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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하는 대통령후보 말솜씨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퇴화하는 대통령후보 말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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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합하거나 과도한 어휘

문재인 캠프 측은 문자폭탄을 ‘양념’이라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을 때 “대통령후보 당선 후 인터뷰가 수차례 반복되고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지면서 문 후보가 맥락을 잘못 알아들었다”고 했다. “당내 경선 TV 토론에서 총재 역할을 하겠다는 거냐”는 안희정 지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에 대해선 “안 지사가 목이 쉰 상태여서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어쨌든 그가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알아듣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은 어휘력이 그리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의 캐치프레이즈인 ‘준비된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보 당시 캐치프레이즈인 ‘준비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문재인의 또 다른 브랜드인 ‘적폐청산’은 다름 아닌 청산 대상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허권을 갖고 있는 어휘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이 우리사회의 적폐에서 비롯됐다면서 적폐청산을 이야기했다. 문재인은 적폐청산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그는 경쟁자이자 야권 유력 후보인 안철수(국민의당 대통령후보)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가져다 붙인다. 문재인의 어법에서 드러나는 더 큰 문제는 뭔가 부적합하거나 과도해 보이는 어휘를 사용하는 점이다.

문재인은 2016년 11월 탄핵 촛불집회에 참석해 “경제 망치고 안보 망쳐온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횃불로 모두 불태워버리자”고 했다. 비유적 표현이겠지만 화형(火刑)이 연상돼 듣기에 섬뜩하다. 가짜 보수와 진짜 보수를 누가 감별하는가. 당연히 문재인 본인으로 짐작된다. 보수진영의 상당수 사람은 이 말에 기겁했다.

문재인 측은 “부역자”라는 표현도 즐겨 사용한다. 편 가르기 논란, 패권논란으로 점철된 노무현 정권 시대가 오버랩된다. 또 문재인은 세월호 방명록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 대해 “고맙다”는 어휘를 썼다.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문재인) 몇몇 사람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몇몇 사람은 “매우 부적절한 어휘다.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아이들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고맙다’는 말은 맞지 않다. 문재인은 정치와 이념에 너무 끌어다 붙인다”고 비판한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세월호 방명록에 ‘고맙다’고 쓴 문재인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우려되는 것은 문재인이 지지율 선두를 지켜온 유력 후보라는 점에서다. 지금 같은 태도라면, 문재인은 불통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의미를 상기하면 ‘이러려고 탄핵 했나’ 하는 허탈함이 들 수도 있다.

반면, 문재인의 화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치권 인사들은 “문재인이 2012년 대선 패배 후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살아남아 지지율 1위 대통령후보가 됐다는 사실이 그의 언행의 비범함을 증명한다. 큰 위기에 부딪혀도 문재인은 모나지 않은 어법으로 희한하게 위기를 잘 타넘는다”고 말했다.

각 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된 후 안철수는 지지율이 폭등하며 문재인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안철수가 던진 메시지에서 지지율 상승의 원인을 찾기 어렵다. 언론은 루이 암스트롱 같은 발성 변화를 주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포장의 차원일 뿐이다. 그의 메시지 내용은 요즘 젊은 세대 말로 ‘냉무(내용 없음)’다. 다만 그래도 안철수가 문재인보다 다소 나아 보이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말실수를 덜 한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한때 말로 흥했다. 6년 전 ‘청춘콘서트’에서 청년들에게 건넨 조곤거리는 위로의 말은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치권에 입문한 뒤 그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14년까지 그의 화법은 모호하다는 뜻에서 ‘안개화법’으로 불렸다. 그 스스로는 확실한 것만 대답하고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뜻에서 ‘메르켈 화법’이라고 했다.

그가 ‘강철수’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 탈당을 전후해서다. 늘 ‘철수’만 한다는 비판을 받던 그에게 탈당은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절박함 때문이었는지 친정을 향해 “야당만 하기로 작정한 당”이라는 독기 서린 표현을 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반항기 중딩 화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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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승리한 후에는 비아냥대는 말투로 주목받았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양적완화에 관한 대학교수 강연을 듣던 도중 “박근혜 대통령은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다”고 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이 무렵 그의 화법은 ‘착한 모범생’에서 ‘반항기의 중딩’으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올 초 화제가 된 그의 예언도 이런 비아냥의 추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해 “설 지나서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출마에 대해선 “주위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시니컬하게 툭 뱉은 것이 우연히 들어맞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안철수는 문재인보다 말을 재치 있게, 덜 부담스럽게 한다. 2016년 총선 때 서울 노원에 출마해선 “노발대발(노원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이라고 했다. 야권 연대에 대해 질문받자 “자꾸 연대만 이야기하면 고대 분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행사 후 사람들이 모여 생선회를 먹는 것을 보면서 “진짜 회식 하시네요”라고 했다. 최근 영남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는 영남 사투리로 “야물딱지게 하겠심더”라고 했다. 그가 2012년에 말한 “건너온 다리를 불 질렀다”는 표현은 인구에 자주 회자됐다.

그러나 이런 가십거리 외에 안철수가 어떤 비전이나 공약을 내세웠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원 공약이라고 발표했다가 그는 혼쭐이 났다.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한국 선거 풍토라고는 하지만 ‘유달리 말주변 없는 경쟁자’를 만난 덕에 지지율이 폭등한 것은 안철수에게는 천운이고 유권자에게는 불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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