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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행정부, 6·25 이튿날부터 원폭 투하 검토

美 비밀문서로 본 6·25전쟁 원자탄 사용계획

  • 글: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트루먼 행정부, 6·25 이튿날부터 원폭 투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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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6·25전쟁 당시 핵폭탄 사용을 검토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도로 관련논의가 진행됐는지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한국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 최근 해제된 미 국무부 비밀문서를 바탕으로 당시 검토된 핵폭탄 사용계획의 전모를 짚어본다. 기록에 따르면 백악관은 전쟁 발발 이튿날 이미 핵폭탄 사용계획을 논의했으며, 이후 국내·국제정치적 필요가 생길 때마다 핵무기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했다.
트루먼 행정부, 6·25 이튿날부터 원폭 투하 검토

6·25전쟁 당시 원자폭탄의 운반수단으로 검토됐던 B-29의 공중폭격 모습.
6·25전쟁 때 촬영된 것이다.

지난 3월초 국내 언론매체들은 6·25전쟁 당시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원자탄 사용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맥아더, 6·25전쟁 때 원자탄 30여 발 투하 요구’ 등의 제목이 달린 이 기사들은, 북한의 ‘통일신보’가 미국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글을 인용해 이 사실을 전했다면서 보도 내용을 요약해 소개했다. 그중 한 기사의 첫머리를 그대로 인용한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은 총사령관에 임명되자마자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고, 그후에도 30여 발의 원자탄을 투하하면 10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또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한 뒤에도 원자폭탄 사용을 여러 차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이는 맥아더 사령관이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을 계기로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고, 맥아더 사령관 해임의 주요사유가 핵무기 사용을 둘러싼 워싱턴 행정부와의 갈등이라는 그간의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인용기사는 ▲ 맥아더가 유엔군 총사령관 취임 직후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으며 ▲맥아더가 원자탄 30개로 전쟁 종결을 주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맥아더 해임 후에도 미국은 원자탄 사용을 수차례 검토했다는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우선 마치 맥아더만이 원자탄 사용을 요구했고 워싱턴이 이를 반대했으나 맥아더 해임 뒤에 워싱턴도 원자탄 사용을 검토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6·25전쟁 당시 원자탄 사용 논의는 개전 초기부터 정전협상이 진행되던 시점까지 전쟁 기간 전체를 통해 워싱턴에서 시기별로 여러 차례 심각하게 이루어졌다. 또 원자탄 사용에 대한 맥아더의 구체적인 발언내용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이다. 정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쏟아져나온 6·25전쟁 관련 자료 곳곳에 맥아더의 발언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더구나 커밍스 교수의 글이나 ‘통일신보’의 인용기사문 어디에서도 인용된 부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커밍스 교수가 이 글에서 강조하려 한 점은 6·25전쟁의 참혹상이다. 네이팜 폭탄 사용으로 전투지역뿐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역이 초토가 됐고, 미 공군의 화력은 일반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것이었으며, 핵무기 사용이 검토됐다는 사실마저도 이제는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북미간 핵 갈등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6·25전쟁이라는 ‘과거사’를 재조명하고 있을 뿐, 그는 이 글에서 단 한번도 ‘이러이러한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6월26일의 첫 회의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기록에 따르면 6·25전쟁이 터진 이후 워싱턴에서 ‘원자폭탄(A-bomb)’이라는 말이 처음 거론된 것은 미국 시각으로 6월25일 일요일 저녁이다(한국 시각 6월26일 아침). 오후 7시45분 저녁식사를 겸한 블레어 하우스(미 대통령영빈관) 비밀회의 내용을 기록한 국무부의 1급비밀 해제문서에는 이 회의에 참석했던 미 공군의 밴던버그 참모총장이 원자폭탄 사용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이 회의에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해 애치슨 국무장관, 루이스 존슨 국방장관, 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 셔먼 해군 작전참모장 및 밴던버그 공군참모총장 등 고위직 14명이 참석했다. ‘한국의 상황(Korean Situation)’이라는 문서 제목이 시사하듯, 전쟁 발발 이후 한국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첫 번째 고위직 확대회의였다. 문서의 일부 내용을 대화체로 재구성해본다. 러시아 극동함대의 전력을 묻는 트루먼의 질문에 셔먼 제독이 상세하게 브리핑한 직후의 대화다.

밴던버그 : 북한군을 저지해야 합니다. 소련이 싸움에 끼여들지 않으리라는 가정 아래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북한 공군이 나설 경우 우리 공군력으로 북한군 탱크를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소련 제트기가 행동을 취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아주 가까운 공군기지에서 발진할 것입니다.트루먼: 소련의 극동지역 공군력은 어떤가?밴던버그: (소련 공군력에 대한 설명 후) 소련 제트기 상당수가 중국 상하이에 주둔하고 있습니다.트루먼: 극동지역에 있는 소련 공군기지를 분쇄할 수 있는가?밴던버그: 시간이 걸리지만 가능합니다. 원자탄을 사용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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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미국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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