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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 ②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일리아스’에 그려진 적과의 동침

  • 김헌 | 서울대 HK연구교수·고전학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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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는 그리스 전사 앞에 ‘사람의 얼굴을 한’ 트로이인을 세워두고 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 같다.
  • 소아시아인은 문명의 교차로에서 만난 그리스인에게 인간 내면의 고귀함을 일깨워준다.
망한 트로이文明이 그리스 지배했다

터키 트로이市에 세워진 조형물 ‘트로이 목마’.

프랑스 소설가 레몽 크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다.”

두 작품은 모두 호메로스의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일리아스’는 천하의 싸움꾼 아킬레우스가 활약하는 전쟁 이야기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분노와 격정으로 씩씩대는 건장한 사내들이 피 터지게 싸운다. 수많은 전사가 죽고 죽이는 잔혹한 장면이 작품 전체에 차고 넘친다. 한편 ‘오디세이아’는 최고의 지략가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 동안 지중해 세계 곳곳을 헤매고 다니다 어렵사리 귀향에 성공해 집안에 쌓여 있던 문제를 깨끗이 해소하는 그의 이야기는 모든 모험 이야기의 원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크노의 말대로라면 서양의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전쟁 또는 모험의 이야기다. 그리고 문학이 인간 삶의 모방이요 재현이라면 우리 삶 자체가 모험과 전쟁의 연속이란 말이다. 사실 그렇다. 우리는 매일 아침 집을 떠나면서 모험을 시작해 하루 종일 크고 작은 각종 전투를 치른 다음 저녁이 되면 지친 몸을 이끌고 귀향하듯 귀가한다. 사랑조차 전쟁 같다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삶과 문학에서 모험과 전쟁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전쟁과 모험은 사람들의 삶을 형성하며 인류의 역사는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험과 전쟁의 누적이다. 따라서 큰 전쟁과 중요한 모험은 역사의 획을 긋는다. 문명이라는 것도 모험과 전쟁의 계기를 빼고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전쟁은 두 진영의 충돌이며 모험은 한 진영의 다른 진영에 대한 모색과 침투를 의미하므로 전쟁과 모험은 문명의 충돌이든 융합이든 흡수든 정복이든 두 문명권의 교류를 낳는다.

아시아 vs 유럽

서양에서 가장 많이,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전쟁은 아마도 트로이 전쟁일 것이며, 그런 성격을 갖는 모험의 전형을 세운 인물은 트로이 전쟁의 공신이던 오디세우스일 것이다. 두 작품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기경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사이에 10년간 벌어졌는데, 그리스의 여러 나라가 대규모 연합군을 이루어 에게해(海) 건너편에 있는 트로이로 쳐들어가면서 일어났다고 한다. 트로이는 ‘일리온’이라고도 불린 터라 서사시 제목이 ‘일리아스’가 된 것이다. 지금의 터키가 차지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소아시아(mikra Asia)’라고 하는데,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건, 요즘의 지정학적 개념으로 보면 아시아 대 유럽의 전쟁인 셈이다. 그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를 지배하던 ‘미케네 문명’과 트로이에 깊은 영향을 끼친 ‘히타이트 문명’ 사이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었고, 그의 동생이며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가 2인자였다.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꽃피어난 청동기 중심의 미케네 문명의 주역이다.

이 문명의 존재를 처음으로 캐낸 사람은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이었다. 그는 아가멤논의 무덤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발굴한 황금 가면을 아가멤논의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출토된 다양한 황금 장신구와 청동 무기,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등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가졌을 법한 부와 힘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특히 미케네 궁전 벽에 그려진 이륜마차 그림은 그 궁전의 주인들이 전쟁터에서 위세를 떨쳤고, 그리스 본토와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나갈 수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미케네 벽화에 그려진 이륜마차가 미케네의 발명이 아니라 아나톨리아 반도를 거쳐 그리스로 유입된 것으로서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 깊숙한 곳에 터를 두었던 히타이트 문명권을 대표하는 무기였다는 사실이다.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전사들은 말 등 위에 직접 타지 않고, 대신 마차를 타고 전투에 임한다. 전투 방식이 같다는 것은 두 문명권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전차의 역할이다. 전사들은 그것을 타고 전장을 헤집고 다니며 적을 무찌를 법한데 도무지 그런 기동성과 파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전사들은 자기 진지로부터 마차를 타고 폼 나게 전쟁터로 달려가지만 정작 격전지에 도착하면 마차에서 내려 창과 칼로 싸운다. 그러니까 이륜마차는 전투의 수단이 아니라 운송의 수단인 셈이다.

누가 더 야만스러운가?

아마도 호메로스는 마차의 전투적인 용도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앞이 안 보이는 맹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살던 시대에는 그 마차의 용도가 잊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지 않은 채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그가 그려내는 시간과 공간의 상당 부분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작품에서 그리스와 트로이는 서로를 낯선 존재로 느끼지 않는다. 호메로스는 이미 두 지역이 하나의 문화권, 단일한 문명권으로 묶인 이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두 진영은 서로에게 낯선 존재들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리스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감대는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바르바로스(barbaros)인’이라고 부르고 ‘헬라스 말을 쓰는 자신들(Hellenes)’과 다른 존재로 여겼다. 바르바로스는 나중에 ‘야만성’을 뜻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이 ‘바르바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중국인을 ‘쑤알라 쑤알라’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트로이인에 대해 바르바로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두 진영이 같은 말을 사용하는 듯이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동맹군 사이에는 통역 없이도 서로 말이 잘 통하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 하지만 두 진영이 하나의 언어를 썼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로이인들은 분명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바르바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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