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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로버트 실러 美 예일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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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버블 붕괴 예측해 명성

1996년에는 저서 ‘매크로 마켓(Ma- cro Markets)’으로 폴 새뮤얼슨 상도 수상했다. 금융 관련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주는 권위 있는 상으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첫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폴 새뮤얼슨 MIT 교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실러가 본격적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은 계기는 닷컴 버블이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활황으로 미국 나스닥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던 2000년 3월, 실러 교수는 달아오른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책 한 권을 발표했다. “지금 주식시장은 투기적 버블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주식 투자가 아니라 주문(呪文)을 외우는 투기에 나서고 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다. 이 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그의 분석은 현실로 드러났다. 나스닥지수는 불과 한 달 만에 30% 폭락했다. 미국발 ‘닷컴 버블’붕괴로 세계경제가 위축됐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용어가 유명해진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이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가 ‘신경제(New Economy)’의 호황으로 흥청망청하던 1996년 11월 “주가 상승이 과도하다”는 직설적인 말 대신 “금융시장이 비이성적 과열에 휩싸였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주가 상승을 진정시켰다. 그린스펀에게 이 용어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실러다.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면서 세계경제 동향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실러가 이 용어를 언급했고, 이에 힌트를 얻은 그린스펀 전 의장이 이 말을 사용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실러가 닷컴 버블 붕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건 1980년대 초부터 미국 주가 및 주요 기업의 배당금 변화를 상세히 비교해온 덕분이다. 그는 어떤 기업의 영업활동이 좋지 않아 배당금을 많이 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 기업의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이것이 주가 방향성이 급하게 바뀔 수 있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잘못된 기대를 가지면 주가는 ‘실제 가치(펀더멘털)’를 뛰어넘어 ‘거품(버블)’의 영역에 도달한다고 봤다. 그는 이 논리를 훗날 세계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예측할 때도 그대로 적용했다.



많은 이가 ‘비이성적 과열’에 대해 “책 내용도 훌륭하지만 이런 책을 발간한 저자의 용기가 더 놀랍다”고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초는 지수 1만 선을 넘나들던 다우지수가 곧 2만, 3만 선을 돌파한다며 ‘다우 40000’유의 책이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주가 거품이 과도하며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브프라임 부실도 현실로

실러는 주식 시장에 이어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주목했다. 2005년 12월 그는 CNN 인터뷰에서 “주택 가격이 오르기만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집값이 30~40년 전에 비해 매우 높은 상태인 건 물가 상승 때문이지 실제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도 ‘비이성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집값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 자산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당시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으로 위축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대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001년 6.5%에 달하던 미국의 기준금리를 불과 2년 만에 1.0%로 끌어내렸다.

시장은 이를 ‘그린스펀 풋(put)’이라 불렀다. 파생상품의 한 종류인 풋옵션처럼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려 주가 반등을 뒷받침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유동성 완화 정책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쳐 급격한 자산가격 상승을 낳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래에셋 펀드 열풍,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부동산 투자 열풍도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오랜 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과잉은 ‘거품 경제’라는 독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문제는 유동성 범람이 최고조를 향해 가던 2005년만 해도 이 위험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년 반 후 실러의 예언은 적중했다.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업체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동산 거품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의 많은 저소득층은 집값의 90%, 심지어 100%를 대출받아 집을 샀다. 이자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집을 사두기만 하면 곧 가격이 오르니 오른 가격으로 이자 부담을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언제까지 고공비행을 할 수는 없는 법. 집값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서민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투기세력도 부동산 시장을 빠져나갔다. 뉴센추리에 이어 다른 모기지 회사도 줄줄이 파산 행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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