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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사랑하라, 오페라처럼

사랑을 계산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안드레아 셰니에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사랑을 계산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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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詩人 셰니에

사랑을 계산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처형된 파리 콩코드 광장. [황승경]

사랑을 계산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 [황승경]

사랑을 계산하는 이들에게 바친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 [YouTube]

이 오페라는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시인 앙드레 셰니에(André Chénier·1762~1794)의 이야기다(오페라 제목 ‘안드레아 셰니에’는 이탈리아식 발음에서 따왔다). 시인은 프랑스 시(詩)의 시대를 대표하는 실존인물이지만, 당시 쿠와니 백작 집안의 이름에서 착안한 여주인공 만달레나는 가상의 인물이다.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1867~1948)는 낡은 봉건 질서와 공포로 변한 혁명의 비이성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주옥같은 선율에 담았다. 회상적인 모티프와 다채로운 오케스트라 화성으로 심오한 인간 내면을 표현했다.

셰니에는 외교관, 사상가, 시인으로 활동한 당대의 지식인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시를 지었지만, 생전에 단 2편만 대중에게 발표했다. 특히 죽기 전 마지막 4개월 동안 성 라자로 감옥에서 왕성하게 시를 썼고, 그 작품들은 빨랫감 꾸러미 속에 담겨 아버지에게 전달됐다. 혁명 세력이었으나 폭력적 급진주의 사상에 반대하다 불과 32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오페라가 다룬 휴머니스트 지식인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이가 갈망하는 주제였다. 혁명 전(1막)과 후(2~4막)에 피어난 두 사람의 간절하고 애달픈 사랑은 죽음이 곧 또 하나의 시작임을 암시한다. 또한 혁명도, 시간도, 죽음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894년, 출판사와의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는데 마땅한 작품이 없어 고민하던 작곡가 조르다노가 셰니에의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하자 당대 최고의 대본작가 일리카(Luigi Illica)는 선뜻 대본 작업을 수락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지막 4막의 극적인 2중창을 완성한 이후 작곡자는 악보 맨 첫 장에 자신의 아내 올라 스파츠에게 헌정하는 글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극적인 선율

행복한 결혼생활과 작곡 활동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사랑스러운 아내와 남부러울 것 없이 다복하게 살았다는 조르다노의 작품은 ‘안드레아 셰니에’ 외에는 지금까지 공연되는 게 거의 없다. 반면 그와 동년배 작곡가이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자코모 푸치니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격동의 시기를 살다 간 지식인의 올곧고 비극적인 삶에 사랑이라는 픽션을 엮어 재조명한다. 1896년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초연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판치던 당시 오페라 무대에 색다른 매력을 불어넣으며 대대적인 성공을 맛봤다. 요동치는 역사 속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극적이고 긴박하게 그린 이 오페라는 때로는 격렬하게 몰아치다가도 서정적으로 감싸는 듯한 극적인 선율이 일품이다.

지휘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총 연주시간은 1시간 45분 정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4막의 각기 다른 무대와 의상, 도구 때문에 제작비가 만만찮아선지 여러 무대에 오르진 않는다. 그러니 어디에선가 공연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꼭 찾아가서 봐야 한다.

막이 오르면 혁명 직전 만달레나의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가 펼쳐진다. 이 자리에서 즉흥시 낭송을 요청받은 셰니에는, 시상(詩想)은 사랑의 전율처럼 누군가의 명령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며 거절한다. 만달레나가 그의 시를 듣기 위해 ‘사랑’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자 셰니에는 조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답은 즉흥시 ‘언젠가는 푸른 하늘 아래서(Un di all’azzurro spazio)’로 답한다. 이 즉흥시는 실제로 셰니에의 시 ‘정의의 찬가(Hymne a la Justice)’에서 발췌했다.

이 곡의 음악적 구성은 마치 고요한 새벽에 찬란한 해가 뜨는 것처럼 웅장하게 상승한다. 독백 대사를 반주하듯 조용히 시작하는 오케스트라는, 사랑을 하찮게 여기는 만달레나에게 호소하려는 듯 그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고조되며 격정적으로 휘몰아친다. 그러다 이내 감미로운 멜로디로 변하는데, 마치 사랑의 진정성을 논하며 만달레나에게 ‘당신은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고 감미롭게 질책하는 듯하다. 신이 준 사랑을 경멸하지 말라고, 사랑이야말로 온 세상을 움직이는 생명이라고 열정적인 고음으로 호소한다.



테르미도르 달의 사랑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시점에 2막이 시작된다. 혁명이 일어났지만 국민의 비참한 현실은 나아진 것이 없고, 셰니에는 한때의 동지였던 혁명 세력에게 감시당하는 신세가 되지만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매일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몇 살인지, 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고서. 나중에 그녀가 만달레나였음을 알게 된 셰니에는 기뻐하며 그녀와 열정적으로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3막의 배경은 혁명재판소다. 셰니에는 체포되고 만달레나는 행방이 묘연하다. 제라르는 셰니에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그는 주저한다. 이후 만달레나가 나타나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오는 아리아를 부른다. 제라르는 법정에서 셰니에를 변호하지만, 군중과 재판장은 너무도 당연하게 셰니에를 조국의 적으로 지목해 사형을 언도한다.

4막에서 만달레나는 최후의 순간을 셰니에와 함께하기 위해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되는 귀족 부인과 자신을 바꿔치기한다. 이를 알게 된 제라르는 공포정치의 화신 로베스피에르에게 다시 한 번 선처를 구하러 가고, 만달레나와 셰니에는 “우리의 죽음은 사랑의 승리”라는 신의에 찬 이중창을 부른다. 죽음도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삶은 아이러니라고 했던가. 셰니에에게 사형을 선고한 로베스피에르는 셰니에가 죽은 뒤 불과 사흘 만에 실각하고 그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력(革命曆)으로 ‘열월(熱月)’이라 불린 ‘테르미도르 달’(7월 19일~8월 17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처형됐다. 그 뜨거운 여름의 열기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고혹적인 사랑 이야기로 승화했다. 222년 전 8월 프랑스의 애절한 오페라에서 피어난 사랑이 2016년 8월 지금 우리에게 참사랑의 의미를 담담하게 일깨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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