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한일 경제전 타산지석, 화장품 업계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료 국산화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08-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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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원료 수입 의존도 50%→20%대로

    • 선크림 원료 티타늄옥사이드 국산으로 대체 가능

    • 샴푸 원료 트리에탄올아민 수입 대체선 확보

    • 일찌감치 ‘脫일본’ 나선 덕에 100% ‘국산화’ 눈앞

    • 원료 수입국 다변화, 현지화 전략으로 ‘이상 無!’

    일본의 우리나라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화장품 업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기로 한 전략물자 중 일부가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탓이다. 자외선차단제(선크림), 파운데이션 등에 사용되는 티타늄옥사이드와 샴푸 원료이자 화장품 산도(pH) 조절에 사용되는 트리에탄올아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화장품 업계에 미칠 파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 원료는 일본 화이트리스트 배제 목록에서 빠진 데다 설령 규제 조치가 실행돼도 원료 대체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일찌감치 국산 소재 개발에 힘써온 덕분이다. 

    일본은 화장품 원료 강국으로 우리나라도 한때 일본산 원료 수입 비중이 50%를 넘었다. 하지만 현재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화장품 원료는 1억3489만 달러(1633억 원)어치로 전체 화장품 원료 수입량의 23.5%를 차지한다. 

    먼저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퍼시픽기술연구원을 통해 미백 성분인 알부틴을 대신할 원료를 자체 개발했다. 알부틴은 전략물자는 아니지만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원료 중 하나다. 아모레퍼시픽이 개발한 미백 원료로는 멜라솔브, 닥나무추출물, 유용성감초추출물, 셀레티노이드, 흰감국추출물, 삼백초추출물, 백화사설초추출물 등이 있다. 해당 제품들은 모두 현재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에 적극 사용되고 있다. 

    멜라솔브는 미백에 기미·검버섯, 색소 침착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헤라 화이트 프로그램 라인에 주로 쓰인다. 닥나무추출물과 흰감국추출물은 한국 토종 식물인 닥나무와 감국(약용 국화)에서 발견한 성분인데, 두 식물에 미백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미백 기능성 소재로 등재돼 있다.



    화장품 원료 제조 독자적 기술 확보

    6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Hall C에서 열린 ‘2019 인코스메틱스 코리아’에서 관람객들이 제품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6월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Hall C에서 열린 ‘2019 인코스메틱스 코리아’에서 관람객들이 제품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업체인 코스맥스는 2012년부터 자체 소재연구소인 ‘소재 랩(Lab)’을 설립해 신소재 연구에 매달렸다. 그 결과 현재 코스맥스는 일본산 원료 비중이 10%밖에 되지 않는다. 나아가 ‘100% 일본 원료 프리(free)’ 제품을 개발하는 게 올해 코스맥스의 목표다. 

    자외선 차단제 원료인 티타늄옥사이드, 산화아연 등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독자적인 기술력을 이미 확보해놓았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대부분의 원료는 가공을 거친 뒤에 재료로 사용하게 되는데, 티타늄옥사이드의 경우 경제성을 따져 일본에서 가공까지 다 된 완제품을 들여왔다. 물론 지금도 수급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설령 일본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코스맥스만의 독자적인 가공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원료만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면 된다”고 설명했다. 

    코스맥스가 ‘피부 침투 또는 안정화 입자 기술(C&D)’로 개발한 소재는 일본보다 품질이 앞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 밖에도 지난해에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마이크로바이옴 항노화 제품은 화장품 브랜드 ‘닥터 자르트’가 채택해 최근 상품으로 내놓았다. 

    다른 화장품 ODM 업체인 한국콜마도 일본에 의존하던 화장품 원료를 지속적으로 국산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산화티타늄 분말을 대체할 수 있는 징크옥사이드 성분을 개발해 코스맥스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선크림 제조에 큰 이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징크옥사이드는 이산화티타늄과 함께 대표적인 물리적 자외선 차단제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더라도 타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콜마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 화장품 SK-Ⅱ 피테라 에센스에 들어가는 곡물 발효 성분을 자체 개발해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이슈가 불거지기 전부터 ‘100% 국산화’를 원칙으로 해왔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원료가 대부분 파우더, 실리콘, 계면활성제 등 희소성이 큰 원료가 아니기 때문에 국산으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국내에서 수급 가능한 원료를 1순위로 채택하는 게 회사 방침”이라며” “국내 여러 원료 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재료를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화장품 원료 업체는 2014년 SK그룹에 인수된 ‘SK바이오랜드’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을 비롯해 국내 여러 화장품 제조업체에 원료를 납품한다. SK바이오랜드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그동안 화장품 제조사들의 신규 원료 개발을 위해 질 좋은 국산 원료를 공급해왔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일찌감치 ‘소재 국산화’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영향이 크다. 2011년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원료에 대한 불안감이 퍼지면서 국내 원료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이다 보니 원료나 제품 성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방사선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본 원료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日 원전사고, 나고야협정 …전화위복(轉禍爲福)

    한국의 ‘나고야 의정서’ 비준도 화장품 원료 국산화를 재촉했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자원을 활용해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2010년 제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국제협약이다. 토착 생물자원을 이용하려면 해당 국가에 사전 통보와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익은 상호 합의된 계약 조건에 따라 공유해야 한다. 2014년 발효돼 지난 3월까지 전 세계 116개국이 비준했고 우리나라도 지난해 8월 비준해 관련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화장품 원료 수입에 대한 로열티 부담이 커지면서 업계는 일찌감치 소재 개발에 착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울릉국화’ ‘납작콩’ 등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특이 생물들을 찾아내 원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며 “하지만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에는 시일이 걸리고 대량생산 체제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사이 화장품 업계는 소재 국산화와 함께 수입처 다변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코스맥스의 경우 2011년 30여 개에 달하던 원료 수입국을 지난해 기준 50여 개국으로 늘렸다. 업체들이 해외법인을 통해 구축해놓은 ‘현지화 전략’도 강점으로 통한다. 대형 회사 대부분이 중국이나 베트남, 일본 등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어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원료 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와 달리 화장품 원료는 대체선이 많은 편이다. 한 번에 수입하는 양도 꽤 많아, 설령 일본이 추후에 또 다른 방식으로 원료 수출을 막는다 해도 버텨낼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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