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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⑫

안동 가와카미(川上) 순사 살해사건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신, 붙잡힌 조선 청년들은 과연 범인인가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안동 가와카미(川上) 순사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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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운 겨울밤, 전도유망한 일본인 순사부장이 얼굴이 뭉개지도록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곳곳에서 발견된 증거와 유류품은 범인이 한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줬다. ‘경찰관 집단살해’라는 초유의 사건에 발칵 뒤집힌 일본 경찰은, 엿새 만에 다섯 명의 인근 동네 청년을 긴급 체포하고 자백까지 받아낸다. 그러나 법정에 선 이들은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이었다고 주장하고, 변호사는 경찰의 수사결과를 조목조목 무너뜨리기 시작하는데….
안동 가와카미(川上) 순사 살해사건

안동 순사 살해사건 기사가 실린 ‘신여성’ 1934년 4월호(큰 사진)와 1930년대 조선인이 재판을 받는 광경.

1932년 1월19일 밤 10시경, 경상북도 안동경찰서 가와카미 신사쿠(川上新作) 순사부장(경사)은 범죄수사를 위해 집을 나섰다. 날씨가 추워서 그랬는지, 신분 노출을 꺼려서 그랬는지 정복 대신 조선옷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 가와카미 부인은 늦은 밤 출근하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지만, 늘 있는 일이라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며 남편을 배웅했다. 남편은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날 가와카미 순사는 귀가하지 않았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가와카미 부인은 불안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땅 설고 물 선 조선에서 경찰의 아내로 10여 년을 살면서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라면 이골이 났지만, 그날만큼은 유난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경찰서에 달려가 소식을 알아보니 남편은 경찰서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경찰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 결근이었다. 그러나 외박과 결근 사실만으로 실종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밤새 놀다 결근했을 수도, 보안을 요하는 사건 수사를 위해 잠복근무 중일 수도 있었다.

“실종처리 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별일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시고 집에 돌아가 기다리세요. 곧 돌아올 겁니다.”

불안에 떠는 부인을 간신히 달래 돌려보낸 경찰은 가와카미 순사의 소재 추적에 나섰다. 오전까지만 해도 경찰은 사건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가와카미 같은 베테랑 순사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조만간 미소를 지으며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전후사정을 설명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경찰의 안이한 기대는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참혹한 사체

“안동읍에서 예천 방향으로 1.5㎞ 정도 떨어진 도로의 콘크리트 다리 밑에 사람 시체가 있어요. 어서 와주세요.”

인근 야산으로 나무하러 가던 초동의 제보였다. 주막집 개가 다리 밑에서 짖고 있길래 다가가 살펴보니 얼굴이 피범벅이 된 남자의 시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나절부터 가와카미 순사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던 경찰은 뜻밖의 제보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설마 가와카미 순사가….”

얼마 후 사건 현장에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아오야마(靑山) 검사대리와 우에다(植田) 안동경찰서장을 위시한 경관 수십명이 달려왔다. 사체 감정을 위해 도립 안동의원 야마다(山田) 원장까지 나타났다. 안면부가 참혹하게 뭉개진 사체를 살펴본 경관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설마’가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마는 심하게 깨어졌고 이는 부러졌고 귀밑과 손등의 할퀸 자국을 비롯해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코허리를 맞은 것이 치명상 같았다. 웃옷은 벗겨지고 바지는 정강이까지 흘러내려 속옷이 드러나 있었다. (‘미궁에 든 안동 순사 살해사건’, ‘신여성’ 193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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