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1/3
  • 인류는 커피를 먹기 시작한 지 1000여 년 만에 ‘달이기’의 한계를 벗어나 ‘우려내기’에 눈을 떴다.
  • 커피의 향미에 몰입하면서 다양한 추출법이 등장했다.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뜨거운 에스프레소 커피가 머신에서 추출되는 순간. [사진제공·커피비평가협회]

23년 전만 해도 “커피는 식물의 어떤 부분을 먹는 것일까?”라고 질문하면 머뭇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콩처럼 털어 먹는다”는 답변과 함께 “줄기나 잎의 즙을 짜 마신다”는 말도 나왔다.

커피는 앵두나 체리처럼 빨간 열매 속의 씨앗만 골라내 겉에 묻은 점액질을 물로 씻거나 햇볕에 잘 말린 뒤 볶아 먹는 것이다. 더욱이 볶은 것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설탕이나 소금 입자 굵기로 갈아 뜨거운 물이나 찬물로 그 속의 성분을 추출해야 한다.

커피 나무의 태생지 에티오피아는 기원전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그 먼 옛날에 이토록 복잡한 방법을 깨우친 걸까. 한참을 양보해, 예멘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 국가들의 주장을 따라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시점을 기원후 7~8세기로 잡더라도 디테일한 커피 음용법을 그때부터 알아냈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음료’ 아닌 ‘음식’

커피를 처음 먹은 것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 카파(Kaffa) 지역 원주민은 커피 열매를 음료가 아니라 음식으로 대했다. 이때가 언제인지는 명확히 알려진 게 없다. 에티오피아가 525년 예멘을 침공함으로써 아라비아 반도에 커피를 전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보다는 앞선 시기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금도 에티오피아 산악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갈라(Galla) 부족에겐 커피 열매를 음식으로 먹는 관습이 일부 전한다. 커피 열매를 동물성 기름과 함께 볶은 뒤 당구공만 하게 만들어 갖고 다니며 먹는다. 늙은 염소가 빨간 커피 열매를 먹고 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을 보고 인류도 열매를 따 먹게 됐다는 ‘칼디의 전설’을 봐도 커피는 초기엔 과일처럼 열매를 먹는 것이었다.

이슬람권에서 전해지는 유래설에서도 커피는 열매를 그냥 먹거나 끓여 마시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570~632)와 관련한 기원설에서도 극도로 쇠약해진 마호메트가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커피 열매를 따 먹고 기운을 차린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에 커피가 처음 언급된 시기는 10세기 초반이다. 이라크 바그다드병원장 라제스(865~923)가 쓴 ‘의학보고’에 “커피는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 커피를 마시면 좋은 체취가 난다”는 대목이 있다. 커피는 이 시기에 이미 소아시아 접경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퍼져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커피의 기원설에 등장하는 ‘셰이크 오마르’는 이슬람 학자로서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게 해 전염병을 막은 인물로 묘사된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압달 카디르의 ‘커피의 합법성 논쟁과 관련한 무죄 주장’(1587년)에는, 이 시기가 1258년이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마르가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게 했다고 적혀 있다.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교도 알 샤드힐리는 커피 마시기를 수행 방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는 커피 열매가 아니라 잎이나 줄기를 끓여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전언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13세기 중반까지는 커피 열매를 그대로 먹거나 달여 마시는 방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1500년대 전후 ‘로스팅’

커피 열매에서 씨앗만 골라내 볶아 먹은 것이 언제부터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기록이 없으니 실마리를 통한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덴(예멘)의 율법학자 게마레딘이 1454년경 에티오피아에 갔다가 커피를 예멘으로 가져가 전파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여기서도 음용법은 열매를 달여 마시는 것이었다. 커피는 예멘을 통해 이슬람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급속히 확산된다.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게 만드는 커피의 효능은 무슬림들로서는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일 만했다.

무슬림들이 얼마나 커피를 마셨던지, 예멘은 아예 커피를 경작하기에 이른다. 메카, 메디나, 이집트, 터키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 커피 주문량이 쇄도했다. 예멘의 한 항구인 모카가 지금까지도 커피를 일컫는 상징이 됐을 정도니 당시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커피를 멀리 떨어진 이란-이집트-시리아-터키 등지로 대량 운송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상인들은 커피의 씨앗만 있어도 효능을 볼 수 있으며, 오히려 향미가 더 좋다는 것을 깨우친 듯하다.

윌리엄 우커스는 저서 ‘올 어바웃 커피’에서 16세기 예멘에서 커피가 대중화하고 메카, 메디나, 이집트, 이스탄불을 거쳐 17세기 초엔 이탈리아를 통해 유럽으로 퍼졌다고 적었다. 이 시기쯤에 비로소 커피 로스팅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1700년대 유럽 여러 국가의 학자들이 쓴 문헌엔 변용된 칼디설과 오마르설이 등장했다. 이전의 문헌과 달리 “칼디에게서 열매를 받은 수도승이 불결하다며 불 속으로 던졌더니 멋진 향기가 났다”거나 “오마르가 산속을 헤매다 열매가 달린 마른 가지를 땔감으로 쓰다가 향기 나는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는 식이다. 씨를 로스팅해 마시는 커피 음용법이 자리 잡으면서 로스팅을 포함한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1/3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목록 닫기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