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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족쇄가 영국을 수렁에 빠뜨릴 것”(목사 아버지) “분노 일으킨 근원은 EU 아닌 보수당 정권”(교수 아들)

가족도 갈라놓은 브렉시트

  • 런던=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EU 족쇄가 영국을 수렁에 빠뜨릴 것”(목사 아버지) “분노 일으킨 근원은 EU 아닌 보수당 정권”(교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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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빈부격차 크지 않던 ‘굿 올드 데이즈’로”
  • ● “지금 EU 탈퇴 안 하면 더 힘들어질 것”
  • ● “브렉시트 후 경기침체가 EU 잔류 정당성 입증”
  • ● “거짓 공약에 속은 유권자…후폭풍 너무 심각”
“EU 족쇄가   영국을 수렁에 빠뜨릴 것”(목사 아버지)   “분노 일으킨 근원은  EU 아닌 보수당 정권”(교수 아들)

7월 2일 영국 런던 시내에서 벌어진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 등장한 깃발. 영국이 EU 안에 있음을 표시한 그림이 흥미롭다. [안 프란시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영국의 가족 갈등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영국 유수 대학의 중견교수 A씨(아버지의 신분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아 가명 사용) 가족이 그런 예다.

A씨는 브렉시트 투표를 앞두고 소셜네트워크에서 브렉시트 반대 논지를 강하게 펼치면서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목사인 그의 아버지 B씨가 그 내용을 우연히 접하고 투표 직후 아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이에 아들이 자신의 주장을 담은 e메일 답장을 아버지에게 보낸다. 두 사람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선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이번 투표가 영국과 세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각자의 처지에서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투표 결과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는 A교수는 아버지와 논쟁한 내용을 ‘신동아’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는 “이번 투표엔 소외된 계급의 저항이 반영됐는데, 방향을 무능한 정부로 돌리지 않고 유럽연합(EU)으로 돌린 것이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고, 아버지 B씨는 “큰 정부, 큰 기업, 큰 은행이 지역적이고, 친절하고, 책임있는 피라미들을 삼켜버렸다. 큰 유럽은 위협적이어서 싫다”고 토로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e메일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From : B
Sent : 27 June 2016 13:37 BST
To : A

사랑하는 A에게,

이 글을 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내 나이 77세이니 나는 영국이 EU에 가입하기 전의 영국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영국은 내가 아이들(너희들)을 행복하게 기를 수 있는 세상이었지. 영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영국을 건설하는 것, 시간관리를 통해 일을 깔끔하게 해치우는 것, 모든 선한 것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은 긍정적이었다.

빈부격차는 심하지 않아 언제든 메울 수 있을 정도였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복지기금도 여럿 생겨났다. 의사와 병원의 서비스는 헌신적이었고 사람들을 잘 보살폈으며, 은행들은 고객을 위엄 있는 인격체로 대우했다. 잉글랜드 음식값은 대륙보다 훨씬 쌌고, 농산물과 수산자원은 필요한 만큼 생산됐으며, 산업 각 부분은 균형을 갖추도록 나라가 잘 조정했다.



욕심이 영국을 망쳤다

정치인들은 지역구를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며 존경받았다. 대영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인식했고, 영연방 국가의 권리를 존중해 각 나라가 독립하도록 했다. 영연방 각국이 스스로 미래의 선을 찾을 수 있도록 했지. 그들 나라에 민주주의 모델을 심어주되 그들 스스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게 했다.

우리 아이들은 밖에서 창의적이고 안전하게 놀 수 있었다. 도시를 가득 채운 스모그 오염을 겪으면서 우리 세대는 스모그 없는 산업을 추구했다. 선생님들은 신념에 따라 아이들을 교육했고, 정부 정책의 변화나 비난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그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함께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역공동체는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지나친 욕심이 영국을 망쳐왔다. 국회의원들은 지역 민심을 자극해 EU 탈퇴를 이끌고는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큰 정부, 큰 기업, 큰 은행이 지역적이고, 친절하고, 책임있는 피라미들을 삼켜버렸다. 그리고 나는 큰 유럽이 위협적이어서 싫다. 만약 영국이 1910년대와 1930년대에 유럽과의 관계에서 좀 더 강력했더라면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유혈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 때문에 너와 나의 관계가 이렇게 분열의 위험에 있다는 것이 아쉽구나. 네가 페이스북에서 그렇게 비난한 사람들 속에 나도 포함돼 있다는 게 답답하다. 나는 이 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너의 생각에 공감하기도 한다. 아주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양심과 경험에 비추어 ‘아웃’에 투표했다. 나의 탈퇴 동기는 대의를 위한 것이다. 영국은 앞으로 험난한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그리고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미래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EU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우리나라를 더욱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늙어가고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되지만, 너의 경험보다 앞선 시대의 목격자인 나의 말을 주목할 가치는 있다고 본다.

우리가 서로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해도 나는 너희를 계속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네 일과 네 가족을 부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렇다.

사랑과 존경을 보내며,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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