사고 피해 어린이들의 사진을 게재하고, 회원들이 이를 성적 흥분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진, 동영상 등 ‘픽션 로리콘’이 아닌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은 사실상 규제에서 벗어나 있어 ‘막장 상품’을 쏟아냈다. 2006년 발매된 일본의 한 PC게임은 등장인물인 미소녀와 그의 어머니 등 여성 캐릭터 여러 명을 강간해 임신, 낙태시킨다는 엽기적 내용을 담기도 했다. 그림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게임 등 ‘가상 포르노’는 아동포르노 금지법 대상에서 벗어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 게임은 한국에서도 판매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국제여성인권단체 ‘이퀄러티 나우’가 올해 5월 이 게임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나서며 로리콘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로리콘 시장이 일본에서 거대해지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느슨한 규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아직 갈 길 먼 ‘反로리콘’

    국제사회의 질타 속에 일본 여당과 야당은 올해 7월 18세 미만 아동의 성적 장면을 담은 포르노물의 단순소지도 금지하는, 내용의 아동 성매매 및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그동안 아동포르노의 제조, 판매 등에 대해선 금지해왔으나 소지는 허용하던 기존 방침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자민당 지지율 하락으로 총선 일정이 잡히고 중의원이 해산되면서 이 개정안 처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편 인터넷을 통해 확산 중인 일본의 아동포르노 관련 범죄는 올해 1~6월 38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3% 증가했다. 신원이 파악된 피해 아동 수도 51.4% 늘어난 218명에 달했다. 모두 이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특히 아동포르노 제작 및 유통 등으로 적발된 사람은 지난해에 비해 53.7%나 늘어난 289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첨단 영상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3D그래픽을 활용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 실제를 방불케 하는 로리콘 포르노 상품의 등장을 현행법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다. 앞서 문제가 됐던 ‘강간 게임’의 경우처럼, ‘가상 포르노’에 대해선 아직 정부 차원의 규제나 단속 추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큰 문제는 법적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이미 일본인의 인식과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로리콘 문화를 근절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로리콘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단속망을 피해 소아성애 성향의 변태적 내용을 담은 사진, 동영상 등 콘텐츠는 수면 밑에서 계속 양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본열광’의 저자인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일본에서 로리콘이 확산되는 이유에 대해 “전통사회가 무너지고 개개인이 고립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들이 만만하고 단순한 상대인 어린이를 추구하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일본 특유의 ‘아마에(甘え·응석) 정서’가 로리콘을 양산한다고 덧붙였다. ‘아마에 정서’란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거부하려는 심리를 뜻한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원초적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경향이 로리콘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스스로를 어린아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도 미소녀를 찾는다는 것. 여종업원이 하녀 복장을 하고 손님의 시중을 드는 ‘메이드 카페’가 일본에서 성행한 것도 로리콘의 일종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 책임을 거부하는 한편, 보살핌을 받으며 ‘만만한’ 상대와 대화를 나누려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지나친 상업주의가 로리콘을 낳았다고 보기도 한다. 오타쿠의 눈길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성적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아직 미성숙한 존재인 소녀들이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올해 일본에선 ‘전일본 국민적 미소녀 콘테스트’ 말고도, 다양한 미소녀 선발대회가 열렸다. 소녀들이 비키니 수영복 차림으로 속살을 드러낸 자태가 가장 중요한 선발기준인 ‘미스 매거진’ ‘미스 플래시’ 등이 그것이다. 올해 처음 열린 ‘그라비아 저팬’은 아예 대회 이름에 그라비아를 넣어 어떤 목적을 가진 미소녀 선발대회인지를 분명히 했다.

    이들 대회에서 주요 부문 수상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였다. 물론, 언론은 각 대회 수상자 평균 나이와 최연소 후보를 소개하며 ‘어리다’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청순하고 앳된 얼굴의 수상자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몸매를 과시하면서 로리콘 오타쿠들의 ‘미소녀 판타지’를 만족시켰다. ‘그라비아 저팬’의 경우, 2위에 해당하는 ‘준그랑프리’에 13세 소녀가 뽑혔다.

    새로운 미소녀가 잇따라 탄생하면서 팬들도 열광하고 있다. ‘그라비아 저팬’의 엽서, 온라인 투표에 집계된 표는 무려 60만표에 달해 이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냈다. 미소녀 선발대회를 주최한 잡지사들도 수상자 이력을 내세운 수영복 화보집, DVD 등을 발매해 로리콘 오타쿠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쾌재를 부른다.

    로리콘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현주소.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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