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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어떤 타락한 청년의 초상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벨아미, 어떤 타락한 청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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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어떤 타락한 청년의 초상

‘벨아미’
기 드 모파상, 윤진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444쪽, 1만4000원

여기 또, 한 청년이 있다. 또, 라고 글의 운을 떼는 것은 이미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쥘리앵 소렐이라는 ‘문제적’ 청년을 소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신동아’ 2010년 8월). 나는 이 청년을 만나기 위해 지난해 7월 프랑스 중동부 산악 도시인 그르노블과 브장송 일대를 돌아봤거니와 지난 7월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또 한 청년이 태어난 고장을 답사하기 위해 노르망디 북부 에트르타 해안 마을로 떠났다. 청년의 이름은 조르주 뒤루아, 별칭은 미남 친구라는 뜻의 ‘벨아미’, 곧 소설의 제목이다. 첫 대목을 보자.

조르주 뒤루아는 계산대에 앉은 여자에게 100수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서 식당을 나섰다.

타고나기도 하고 또 하사관 시절의 자세가 몸에 배어 외모가 수려한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서서 익숙한 군인의 동작으로 콧수염을 꼬았다. 그리고 흡사 투망을 펼치듯, 아직 자리에서 앉아 먹고 있는 사람들 위로 미남 청년 특유의 눈길을 던졌다. -기 드 모파상, ‘벨아미’ 중에서

스탕달이 ‘적과 흑’(1830)을 통해 출신은 비천하지만 타고난 외양이 수려해 여심(女心)을 끌고, 그 여심(사랑)을 매개로 가슴속 야망(욕망)을 실현하려고 했던 한 청년의 초상을 쥘리앵 소렐로 창조했다면,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모파상은 ‘벨아미’(1885)를 통해 쥘리앵 소렐 이후 변화된 세계 속에, 조르주 뒤루아라는 또 다른 청년의 삶을 제시한다.

뺨이 붉게 달아오른 쥘리앵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는 열여덟에서 열아홉 살 정도의 청년으로, 보기에 허약했고 매부리코에 윤곽이 고르지 않지만 섬세한 인상이었다. 조용할 때는 깊은 생각과 열정을 담고 있는 커다란 검은 눈 … 날씬하고 균형 잡힌 몸매는 힘보다는 경쾌함을 드러냈다. … 그의 준수한 용모가 처녀들로 하여금 다정한 목소리를 내게 한 것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 … 어려서부터 그는 흥분의 순간을 맛보았다. 그럴 때면 자신이 언젠가 파리의 예쁜 여인들에게 소개되고 어떤 눈부신 행동으로 그녀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는 감미로운 공상에 빠지곤 했다. - 스탕달, ‘적과 흑’ 중에서

여러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또는 오랜 시기 한 작가의 작품을 좇아 읽다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곤 하는데, 한 작가의 완결된 작품이 주변의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전이되거나 확장되는 경우와 한 작가의 오래전 작품이 이후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져 완성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번역 출간된 모파상의 ‘벨아미’와 스탕달의 ‘적과 흑’ 간에도 모종의 연계가 이뤄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여린, 기껏해야 열여덟에서 열아홉 살의 쥘리앵 소렐의 꿈, 그러니까 ‘어느 날 어떤 눈부신 행동으로 파리의 예쁜 여인들에게 소개되는 일’이 어느 날 시골뜨기 청년 조르주 뒤루아에게 일어나는 장면은 단순히 일회적인 소설 속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소설 밖으로 사유의 확장을 유도한다.

여자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될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석 달 전부터 뒤루아는 매일 저녁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물론 잘생기기도 했고 또 여자들의 호감을 사는 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뒤루아는 지금까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왔다. 하지만 그는 늘 더 많은 만남을, 더 좋은 만남을 원했다. -모파상, 앞의 책 중에서

소렐과 보바리 사이

스탕달의 쥘리앵 소렐이 소설사에 빛나는 이름들의 성좌(星座)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뚜렷이 빛나는 별이라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또 다른 이름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이고, 이 두 거성 사이에 태어나기는 했으나, 그 둘을 넘어서지 못하고, 혹은 넘어서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이 모파상의 조르주 뒤루아다. 즉, 뒤루아라는 인물은 쥘리앵 소렐과 엠마 보바리의 일면들을 거느리고 있다. 신분 상승을 향한 야망은 전자와, 환상이라는 이름의 과도한 욕망(병)의 실현은 후자와 겹친다. 소설 연구자들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 있고, 그 바탕 위에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가 구축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플로베르의 소설적 적자(嫡子)인 모파상의 뒤루아라는 인물은 스탕달의 ‘쥘리앵 소렐’과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작가의 이력에서, 인물의 창조에서, 소설 속에 그려지는 변화된 사회의 양태에서, 나아가 소설에 대한 견해(정의)에서 모파상과 그의 ‘벨아미’는 흥미로운 고찰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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