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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정념 스님 월정사 명상 대담

“스트레스 받는 순간순간이 참선”(조정래) “생각 일어나는 자리 알아채야” (정념)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스트레스 받는 순간순간이 참선”(조정래) “생각 일어나는 자리 알아채야” (정념)

  • ● 위기의 현대인 힐링하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 “명상은 자기 응시, 자아 발견, 자아 위무”
    ● “세포 수준의 변화 가져오는 명상”
    ● 조정래 작가의 자서전 쓰기 강의도 힐링
    ● 자기중심적 대량소비 삶 반성해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 7월 28일 문을 열었다. 종교를 초월한 다양한 명상·힐링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국내 최대 ‘힐링 플랫폼’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가득한 신비한 자연 공간에서 ‘쉬고, 먹고, 놀며’ 자신을 힐링할 수 있는 곳이다. 강원 오대산 월정사 들목에 평창군과 월정사가 사업비 295억 원을 들여 만든 이 자연명상마을(Odaesan Meditation Village·옴뷔)은 9만9000㎡ 부지에 21개동 목조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한꺼번에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숙소에서 혼자, 혹은 온 가족이 함께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행복 공간이다. 

명상 외에도 비밀의 정원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까지 한 시간, 혹은 선재길 종점인 상원사까지 바람의 빛깔을 느끼며 세 시간 걷는 ‘걷기 명상’을 통해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선지식에게 참선의 진수를 배울 수 있으며, 최고 작가의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착한 음식 만들기, 요가 체험, 국보급 문화재와의 만남은 덤이다.


불교의 사회 기여

“스트레스 받는 순간순간이 참선”(조정래) “생각 일어나는 자리 알아채야” (정념)
선지식인 정념 월정사 주지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8월 9일 월정사에서 만나 명상과 자연 힐링에 대해 깊이 있는 대담을 나눴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위기의 영혼들을 위무하기 위해서였다. 

정념 스님은 월정사 주지이면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사찰 문을 활짝 열고 세상과 호흡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산중의 불교가 사회에 좀 더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명상마을을 추진했다. 절에서 태어나 평생 불교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조정래 작가는 자연명상마을 한 켠에 들어선 문학관의 촌장으로 거주하며, 방문객들에게 인문학 지혜를 들려줄 계획이다. ‘자서전 쓰기’ 등 그만의 독특한 인문학 강의가 명상마을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담 진행자는 기자, 정념 스님은 정념, 조정래 선생은 조정래로 표기했다) 

기자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개원을 계기로 현대인에게 명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대인은 왜 내면의 위기를 그토록 깊게 겪는지 두 분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 이번 여름 기록적인 폭염 앞에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청량한 기운으로 잘 알려진 이곳 오대산도 예외는 아니었을 텐데요. 

정념 | 오대산도 기상관측 이후 가장 더운 날이 계속됐죠. 과거에는 선풍기도 없이 지냈는데, 올해는 선풍기와 에어컨도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전기 기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아직은 견딜 만합니다.
 
조정래 | 요즘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천년의 질문’이라는 새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날씨입니다. 폭염과의 사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글쓰기에 몰두하면 더위를 잊어버립니다. 겨울에도 겨드랑이에서 땀이 떨어지니까요. 이게 참선이에요. (일동 웃음) 일반 사람들도 삶의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순간이 참선일 거예요.


월정사와의 인연

정념 | 이해합니다. 집중을 통해서 더위 자체도 잊게 되는 거죠. 더위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명상 수련에서도 중요한 내용이 집중이고 통찰입니다. 창작에 온통 집중해 있기 때문에 이 더위 속에 땀 흘리면서도 피서가 가능한가 봅니다, 허허. 

기자 | 두 분은 어떤 인연으로 만났는지요. 

조정래 | 불가에서의 인연은 수천 년에 걸쳐 있습니다만…. 한 5년쯤 됐나요? 모 인사가 소개해서 정념 스님을 뵙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거처 문제로 고민하던 차였는데요. 저는 나이가 들면 서울을 떠나고 싶었어요. 제 나이가 올해 76세입니다. 서울은 인생의 3분의 2를 산 곳인데도, 마음 붙일 곳 없는 타향입니다. 고향에는 아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지요. 늙어서 어디에 가서 살까 고민하다 제주도에 마음을 뒀습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몰려오면서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중국인들이 땅을 많이 사들이는 걸 보면서 제주에 정이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서 사나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분이 오대산을 권한 겁니다. 

기자 | 그전에는 오대산 월정사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던 거군요. 

조정래 | 그렇죠. 하지만 제가 전남 선암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모든 절은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절에만 오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져요. 목탁 소리와 풍경 소리로 태교를 받은 사람이니까요. 제 마음속에는 항상 부처님에 대한 생각이 깊이 들어 있습니다. 

기자 | 오늘 이 대담 자리도 여러 인연이 이어져 이뤄진 것 같습니다. 자연명상마을을 추진한 배경과 설립 의의는 무엇인지요.


명상과 참선 병행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명상 공간인 동림선원. [홍중식 기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의 명상 공간인 동림선원. [홍중식 기자]

정념 |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역동성 강한 도시 문명은 광속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곳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물질적으로는 편리하지만 자기 정체성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도한 욕망, 분노와 시기, 존재나 대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즉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갈등과 번뇌, 우울증, 공황장애가 점점 많아지는 세태입니다. 이런 마음의 문제를 치유하고, 높은 가치와 세계관을 지니고 진정한 깨달음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문화가 현대인에게 필요합니다. 자연명상마을은 그런 시대 요구에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에 대한 수요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힐링 문화, 명상 문화가 강한 흐름을 지니고 있는 서구 사회를 우리도 닮아가는 듯합니다. 자연명상마을이 하나의 플랫폼이 돼서 다양한 수행자가 와서 명상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기자 | 다른 명상센터와는 특히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요. 

정념 |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상센터를 보면 지도자마다 조금씩 다른 수행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계시는 플럼빌리지(Plum Village)는 호흡명상에 걷기명상도 도입했습니다. 미얀마의 마하시 명상센터나 파욱또야 명상선원도 나름의 유명세를 얻고 있는데요. 누구나 입소할 수는 있지만 규율이 엄격합니다. 티베트불교도 여러 파가 있는데, 수행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여러 명상 기법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방불교는 특히 명상(meditation)이란 이름을 세계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북방의 선불교에선 명상과 참선을 구별 짓습니다. 참선이 명상보다 더 나아간 것으로 보는 거지요. 남방불교의 명상은 체계가 있어서 단계적으로 수행하도록 가르칩니다. 반면 조사선(祖師禪·조사 달마대사가 전한 선), 참선(參禪·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보기 위해 앉아서 하는 수행) 같은 우리 불교식 수행은 돈오(頓悟·단번에 깨달음)라는 관점에서 개인이 본래 부처이고 본래 완성체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단계에 이르는 것, 즉 깨우침을 얻는 것입니다. 자연명상마을에서는 명상뿐 아니라 이런 조사선을 염두에 두는 전통적 선불교 수행법도 지도할 계획입니다.


인문학 통한 명상 치유

기자 | 개원식 뉴스를 보니 캐치프레이즈가 ‘먹고, 놀고, 쉬기’이더군요. 도시인들이 명상마을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을 통한 명상이나 치유를 내세우고 있어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정래 | 현대사회는 과학 발전과 도시 집중으로 요약됩니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농경시대보다 사회가 훨씬 빠르게 발전하고 다양화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지적했듯이 도시의 경쟁 속에서 인간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어요. 왜 살아야 하느냐 하는 목적이 없어졌어요. 그저 경쟁만 하다 보니 경쟁에 지쳐서 정신적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명상이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자기 구원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런 트렌드를 만든 겁니다. 

자연명상마을의 좋은 점은 다양성과 자율성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다른 종교를 배척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특히 위대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깨달은 자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500년 전에 이 말씀을 했는데, 이보다 더 어떻게 민주 의식을 말할 수 있겠어요. 둘째 절대자는 없다는 겁니다. 모든 종교가 신이라는 절대자를 두고 있는데, 불교만 유일하게 그렇지 않아요. 

기자 |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과 통하겠군요. 

조정래 | 그렇지요. 모두 평등하다는 것, 민주주의가 바로 거기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를 썼잖아요. 헤세는 서양 작가로서 가장 먼저 불교를, 동양을 알았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눈먼 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도 불교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이들 모두 불교가 인류를 구원할 종교라고 말했어요. 그 이유는 바로 불교의 평등의식 때문입니다. 인간 모두를 하늘처럼 받들어주는 것, 남의 종교도 경배하라는 평화주의 때문입니다. 종교전쟁은 남의 종교를 배척하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 다름을 인정하는 불교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게 바로 현대 정신이기도 해요. 그래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불교가 힘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자연명상마을이 불교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다양성과 포괄성을 지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종교를 넘어선 도량

기자 | 다양성을 말씀하셨는데요. 현실적으로 다른 종교인들까지 자연명상마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조정래 |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열면 상대방도 열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마음이 더 편한가, 어디에서 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체득하면 못 올 것이 없는 일이지요. 

정념 | 명상마을엔 스님들도 계시지만 특별히 의례와 같은 종교성을 중시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춘천 주교님도 신부님들의 피정(避靜·가톨릭에서 행하는 일정 기간의 수련 생활)을 명상마을에서 하면 좋겠다면서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월정사 조실을 지낸 탄허 스님께서도 ‘천하무이도, 성인무양심(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이라는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천하에는 두 가지 도가 없으며,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는 뜻인데요. 종교적 가치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거든요. 오대산은 또 불교의 화엄 사상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지 않고 서로의 원인이 되고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것이 화엄 사상입니다. 무엇이든 다 의미를 부여하고, 모두 상생으로 갈 수 있는 정신을 오대산 산중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명상마을의 선원 건물을 동림선원(東林禪院)이라고 했습니다. 

기자 | 특별한 뜻이 있는지요. 

정념 | 중국 루산에 가면 정토종의 발원지인 동림사(東林寺·둥린스)가 있습니다. 혜원선사라는 고승이 거기에 계셨는데, 종교를 가리지 않고 지성인들과 도를 논하곤 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일화 가운데 호계삼소(虎溪三笑)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림사 앞으로 흘러가는 계곡이 호계인데, 혜원이 안거 결제 전에는 손님을 배웅할 때 이곳을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도교의 육수정 도사, 유교의 도연명 시인과 함께 도를 논하고 두 사람을 배웅할 때 혜원이 이야기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이 호계를 넘어갔습니다. 나중에 이를 깨닫고 세 명이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소회(三笑會)라는 모임도 있지요. 가톨릭 수녀님, 원불교 정녀님, 불교의 비구니 스님이 종교를 넘어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임입니다. 이렇듯 ‘동림’이라는 이름 속에 종교를 넘어서 함께할 수 있는 도량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서

기자 | 자연명상마을이 종교에 구애하지 않고 열린 플랫폼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네요. 그런데 명상이라는 게 과연 힐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2014년 캐나다 캘거리대 린다 칼슨 교수는 유방암 환자와 일반인을 비교한 결과 명상이 세포 수준의 변화를 가져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반인도 명상을 통해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을까요. 

조정래 | 그것은 굳이 과학으로 규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명합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 두 손 모아 기도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잖아요. 인간은 토로해야 해요. 토로하는 동물입니다. 문자가 없을 때 입으로 토로한 게 구전문학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고, 그걸 문자화한 게 문학입니다. 문학은 일차적으로 토로이고 공감입니다.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영적인 곳으로 몰고 간 게 종교예요. 자기 마음속에 근심이 있을 때 정신을 한데 모으면 마음이 풀리고, 그 상태에서 엔도르핀이 솟고 세포도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과학으로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것이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수천 년을 거쳐서 선과 명상이 이어져 내려온 겁니다. 

기자 | 조 선생님은 명상을 어떻게 하는지요. 

조정래 | 명상은 응시입니다. 자아를 응시하는 겁니다. 도시생활이 더해질수록, 현대화할수록 인간성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요. 경쟁만 계속해요. 돈만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왜 살지, 내 행동이 왜 이렇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돈이 있는데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런 생각을 버려라, 그리고 잃어버린 너 자신을 찾아라’ 라고 하는 게 응시입니다. 그래서 명상은 자아 발견입니다. 자아 위무입니다. ‘너는 너무 피곤하잖아, 멈춰!’라고 하는 위무입니다. 그리고 자아를 넘어서는 것이 있습니다. 자아 극복. 이 3단계가 명상의 기본 성격입니다. 이것은 아마추어적 견해이고요. 더 강력하게 종교적 프로페셔널로 들어가면 종교인들이 하는 참선, 명철한 깨달음을 위한 참선이 있지요.


명상은 내면 응시

깨달음과 도(道)는 어떻게 다른가. 제가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이렇습니다. 깨달음은 순간순간일 뿐입니다. (박수를 한 번 크게 치면서) ‘아, 맞아요, 욕심 부릴 필요 없어요’ 하고 부처님 앞에 고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물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열심히 사는 겁니다. 도는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은 뒤 입적할 때까지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겁니다. 스님들이 참선을 계속하고, 그 고행을 겪는 것은 깨달음이 부처님처럼 오래가기를 소망하면서 정진하는 거예요. 동안거, 하안거를 하는 이유는 ‘그동안 마음이 흩어졌나, 그러면 다시 다듬어야지’ 하는 훈련을 하면서 마음속에 강력한 믿음을 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명상과 참선은 그래서 다르겠죠. 속인들은 명상을 계속하면서 참선까지 가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참선은 본격적인 화두를 가지고 깨쳐서 내 맘이 영원히 변치 않도록 하려는 간절한 소망 아닌가 합니다. 이거 공자 앞에서 문자 쓰네요.(일동 웃음)


사회 병리현상과 명상

정념 스님. [홍중식 기자]

정념 스님. [홍중식 기자]

기자 | 공자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일동 웃음) 

정념 | 중생이 갖고 있는 마음이란 건 항상 밖으로 달려갑니다. 밖에서 뭔가를 구하고, 행복도 더 높은 가치도 밖에 있다고 여기다 보니 번뇌의 고통이 수반됩니다. 대상에 집착하면 그 때문에 부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거기서 고통이 유발됩니다. 

그런데 명상은 도리어 자기 내면을 응시해서 생각이 일어나는 근원의 자리를 바르게 통찰하는 일입니다. 명상은 집중과 통찰로서 얘기합니다. 집중은 어떤 대상이든 마음의 의문이든 그 하나에 몰두하는 것이고, 통찰은 일어나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마음을 만드는 훈련입니다. ‘아 이 마음이 일어났구나, 내가 이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프구나, 기쁘구나’ 하고 놓치지 않고 깨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지만 안으로 돌려보면 결국은 하나의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고요한 자리를 바르게 응시해서 그 대상이나,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삼매(三昧)입니다. 명상도 삼매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진정하게 마음이 평화롭고, 거기서 항상 깨어서 바르게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지극해지면 바라보는 것이나 비추어보는 마음이나 그 대상을 모두 함께 ‘몰록’(‘문득’이라는 뜻의 불교용어) 놓아버리는 완전한 방하착(放下着·내려놓으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을 스님들은 크게 한번 쉬어버린다고 합니다. 선수련할 때 내외(內外)가 명철해진다고 합니다. 경계의 벽, 안팎이 사라지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항상 거울 같은 마음으로 다 비춰보게 됩니다. 그것을 무분별지(無分別智·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지혜)라고 합니다. 그런 마음 만들기가 명상이고 수행입니다. 

명상을 하면 몸도 좋아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마음이 몸에 영향을 주고 몸이 마음에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바라봐야 합니다. 몸 외에는 없다고 보는 몸 중심 생각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기로부터의 해방, 대자유, 불교의 해탈과 열반은 그처럼 자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기자 | 일반인이 과연 그런 단계에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조정래 |
의문을 갖고 매진해야 도달해요.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요. 마음속에 뭔가를 추구하고 갈구하는 게 간절할수록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기자 |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습니다. 

조정래 | 하하하, 그래야 돼요. 수학 문제 풀듯이 정답이 금방 나오면 그건 정신세계가 아니라 물질세계지요.
기자 | 요즘엔 개인을 넘어 사회병리 현상도 유난히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명상이 그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조정래 | 저는 절대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과학이 일으켜놓은 병폐는 무섭습니다. 그것은 비수 같은 날카로움을 갖고 인간을 파괴해요. 스마트폰은 매우 편리하지만 너무 많은 오락 기능, 유혹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인간을 파괴하는 기능까지 갖고 있어요. 게임이 대표적입니다. 청소년이 게임에 중독되면 정신이 파괴돼 해야 할 공부와 일을 하지 않고 인간의 길에서 이탈해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드루킹 사건도 그런 기술을 악용해 일으킨 것이잖아요. 청소년들은 게임이 자기를 파괴하는지도 모른 채 거기에 속박돼 영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너 정신 차려, 그건 네 본모습이 아냐, 너를 죽이고 있는 도구일 뿐이야’ 하고 느끼게 하고, 알게 해주는 게 바로 명상입니다. 게임중독자라 해도 이런 곳에 와서 1주일만 자연을 바라보며 생활한다면, 그리고 ‘저 이파리 하나가 너와 똑같아, 전생의 너였을 거야’ 하고 깨우쳐주는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하면 그런 병이 치유될 겁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

조정래 작가 [홍중식 기자]

조정래 작가 [홍중식 기자]

정념 | 요즘 4차 산업혁명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초연결사회, 초지능사회라 매우 풍요롭고 편리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회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뤄져도 탐진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계급이나 차별이 더 많아져 분노의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결국은 다시 마음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명상이 그 사회를 평화롭게 하고, 상생과 공동체로서의 세상을 구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탐진치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버리기 어려운 관념 같습니다. 그것을 짧은 명상을 통해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정념 |
사람의 열정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킬 때 그것을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구나 하는 점을 인식하고, 내 마음을 쉬게 하고, 그 실체를 바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한순간에 비워버릴 수 있으면 항상 깨달은 상태가 됩니다. 그게 되지 않으면 수행이라는 방편의 길을 통해서 에둘러 가는 거지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수행 방법으로 삼학(三學)이 있습니다.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를 말하는 ‘계정혜(戒定慧)’입니다. 몸과 마음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계율입니다. 선정은 바른 노력과 바른 알아챔, 바른 집중으로 진리를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하지만 선정만 갖고서는 깨달음의 완성이나 고통의 소멸을 이루기 어렵다고 합니다. 선불교는 선정보다는 존재에 대한 명료한 인식의 전환인 혜(慧)를 중시합니다. 나와 객관세계는 인연에 의해서 형성돼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공(空)이고 무아임을 여실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개인이 본래 하나의 부처라는 걸 확연히 깨달으면 그대로 완성이라는 겁니다.


조정래의 자서전 쓰기 강의

기자 | 조 선생님은 자연명상마을에서 어떤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지요? 

조정래 |
저는 문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인은 지적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기능화한 지식 위주로 배웠습니다. 그런 지식을 갖고 회사에 들어가서 부속품으로 일하며, 총체적 사고력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왜 사는가 하는 정처 없는 길을 문학을 통해 일깨워주고 싶어요. 

그리고 독특한 글쓰기 강좌를 계획하고 있는데요. 누구나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 쓰기를 했습니다. 일기는 바른 글쓰기의 기초 아닙니까. 그런데 누구나 한평생 고생하고 살다 가는데, 자기가 어떻게 살다 가는지 자식들에게라도 전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말보다는 글이 훨씬 더 깊이와 밀도가 있어요. 식구들만 보는 자서전을 쓰게 하렵니다. 그 길이 내가 인생의 문을 닫을 때 후회를 줄이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저를 만나서 종교적 인생에 대해서도 좀 배우고, 글쓰기의 기술과 자신감도 좀 배우기를 바랍니다. 

기자 | 이전에는 행장(行狀)이라고, 돌아가신 분의 일대기를 후손이나 지인이 적곤 했는데요. 그런 글을 미리 써두자는 건가요. 

조정래 | 죽기 전에 종교를 갖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자기 마음의 근심을 덜어내는 겁니다. 그리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공포 없이, 두려움 없이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서전 쓰기는 그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준비라고 생각해요. 인생을 미리미리 정리하는 거죠. 말로 하는 것은 문자의 100분의 1도 전달되지 않아요. 밀도감도 떨어져요. 문장은 우리가 쓰면서 고치잖아요. 농익어지죠.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되잖아요.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다 스토리텔링 소재입니다. ‘아비가 남긴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아비는 살아오면서 너를 이렇게 키웠다’ ‘너와 함께 여행을 많이 가고 싶었는데, 돈 버느라고 가지 못했다’ ‘여행은 또 하나의 인생 탐험이다. 너희는 많이 가도록 해라’ 그런 얘기를 꾸밈없이 하는 겁니다.


20세기 최대 사건 ‘서양과 불교의 만남’

기자 | 조정래의 자서전 쓰기 강의, 인기 끌겠는데요.(일동 웃음) 

조정래 | 자식의 마음속에만 있어도 우리는 죽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추모하는 동안은 그는 죽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리는 동안 그는 영생하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글로 써두면 참회록도 되고, 전기도 되고, 인생 경험록도 됩니다. 

기자 | 서구 사회는 우리보다 명상 문화가 더 발달해 있는데, 우리 사회보다 더 끔찍한 일도 더 많이 일어납니다. 명상 문화는 일종의 반작용일까요. 

조정래 | 아널드 토인비가 역사 연구를 끝내면서 결론적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은 1,2차 세계대전이 아니고 서양이 불교와 만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 명상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서구 문명과 문화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지요. 무조건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말하지 말라며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물질의 풍요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서양에 불교가 ‘너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동양이 1000년 전에 이미 체득한 것을 서양은 이제야 알아차린 겁니다. 히피 문화가 발생한 1960년대 수많은 서양인이 인도를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명상 시대가 시작됐어요. 필연적인 결과였지요. 우리도 서양의 과학 물질문명을 따르다 보니 그들처럼 삭막해져버렸어요. 그래서 나를 찾는 현상인 명상 붐이 이제야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으로 봐야 해요. 

기자 |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잊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겪은 북반구의 폭염은 그런 인류에 대한 일종의 경고 같기도 합니다. 인간 활동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극단적인 폭염을 일으킬 가능성을 두 배로 높인다는 과학 논문도 최근 발표됐습니다. 

조정래 |
과학자들은 지구가 품을 수 있는 인류를 90억 명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75억 명입니다. 인간 활동이 초래한 온실가스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30년 안으로 남태평양 섬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만든 재앙으로 인간이 죽는 상황이지요. 인간이 좀 더 평화롭게 존속하려면 자연 회귀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요. 편리한 것을 좀 내려놓고,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저 나뭇잎 하나와 똑같은 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걸 확대해서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오만이 이런 환경 재앙을 만든 겁니다.


명상과 기후변화

정념 | 지구촌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환경문제입니다. 세계인들이 온난화로 인한 지구촌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도쿄의정서나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온난화에 대처하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38억 년 전에 지구상에 생명이 탄생한 뒤 5번의 멸종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온난화를 통한 6번째 멸종기를 예측해볼 수 있는데요. 과거에는 천재지변으로 멸종기를 거쳤지만 이제는 인간 스스로 온난화를 일으켜서 멸종기로 접어들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류가 멸종을 피하려면 100년 안에 지구를 탈출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지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종교인이 함께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동안 NGO가 시민운동 속에서 정책을 바꿔서 지구온난화 등 환경 생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사랑의 마음, 검소한 소욕지족의 마음을 잘 다질 때 무분별한 자연 파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난개발, 대량소비 문제는 바로 생명을 아끼는 사랑의 마음이 전제돼야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명상과 선수행을 통해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고, 자기 존재와 세상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세상도 더 평화로워질 겁니다. 이곳 명상마을 이름에 특별히 ‘자연’이란 단어가 붙은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기자 | 오늘 선지식 한 분과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한 분을 모시고 명상과 우리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견을 들었습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바른 이해야말로 내면의 평화뿐 아니라 지구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폭염을 식히는 시원한 소나기 같은 말씀입니다. 마침 사찰 바깥에도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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