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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거족 열풍

Let it be 그저 그들이 사랑하게 하라

  • 김신현경│이화여대 강사 todamo@hanmail.net│

쿠거족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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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거족 열풍

일일드라마 ‘밥줘’와 ‘두 아내’주인공은 남편에게 버림받지만 연하남과 연애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여자와 남자의 ‘나이’

6·25전쟁을 전후로 태어난 지금의 50, 60대는 남성의 경우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산업화의 역군으로서, 여성의 경우 산업화의 역군을 내조하고 미래의 산업 노동자들을 기르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세대다. 바로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 가족 내 재생산을 담당하는 여성, 자녀들로 이루어진 근대적 가족이 가장 바람직한 친밀성의 결사체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남성의 ‘능력’, 남성과 아이들을 잘 뒷바라지할 수 있는 여성의 ‘자질’이 결혼할 만한 남성과 여성의 ‘매력’으로 부상한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지겹도록 되풀이하는, 자식들의 연애 상대에 대한 부모 세대의 반대는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법이 없다. 부모 세대의 반대는 ‘그 남자가 너를 먹여 살릴 만한 능력이 있느냐/그 여자가 너를 조신하게 내조할 만한 성품이냐’하는 의구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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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대고 ‘요새는 여자도 일한다/요새 여자들은 다르다’는 대답을 한다면, 십중팔구 세상을 잘 모르는 철부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부모를 세상을 잘 모르는 뒷방 늙은이로 여기기도 어렵다. 그들의 이러한 인식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결혼은, 그리고 결혼으로 맺어져 이루어진 가족은 사회안전망이 부재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유일한 경제적 안전망이요, 나아가 감정의 결사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50·60대 부모 세대에게 연애란, 바람직한 한 번의 결혼을 위한 조건 따져보기나 다름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과 조건을 양립시킬 수 없다고 본, 유난히 더 비정한 세대인 것은 아니다. 결혼을 위한 조건을 따져보는 과정에서 눈빛을 주고받고, 마음을 키우고, 사랑하는 감정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핵심은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아니라 연애와 결혼의 관계다.



이 당시만 해도 연애는 철저히 최종적으로는 결혼을 염두에 둔 유희였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결혼은 남녀가 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예컨대 남성의 ‘돈 버는 능력’과 여성의 ‘재생산 자질’이 교환되어 결합하는 결혼에서, 여성의 성적 순결은 교환가능한 사물로 여겨졌다. 몸 한번 잘못 굴렸다가(! ) 인생 망치는 여자 이야기가 이 세대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이 때문이다.

‘부양 가능한’ 남자의 능력은 대략 집안 배경, 교육 정도, 나이에 따라 결정됐다. 교육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남자와 상대적으로 교육 정도와 사회생활 경험이 중요하지 않은 여자의 결합에서 나이 차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더하여 나이 차이로 인한 경험의 차이는 부부 사이에서 남성의 상대적 권력/여성의 상대적 무권력을 정당화한다. 남성과 여성에게 나이가 갖는 의미는 다르다. 남성의 나이는 경험이고 연륜이며 자원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 나이는 선택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축소를 의미할 뿐이다. 그녀의 경험과 연륜은 남성의 그것에 비해 자원이 되기 어렵다. 여성에게는 오히려 어린 나이가 자원이 된다.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 어린 여성의 결합은 별도의 명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 되지 않는다. 있다면 ‘원조교제’ 정도일 텐데, 그마저 나이 어린 여성들의 ‘자발성’ 운운하며 문제를 비껴가려 하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 유명 남성 인사들이 방송에 나와 결혼 당시 자신보다 한참 어린 부인을 거의 강간하다시피 해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무슨 대단한 사랑인 양 버젓이 자랑하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 있는 남성과 권력 없는 여성의 결합은 극도로 낭만화된다. 반면 ‘연상연하’니 ‘쿠거족’이니 하는 명명은 남녀 간의 사귐에 있어 상대 남성보다 (겨우 몇 살 정도라도) 나이 많은 여성을 다소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다.

연애 프로젝트 세대

왜 아니겠는가. 모든 권력이 그러하듯 나이가 갖는 권력 또한 상대적이라면 연하인 남성과 연상인 여성의 결합은 여성의 나이가 갖는 의미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음을 뜻할 터. 물론 아직 여성의 경험과 연륜이 남성의 그것과 동일하게 대우받고 있지 못하나 적어도 여성에게 직업이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게 되었다. 이는 여성에게 직업이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동시에 직업을 통해 쌓은 경험과 연륜, 네트워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남성에 비해 여전히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하지만, 집안에서 내조할 수 있는 자질만으로 만족하기엔 여성 자신도 많이 변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과 연애와 결혼의 상관관계 변화가 동시에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단 한 번의 연애로 결혼에 이르는 예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그 관계만을 위한 계획과 실행,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옮길 의식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일종의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이제 데이트 상대를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개인이 직접 자신의 정보와 원하는 이상형을 인터넷에 공개해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도 있으며, 인터넷 채팅을 통해 데이트 상대나 하룻밤 성관계 상대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연애 프로젝트’ 현상이라 명명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연애를 프로젝트화해서 기획, 관리, 통제하는 것이 일상화된 세대를 ‘연애 프로젝트 세대’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

또한 ‘연애 프로젝트’ 세대에게 결혼 전 성관계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성(性)은 상품을 통한 선물 교환과 더불어 현재의 관계가 두 당사자에게 의미하는 정도를 가리키는 일종의 이벤트로서 연애 프로젝트의 한 단계가 되었다. 그리하여 성 경험은 여성에게 결혼 전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의 맥락에서, 그 경험이 자신에게 좋았는지, 별로였는지를 묻는 자아 존중이라는 감정의 맥락으로 이동했다. 바야흐로 성을 통해 자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아를 규정하고 훈련하는 상황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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