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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단|가까워진 북한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이질성의 포용’이 북한 변화 이끈다

  • 황태연

‘이질성의 포용’이 북한 변화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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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사람들은 스스로 ‘김일성 민족’으로 불러 이민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 세기 만에 확연히 달라진 이질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이질성의 포용’을 통해 우리는 북한의 변화 입지를 마련해줘야 한다.
북한 헌법은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당국도 오랫동안 이렇게 선전해왔고 오늘날도 때때로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정체성(正體性)을 감추지 않는다.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우리 국토의 일부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사회이면서 동시에 소련·동구 체제가 붕괴된 이후 굶주리고 있는 ‘호전적·침략적’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이 직접 북한의 현실을 접하면서부터 기존 북한관이 점차 해체되어 가면서 우리는 반가움과 착잡함이 교차하는 야릇한 ‘느낌의 혼란’을 겪고 있다.

지금의 북한은 뜻밖에도 끈질기게 계승된, 반가운 민족적 동질성이 우리를 너무나도 착잡하게 만드는 사회·정치적 이질성과 중첩되어 있고 순수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우물 속 같은 정보암흑과 결합되어 있으며 인간적 순박함이 군사적 전투성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남녀불평등, 노동대중과 지식인의 신분격차, 도시와 농촌, 평양의 고급 고층아파트 거주자와 산간벽지 일반인들 간의 사회적·경제적 격차는 극심한 편이다.

가장 이질적인 북한의 모습은 이른바 ‘사회주의적’ 성격에서보다 ‘절대충성과 무조건적 효성’을 강조하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신격화한 군사적 신정(神政)체제에서 절정에 달한다. 북한 청년들은 성지순례처럼 백두산 일대 김일성항일전적지를 방문하고 ‘김일성·김정숙동지를 따라 배우며’ 심신을 단련한다. 동시에 생산, 학습, 생활을 군대식으로 꾸린다. 갈색 작업복을 ‘전투복‘이라고 하고 작업장은 ‘00전투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또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철저히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북한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30여년간의 경제발전속에서 변화된 인생관, 즉 ”현재를 즐길줄 알되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현재와 미래간에 균형잡힌 인생철학을 가지게 된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을 낯설게 한다.

북측 인사들도 솔직히 시인하는 경제난은 여러면에서 극심하다. 소비품 및 가전제품 등 공산품의 품질은 정직하게 말해 ‘불량소모품‘ 수준이고 국빈초대소와 특급호텔에서조차 색상, 패션, 사업운영 및 시설운용방법은 남한의 40년 전 수준이다. 북한당국의 대남협력 노선이 바로 이 경제난과 경제적 낙후성을 이왕이면 남쪽 동포들의 경제력과 기술로 극복하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찾아온 절호의 화해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을 대면하면 뜻밖에도 여러 면에서 같은 민족으로 느껴질지라도 말끝마다 ‘장군님’을 잊지 않는, 체득된 정치적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는 착잡하다 못해 슬프다. 스스로 ‘김일성민족’으로 부를 때는 심지어 이민족(異民族)으로까지 느껴진다. 반가움과 착잡함이 뒤엉킨 야릇한 느낌으로 인해 새로운 북한은 손에 잡힐 듯하다가 다시 저만큼 안개 속으로 멀어지는 것 같다. 이제 북한사회를 직접 둘러본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온 북한의 사회상을 접한 일반 국민들도 북한에 관한 느낌과 생각을 다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북한은 여러 요소를 가진 복합적인 사회체제

어떤 학자는, 우리는 50년 분단으로 인해 ‘민족형성’에 실패한, 일종의 ‘파괴된 민족’이라고 말한다. 정치, 역사, 사회, 경제 면에서 이질성으로 가득 찬 두 개의 민족으로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족인식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미국·프랑스 전통에서 ‘국민(nation)’은 원래 ‘인민’이 신분차이, 봉토지역간의 정치적 권리·지위차이, 특권도시, 길드 등 중간집단의 상이한 존재, 민족·언어차이를 해체·통일시키는 ‘국민형성(nation-building)’ 과정을 통해, 헌법과 국법제도를 창설하는 건국행위와 동시에 발생한다. 따라서 ‘국민’은 ‘국가’와 등치된다. 주권자인 인민이 “짐이 곧 국가”라고 선언하면서 ‘인민’이 ‘국민’으로 올라서기 때문이다. 영어와 불어에서 nation은 ‘국민’과 ‘국가’라는 이중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국가창설 이전에 존재해온 독일적인 ‘민족(Nation)’은 자민족(自民族)의 특별한 선민의식과 타민족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양하는 민족운동을 통해 국가를 창설한다. 따라서 ‘민족’은 국가창설 이전에도 혈통, 언어·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과 달리 ‘민족’은 별도의 ‘형성’ 과정이 필요없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한은 50년 동안 서로 상반되는 국가체제에서 살아왔지만 혈통과 언어, 전통문화가 같다. 또 비록 분단 50년간 내부 역사가 다르게 진행되었을지라도 1000여 년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지난 50년간 통일을 향한 민족적 노력의 역사와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남북정상회담 및 공동선언 등 남북의 민족내부 교섭사(交涉史)도 공유하고 있다. 크게 보면 우리 민족은 50여 년간 분단돼 있었지만 결코 ‘파괴되지’ 않았다. 최근 남북한 사람들의 잦은 접촉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이 한 민족이라는 이론적 사실을 생생하게 확인해 주었다.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김일성민족’이라고 우기더라도 ‘김일성민족’이라는 말이 우리말이고 남북이 김일성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또 골수 및 장기이식에서 유사조직을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유사혈통을 가진 집단인 점에서 북한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민족적 이질성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사회문화적 이질성이다. 북한의 이 이질성은 유일당, 유일사상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잡다한 요소들이 혼재해 사회주의니 뭐니 하는 일언(一言)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가령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봉건적 요소를 가진 신분제 국가인가? 사회주의체제와 김정일체제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의 유제(遺制)가 있다면 어떤 유형인가? 이 유제는 21세기에 생존력이 있는가? 생존력이 없다면 다른 체제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의문이 금방 꼬리를 문다.

요즘 남한과 미국에서는 북한의 변화 여부 및 그 가능성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북한이 변했느니 변하지 않았느니, 전략적으로는 불변이고 전술적으로만 변했느니, 북한은 본질적으로 변할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자세히 보면 북한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사회성격을 가진 나라다. 북한의 경우 공식적 선전내용과 현실이 안 맞고 안에 대고 하는 말과 밖에 대고 하는 말, 공개적으로 하는 말과 사적으로 하는 말이 다를 뿐만 아니라 때로 상반되기도 한다. 게다가 시기에 따라 어떤 체제요소가 우세하다가 약화되는 것도 있고 다른 요소에 의해 아예 교체, 추방되는 것도 있다. 또 밖으로부터 도입된 요소들과 안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요소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계승된 민족전통 또는 정책적으로 새로 살려낸 전통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이 여러 요소들은 조화롭게 배열된 측면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서로 상충과 모순에 빠져 있기도 하다.

이런 상태의 북한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봉사 코끼리 만지기’ 같은 꼴이다. 북한을 좀더 잘 알기 위해서는 차라리 북한의 여러 체제요소를 분석적으로 열거하고 이중 핵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 과거에 우세했던 것과 현재 우세한 것을 가려보는 것이 북한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대국가 면모 속의 비민주성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이론을 통해 전래된 몇몇 근대국가 요소들을 가진 나라다. 북한은 군주주권에 대립되는 인민주권·민주주의·공화국 개념, 보통선거, 기본권 개념 등 근대의 이념적 핵심요소들을 받아들여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인민주권·민주주의·공화국 개념은 군주주권론과 닮은 수령론 등에 의해 무력해지고 보통선거는 후보들간 경쟁이 배제되고 노동당 지도부에 의해 ‘기획된’ 선거로 형식화되어 있다.

표현, 거주이전, 서신, 양심, 종교, 학문, 집회·결사의 자유, ‘알 권리’ 및 평등권 등 기본권은 권위주의적 노농독재 전통과 군사주의적 요소에 의해 심히 제한되거나 사문화(死文化)되어 있다.

근대 정치이념에서 천부인권을 가진 ‘인간들’의 집합체인 ‘인민’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 스스로 만든 국가법제 아래서 살기로 의결하는 순간, ‘인간’은 ‘시민’이 되고 ‘인민’은 ‘국민’으로 전환된다. ‘인민’의 구성원은 ‘인간’이고 ‘국민’의 구성원은 ‘시민’이다.

근대국가에서 정치의 주체는 바로 이 ‘국민’과 ‘시민’이다. 그러나 북한 정치에서는 ‘국민’이나 ‘시민’의 개념이 결여되어 있고 따라서 순수 민간 차원의 ‘시민사회’와 그 개념이 없으며 당연히 ‘시민운동’도 ‘시민단체’도 없다. 따라서 모든 언론기관과 민간단체는 계급적 결사체나 계급적 기구의 보충기제(機制)로 파악, 준(準)국가기구로 취급된다. 한편, 북한에서 ‘인민’은 개념적 내용이 완전히 변해 노동자·농민·인텔리의 계급적 집합체 또는 계급동맹체로 이해된다.

인민주권 관념에 따라 북한은 스스로 주권국가로 인식하고 국제정치적으로 주권국가로 행위하는 측면에서도 근대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주권평등을 골자로 하는 근대 국제정치관을 수정하려는 과거 사회주의권의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국제법’ 및 냉전논리에 따라 사회주의국가와 자본주의 국가를 차별적으로 대하는 우호와 적대의 원칙을 따랐다. 그러다 사회주의권의 이념분쟁 및 이른바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우리식 사회주의’ 교리를 세우고 과거 원칙을 크게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매우 근대적인 개념들로 이루어진 국명을 단 북한체제가 실제로는 근대국가의 본질적 훼손과 심각한 왜곡을 안고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 북한은 자유주의를 적대시하는 전통적·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근대국가의 핵심요소들을 받아들였으나 결국 그 스탈린주의적·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근대국가의 핵심요소들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의 중요한 사실은 북한에 도입된 사회주의론이 19세기 말에 형성되어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20세기 100년 동안 계속된 서유럽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에 전혀 무지하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북한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은 불행히도 19세기의 고전적 형태에 고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일천하기 짝이 없다. 북한이 천황제적 군국주의 체제 식민지조선에서 김일성체제로 직행했기 때문에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김일성주석·김정일위원장 체제를 보는 북한 사람의 순응적 인식은 과거 남한에서 박정희 유신체제를 옹호하던 세력의 순응적 인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할 것이다.

50년 동안 북한은 그들의 원래 꿈대로 ‘부르주아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민주주의와 인연이 없는 권위주의적 계급독재·1인독재체제로 나아갔다. 따라서 이제 북한은 20세기 민주발전에 대한 무지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권위주의와 인권유린에 저항하며 발전된 20세기의 새로운 보통·대중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서 적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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