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4차 산업혁명과 미래

ICO 규제 없이 블록체인 선도 국가?

‘선언’만 있고 ‘처방’은 없다!

  • 입력2018-09-1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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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는 블록체인 선도 국가가 되겠다고 밝혔으나 ‘선언’만 있고 ‘처방’은 없다. 뒷짐 지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떠오른 ICO에 대한 규제 방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대로 가면 클라우드처럼 블록체인도 경쟁력이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무작정 ‘금지’만 할 게 아니라 ‘규제’를 통해 ‘규칙’을 마련할 때다.
    지난해부터 암호화폐 열기가 뜨겁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대폭 상승하면서다. 2008년 비트코인 첫 출시 때만 해도 암호화폐 가치는 제로에 가까웠다. 경제적 가치를 가지리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비트코인 최초 거래는 2010년 5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이뤄졌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핸예츠가 피자 2판을 1만 비트코인으로 구매했다. 1만 비트코인은 시세가 고공행진한 지난해 12월 기준 2000억 원까지 치솟았다. 

    놀라운 것은, 정부가 지금껏 암호화폐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취한 조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규제안도 내놓지 않았다. 피해 보는 건 투자자다. 

    6월 10일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레일이 해킹을 당해 400억 원대 피해를 봤다고 공지했다. 핀디엑스, 엔피, 에스톤 등 암호화폐 9종이 탈취됐다. 코인레일은 한국에서 7번째로 큰 암호화폐 거래소. 6월 19일엔 1위 거래소 빗썸마저 해킹을 당했다. 피해 규모는 190억 원. 

    사정이 이런데도 규제는 없다시피 하다. 암호화폐 거래소 보안 강화를 위해 빗썸, 코인원, 코빗, 업비트 등 거래소 4곳만을 대상으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도록 한 게 전부다. ISMS 인증은 보안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금융기관과 비교해 보안 수준이 턱없이 낮은데도 ISMS 인증을 받은 거래소는 이제껏 단 한 곳도 없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금융 자산으로 규정한 후 적극적으로 규제했다면 거래소가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됐을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볼 뿐

    ICO는 암호화폐 토큰을 판매해 
자금을 조달한다.

    ICO는 암호화폐 토큰을 판매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암호화폐 거래를 어떻게 규제할까. 모 기관 요청으로 필자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은 규제가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은 자금 세탁을 우려해 중개소를 통해서만 암호화폐를 거래하도록 했다. 중개소를 설립하려면 비트라이선스(BitLicense)를 획득해야 한다.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개소를 거쳐서만 거래하도록 했으며 중개소 설립을 위해서는 EMI(Electronic Money Institution)에 등록해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한 국가도 있다. 중국은 암호화폐 거래를 전면 금지한 후 2018년 1월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된 웹사이트를 모두 차단해버렸다. 

    이렇듯 암호화폐가 가진 시장성과 응용 가치를 고려하면서도 피해를 막고자 규제를 도입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부정적 측면을 우려해 거래를 원천 차단한 국가도 있다. 한국은 어느 쪽도 아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암호화폐 규제 실패는 ICO(Initial Coin Offering)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ICO는 사업 주체가 발행한 암호화폐 토큰(Token)을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펀딩 방법이다. 투자금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IPO(Initial Public Offering·비상장기업이 유가증권 시장이나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주식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팔고 재무 내용을 공시하는 것) 및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자금이 필요한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경영 전문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에 따르면 ICO는 IPO, 크라우드 펀딩과 차이가 있다. 

    ICO는 회사와 사업을 설명하는 백서(White Paper)만 있으면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IPO는 사업성을 증명할 여러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특정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ICO가 IPO보다 자금을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IPO는 증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지분을 나눠주는데, ICO는 의무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자금 조달 비용에서도 진입하기 쉬운 ICO가 IPO보다 이점이 있다. 단, ICO는 투자자 보호가 미흡한 데다 백서만으로 사업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IPO보다 위험성이 높다. 

    크라우드펀딩과 비교하면 어떨까. 한국의 경우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 소액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한 자금 조달 방법이다.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은 증권을 발행한다는 점에서 ICO와 다르다. 

    이렇듯 기존의 자금 조달 수단과 다른 ICO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서 특히 인기를 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ICO가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이러한 열풍은 6월 28일 개최된 ‘블록체인 오픈 포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에 나온 블록체인 스타트업 대부분이 ICO를 언급했다. 패널 토의에서도 블록체인과 관련된 주제 대신 ICO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무작정 ‘금지’만 해

    6월 암호화폐 거래소가 두 차례나 해킹을 당했다.

    6월 암호화폐 거래소가 두 차례나 해킹을 당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ICO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해 정부는 ICO 거래를 전면적으로 금지했으나 이러한 조치는 시장에서 효용이 별로 없었다. ICO 투자를 원하는 기업이 해외에서 ICO를 추진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현대BS&C는 ICO로 자금을 모으고자 스위스에서 ICO를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대BS&C는 현대코인(HDAC)을 발행해 비트코인 1만6786개를 모았다. 당시 비트코인 시세가 1000만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1678억 원의 자금을 ICO로 확보한 것이다. ICO 투자자 또한 해외 ICO 업체를 선정해 투자하면 그만이다. 이는 투자자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ICO 전면 금지 정책이 효용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금지만 하기보다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규제해야 했다. 앞서 언급했듯 ICO는 투자 위험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백서만 보고 투자하니 위험성이 높은 게 당연하다. 

    ICO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ICO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현재는 도입 단계이기에 상당히 위험하다. 각종 사기 등 ICO 관련 피해도 발생한다. ICO와 관련된 사기 행위를 스캠(SCAM)이라고 한다.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원 코인(One Coin)은 ICO로 3억5000만 달러(3800억 원)를 모집했는데 나중에 다단계 사기업체로 밝혀졌다. 3만 달러(3600만 원)를 모집한 센트라 코인 역시 거짓 자료를 이용한 사기로 드러났다. 스캠 뿐 아니라 ICO로 확보한 자금을 엉터리로 관리하는 경우도 많다. 경영 전문 컨설팅 업체 어네스트 영(Ernest Young)은 ICO로 조달한 자금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듯 블록체인 산업에서 ICO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ICO 없이 블록체인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추세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보수적인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위험성을 줄이려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래퍼 하면 떠오르는 옷차림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다. ICO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랩은 하되 옷은 정장을 입으라는 말과 똑같다.

    외국은?

    코인데스크(Coindesk)에 따르면 올해 첫 분기 ICO 자금 조달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63억 달러(6조7000억 원)에 달한다. 이처럼 ICO를 통한 자금 조달이 들불처럼 번진다. ICO로 자금을 조달하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많은 상황에서 전면 금지는 기회를 박탈해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해외에 법인을 세워서까지 ICO로 자금을 모으겠는가. 

    2017년 9월 블록체인 업체 더루프(theloop)는 ICO로 자금을 확보하고자 스위스에 법인을 설립한 후 1000억 원 규모 ICO를 진행했다. 이는 2017년 코스닥 IPO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스타트업 ‘메디블록’은 영국에 법인을 세운 후 ICO로 300억 원의 자금을 모은 바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ICO 일부 허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안이 마련돼야 일부 허용이 가능하다. 홍의락 의원(더불어민주당)은 5월 “블록체인 진흥을 위해 ICO 관련 규제 법안을 발의하고자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 기업까지 나서 ICO 일부 허용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4월 SKT는 블록체인 생태계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ICO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스타트업의 새로운 자금 조달 방법인 ICO에 어떻게 대처할까. 정부까지 나서 ICO를 진행하는 국가도 있다. 2017년 12월 베네수엘라는 암호화폐 페트로(Petro)를 발행해 ICO를 진행했다. 국채를 파는 대신 ICO로 나랏돈을 확보한 것이다. 100만 개 페트로가 발행됐고 600억 달러(72조 원) 규모의 자금이 확보됐다. 127개국에서 18만6000명이 투자한 것으로 밝혀졌다. 에스토니아 정부도 에스트코인(Estcoin)이라는 국가 암호화폐를 ICO로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러시아 또한 올해 2월 ICO 전면 금지가 아닌 규제안을 마련했다. ICO를 진행하는 사업자는 자금을 1억 루블(17억 원) 이상 보유해야 하며 토큰 생산 및 발생에 대한 허가증도 받아야 한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한국

    중북부의 도시 추크(Zug)를 중심으로 크립토네이션(Cryptonation·가상통화국가)을 시험 중인 스위스는 ICO와 관련해 더욱 명확한 규제안을 제시했다. 추크는 암호화폐 선도 도시로 유명하다. 크립토밸리(Cryptovalley)라고 불린다. 

    스위스 정부는 ICO 토큰 발행 유형을 지급형(Payment), 기능형(Utility), 자산형(Asset)으로 구분했다. 지급형은 지급 수단으로 활용되는 암호화폐, 기능형은 서비스 제공 용도로만 사용되는 암호화폐, 자산형은 증권 등 자산의 기능을 하는 암호화폐다. 

    이처럼 여러 국가에서 ICO 규제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으나 블록체인 선도 국가가 되겠다는 한국은 아직 걸음마도 시작하지 않은 단계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에서 나왔고, ICO 또한 블록체인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다. ‘무작정 금지’만 하기보다는 ‘올바르게 이끌어갈’ 명확한 규제안이 필요하다 

    3월 글로벌 소프트웨어협회 BSA는 클라우드 경쟁력 부문에서 한국을 24개국 중 12위로 평가했다. ICT 강대국임을 고려하면 부끄러운 순위다. 정부는 블록체인에서는 선도 국가가 되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암호화폐와 ICO에 대한 규제도 명확히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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