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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몸 공부, 마음 이야기 ②

마주보고, 쳐다보고, 내려다보니 부부 금실은 어느새 쑥쑥…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마주보고, 쳐다보고, 내려다보니 부부 금실은 어느새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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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주 다투지만 싸워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작두질처럼 위험한 일을 아내와 함께할 때 그렇다. 작두의 긴 칼날은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작두질을 혼자 하면 속도가 나지 않는데 둘이 하면 힘이 안 들고 일이 서너 배는 빠르다. 내가 칼날을 들면 아내가 볏짚을 칼날 안으로 밀어넣는다. 아내의 손이 안전한지 확인하면 다시 내가 작두 손잡이를 온몸으로 누른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부부 사이에 호흡이 안 맞으면 손목이 잘릴 수 있다. 잔뜩 긴장하니 부부싸움은 생각조차 못한다. 작두질하다가 중간에 서로 마음이 안 맞으면 다른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들’자 끼고 하는 부부싸움의 치유력

싸우고 싶지 않은 때도 있다.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못자리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면 볍씨를 물에 담근다. 그리고 한 열흘쯤 지나면 싹이 나올 듯 말 듯한다. 그럼, 씨앗이 고루 잘 터 올 한 해 우리네 생명을 잘 꾸리게 해달라고 마음을 모은다. 마당을 쓸고, 손톱 발톱을 깎고, 목욕을 하고, 속옷을 갈아입는다. 방안에 군불을 따끈따끈하게 때고 볍씨랑 한방에서 잔다. 이때는 싸움은 고사하고 말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생명이 싹트는 순간을 함께한다.

농사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부부싸움은 여전하다. 주도권 다툼을 하면 둘 사이에 풀리지 않고 응어리지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이웃을 만나면 쏟아져 나온다. 이웃의 힘을 빌려 자신이 옳다는 걸 밝히려 든다. 발도 잘 안 닦고 잔다든가, 살가운 정이 없다든가 하며 시시콜콜 흉을 본다. 이웃이 있는 자리에서는 체면 때문에 크게 싸우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잘 가라는 인사를 끝내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아내와 싸운다.

가끔은 집단으로 부부싸움을 한다. 여성 한 편, 남성 한 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는다. 말투부터 시비조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그 모양이냐.”

“정말이지, 남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그렇게 ‘들’자가 들어가면 ‘들’에 속한 모든 이가 들고일어난다. 실은 자기 아내, 자기 남편 흉을 보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 일반화해버리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싸움은 박진감이 있고, 싸움 뒤에 남는 게 있다. 각 가정의 특성이나 사람마다의 기질, 그리고 성장과정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들’자를 끼고 하는 부부싸움은 상처를 입기보다는 치유효과가 있다.

이웃과 어울리다 보면 잘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농사를 안 해보던 사람이 농사를 지으니 농사에 얽힌 무용담이 많다. 떠벌리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릴 정도다. 같은 평수에서 누가 고추를 더 많이 땄는가, 퇴비를 어떻게 만들면 거름 효과가 좋은가, 누구네는 산토끼가 콩을 다 먹었다는 둥 모이면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더 떠벌린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잠재욕구가 거침없이 나온다.

내가 떠벌리면 아내가 찬물을 쫙 끼얹는다. 아내가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내가 딴죽을 건다. 사실 떠벌리는 내용이란 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내가 “고구마를 600kg이나 수확했다”고 자랑하면 아내가 “에이, 500kg 좀 넘지” 한다. 그냥 잘나고 싶어 과장한 것뿐인데 아내는 그냥 넘어가지 못 한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아주 유치하게 싸운다.

많고 많은 싸움은 따져보면 그 바탕엔 먹고 자는 일이 깔려 있다. 산골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먹고 자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우리 식구는 처음에는 마을의 빈집을 빌려 살았다. 시골집이 내게는 고맙고 소중했지만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다고 했다.

“밥해 먹기 불편하다. 너무 춥다. 간단한 목욕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집 좀 고쳐달라.”

아내가 그런 불평을 자주 했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 몸에는 우리 어머니의 삶이 강하게 각인돼 있다. 어머니는 허름한 시골집에 시집와 마을 공동 샘에서 물 길어다가 밥하고, 냇가에서 빨래를 했고, 농사일도 다 하면서 좁은 방에서 자식 다섯을 키웠다.

반복된 불만에도 내 귀가 열리지 않자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내가 이혼하자고 큰소리치곤 했는데 막상 아내가 집을 나가니 내 자신이 정말 초라했다. 아내가 해 준 밥 먹고, 잠만 자던 집이 다시 보였다. 처마 서까래랑 부엌 천장이 검게 그을린 데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이면 식구들이 다 집 안으로 모이곤 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식구들 빈 자리가 더 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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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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