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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포스코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 대상

시련과 낙담이 키운 금언(金言) 배달부 이한희 씨, 자석 붙인 나무에 금언 적어 무료 나눔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신동아·포스코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 대상

  • ● 사업 실패 후 낙담하다 죽을 고민도
    ● 스스로 다잡으려 금언 적다 길에 붙이기 시작
    ● 시장에 버려진 나무상자 주워와 제작
    ● 주 3일은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해
    ● 후원받아 캠페인 진행하는 게 꿈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남녀노소 모두가 절벽에 매달려 사는 세상이다. 추위는 경제난국과 겹쳐 북극 한파처럼 새해 벽두를 공습할 태세다. 곳간이 비니 인심도 메말라간다. ‘옳음’보다 ‘강함’을 꾀하라고 채근하는 훈수가 홍수처럼 넘친다. 인기 드라마에는 “가장 이기적인 게 가장 이타적인 것”이라는 대사가 고교생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약자는 밥벌이를, 강자는 돈벌이를 궁리한다. ‘최악의 고용지표’ ‘얼어붙은 설비투자’ ‘뒷걸음질 친 성장률’ 같은 거시경제 현실은 우리네 일상에 이런 식으로 스며들었다.

이 와중에 시대의 대세와 사뭇 다른 금언(金言)을 자석 붙인 나무에 새겨 무료로 나누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나무에 “지름길은 없다. 묵묵히 한발 한발”이라고 적고,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도 적는다. ‘신동아’가 포스코와 공동주관한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에서 대상의 영예를 얻은 이한희(42) 씨 얘기다.

수년 전까지 그의 얼굴을 감싼 건 낙담이다. 옷가게, 카페, 만둣집 등 손 대는 사업마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탓. 지나고 보니 ‘금언 배달부’를 키운 8할은 시련과 낙담이었을 터. 1년 넘게 중증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하면서는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법도 익혔다. 그를 2018년 12월 6일 서울시 노원구 공릉역 인근에서 만났다. 역 근처에 조성된 경춘선숲길 공원에 자석을 붙이고 다니는 그와 1시간 동안 동행했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공릉동 근처 시장에 버려진 과일 나무상자가 많아요. 너무 아까워서 집에 가져왔어요. 그걸 갖고 이것저것 해보다 ‘귀감이 되는 좌우명을 새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제게 필요한 글귀를 적어 집 냉장고에 붙여놨어요. 힘든 과거가 생각날 때는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는 글을 새겨 자석으로 제작해 붙이는 거죠. 그럼 그걸 계속 보게 되잖아요. 보다 보니 제 행동이 바뀌더라고요.”

이번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의 주요 과제는 흔히 접하는 철 또는 철 관련 제품의 아름다움과 유용성, 발전상을 그려내라는 것이었다. 영상 형식은 자유였다. 66편 출품됐는데, 작품마다 심사위원 간 호불호가 미묘하게 갈렸다. 하지만 이씨 작품은 심사위원 4인의 눈길을 공히 잡아끌었다. 기술적 만듦새보다 메시지에 집중하겠다는 공모 취지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수상 소감으로 “자석은 철이 없이는 무용하다. 그래서 철에 감사해야 하는데, 영상·편집 기술도 배운 적 없는 제가 철 때문에 상까지 받게 됐다.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철처럼 세상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하고 살겠다”고 말했다. 그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든 수십 개의 자석을 보니 ‘작은 실천’의 의미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 언제부터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자석을 나누고 다닌 지는 1년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어느 날 문득, 제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부터 길가에 붙이고 다닌 건 아니에요. 제가 대단한 손재주를 가진 것도 아닌데, 돈 받고 파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우선 연습차 몇 개 만들어 인터넷 카페 같은 데 올려봤어요. 의외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더라고요. 얼마 지나니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에 맞는 글귀를 제작해달라는 요청까지 받게 됐어요.”

이씨의 1주일은 분주히 지나간다. 3일은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의 집에 상주하며 생활을 돕는다. 출퇴근에서 식사, 대소변 처리가 모두 그의 몫이다. 남을 돕는 게 그의 밥벌이인 셈이다.

1주일 중 남은 4일은 자석 제작, 배포에 투입한다. 중간 중간 카카오톡 메신저로 모르는 이와 상담도 진행한다. 상담 때 쓰이는 대화명은 ‘척척 도사’. 고민 풀 곳 없는 이들에게 대나무숲 같은 존재가 돼 사소하나마 ‘척척’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뜻. 그가 보여준 카카오톡 대화창에는 “안녕하세요. 척척 도사님. 친구가 ‘게임폐인’인데 걱정입니다” 같은 상담 의뢰도 있다. 대답은? “안녕하세요. OOO님은 휴대폰으로 게임 안 하시나요?”면 족하다.


“자석 하나당 50원, 상금으로 제작비 벌충”

자석에 글귀를 제작해달라는 요청도 카카오톡으로 받는다. 이때의 대화명은 ‘복동이’다. 복동이는 이씨가 입양한 유기견의 이름이다.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 출품 영상에도 출연해 심사위원들에게도 낯이 익다.

- 상담 진행과 글귀가 새겨진 자석 제작이 다 맥락이 닿아 있어 보이네요. 모두 카카오톡으로 받는다는 공통점도 있고.

“맞아요. 어떤 분은 ‘남편과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싸우지 않을 좋은 글귀를 만들어주세요’ 같은 요청을 해오셨어요. 서로 카카오톡에서 대화를 나누다 그분께서 직접 ‘진정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글귀를 원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요청대로 만들어드렸죠. 물론 무료로요.”

- 무료? 제작비용이 꽤 필요할 것 같은데요?

“나무는 버려진 걸 위주로 마련하니 돈은 안 들죠. 다만 자석이 하나당 50원 해요. 이런 식으로 그간 수천 개는 만들었을 거예요. 이번에 상금 받았으니 그간 제작비와 앞으로 제작비까지 벌충한 셈이죠.(웃음)”

- 하루에 제작에 투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쉬는 날 하루 종일이요. 나무만 하더라도, 일단 깎은 후 사포로 밀어야 쓸 수 있어요.”

- 무작위로 붙이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부착하는 기준이 있나요?

“상황과 장소에 맞게 자석을 붙여야 그걸 갖고 가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집 근처에 대학이 있는데, 정문 근처 신호등에는 대학생 친구들이 보고 깔깔 웃을 수 있는 말을 붙이려고 해요. 예를 들면 ‘과외를 하는 대학생이 되자’ 라든지 ‘술과 밥을 잘 사주는 선배가 되자’라든지. 실제로 자석 글귀를 보고 웃는 친구들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다 보면 또 더 붙이고 싶게 되는 거죠.”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 글귀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자기 전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요. 물론 특정 종교 색채를 띠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 3층이 교회인데, 거기에는 성경 말씀을 새겨 자석에 붙여놔요.”

- 불교와 기독교의 대통합이네요.(웃음) 교회 목사님도 붙이는 걸 아세요?

“글쎄요. 교회 철문에 자석 나무패를 붙여놓으면 늘 다 가져가긴 하세요. 아, 목사님이 아실 수도 있겠네요. 제가 건물 옥상에서 나무 깎고 있는 모습을 보셨을 테니까요.(웃음)”

‘30대 이한희’는 어엿한 사장님으로 살았다. 옷 팔고 커피 내리고, 만두까지 쪘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자영업 현실은 복마전 같았다. 되돌아오는 건 대출 상환 독촉 문자뿐. 그는 “돈을 다 잃고 삶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어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고 회고했다. 당장 갚아야 할 빚만 아른거리는 시절이었다.

이씨는 “죽기 전에 안 해본 것 다 해보고, 안 가본 곳 다 가보자는 생각”으로 전국 여행을 떠났다. 그가 자석에 새겨놓은 문구를 빌리자면 “여행은 한 권의 책이고,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는데, 이씨 그 자신에게야말로 여행이 책이 됐다. 스스로를 다잡고 다시 세상을 향해 한걸음씩 내디디다가 지금은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살고 있다.

- 장애인활동보조인 일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사업은 망했고, 어느덧 나이는 마흔을 넘겼고, 마침 몸까지 많이 아팠어요.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우울하게 지낼 때였습니다. 그때 EBS에서 하는 ‘희망풍경’이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장애인 분들이 나오시는데, 너무 열심히 살아가시더라고요. 그분들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 후 교육을 수료하고 장애인활동보조인 일을 시작했어요.”

- 중증장애인 분들의 일상을 도와드리는 건가요?

“제가 지금 찾아뵙는 분은 낮에 회사를 다니세요. 그분은 목 아래로 아예 몸을 못 쓰십니다. 회사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댁에서 휠체어를 밀고 와서 회사에 올려다드려요. 마찬가지로 퇴근 때도 도와드리죠. 그분이 집에 계실 땐 24시간 상주하며 같이 생활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땄어요.”

- 도움 받는 장애인 분도 좋은 글귀 적은 자석 붙이고 다니는 걸 아세요?

“당연히 아시죠. 그분 냉장고에 붙어 있는 자석에는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오늘을 살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되게 좋아하세요.”

이씨는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큰 꿈이 생겼다고 했다. 기회가 닿으면 해외에 가서 자석을 붙이고 다니겠다는 것. 물론 이때의 금언은 외국어로 써야 할 터. ‘번역도 해야 하고, 비행기 값도 필요한데, 그 제작비를 다 어떻게 충당하려고?’라고 묻자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음…또 다른 공모에 도전해야죠.(웃음) 가장 좋은 건 저희의 취지에 공감하는 후원자가 생겨 사회적 캠페인처럼 이 활동을 해보는 거죠.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는 물론 모릅니다만, 그런 날이 오면 좋겠어요.”

한편 ‘신동아’는 포스코와 공동주관한 ‘15초 동영상 공모; 철의 일상’ 시상식을 2018년 11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개최했다. 이씨는 대상을 수상해 상금 200만 원을 받았다.


“철의 친근함·소중함 생각하는 계기 됐으면…”

‘15초 동영상 공모’ 수상자들. 왼쪽부터 명재현, 박영웅, 양윤아, 이한희, 정보라, 이혜경 씨. [박해윤 기자]

‘15초 동영상 공모’ 수상자들. 왼쪽부터 명재현, 박영웅, 양윤아, 이한희, 정보라, 이혜경 씨. [박해윤 기자]

상금 100만 원을 받은 최우수상에는 홍익대 영상영화과에 재학 중인 양윤아(24) 씨와 사진·영상 작가로 활동하는 전혜영(33) 씨 작품이 선정됐다. 양씨는 “평소에도 철제 건물이 빚어내는 규칙과 불규칙의 조화, 형태의 다양함, 압도감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철은 무한하게 활용할 수 있는 존재라 이번 작업 과정에서도 즐거웠다”며 “수상을 계기로 더 좋은 창작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전씨는 “주로 환경·생태 사진을 찍다가 철을 주제로 한 영상에 도전했다. 경기 안산공단에서 직접 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면서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구독하던 ‘신동아’를 읽고 자랐는데, 수상까지 하게 돼 더 기쁘다”고 말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혜경(32) 씨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정보라(27) 씨, 중부대 사진영상학과·한양대 엔터테인먼트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명재현(24)·김정민(24) 씨 팀,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박영웅(29) 씨는 상금 50만 원을 받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허현주 심사위원장(중부대 교수)은 “차가운 철이 펄펄 끓는 용광로 같은 사운드와 편집을 만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강철 ‘핫팩’으로 재탄생했다”면서 “이번 공모가 철의 친근함과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9년 1월호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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