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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의 기인·괴짜 10인 열전

70대에 히말라야 무산소 등정한 금속공학자 박희선

  • 안영배

70대에 히말라야 무산소 등정한 금속공학자 박희선

지난 11월10일 오후 5시경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아파트처럼 아담하게 꾸며놓은 실내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 열댓 명이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두 눈은 뜬 듯 감은 듯 하단전(下丹田: 배꼽 아랫부분의 혈) 쪽을 응시하고, 상체를 약간 숙이고 허리를 앞으로 내밀면서 곧추세운 자세다.

수련생들 정면에는 흰 머리카락에, 새의 깃털처럼 흰 눈썹이 유난히 돋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한복차림으로 앉아 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할아버지가 ‘탁’ 하고 목죽을 한번 치니 사람들이 두 손을 가슴께로 모은다. 또 한 번 둔중한 목죽 소리에 읍배를 올리고 드디어 참선에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가부좌한 다리에 약간 통증을 느낄 때쯤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흘렀다. 그 시간만큼은 내면에 귀를 기울였다는 뿌듯함이 전해온다.

비록 산중 고도가 아닌 도심 속이지만 이곳은 분명 참선을 가르치는 선원이고, 그 주장자는 올해 여든한 살 나이의 노과학자 박희선(朴禧善) 박사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교수 시절부터 생활참선을 보급해온 박희선 박사는 이야기에 앞서 이틀 전에 체크한 자신의 건강기록표를 보여준다. 혈압 79∼137mmHg, 맥박수 68bpm. 80대 나이에 놀랄 만한 건강 수치다. 그는 지금도 맨눈으로 깨알 같은 신문을 줄줄 읽어낸다.

그보다 더욱 깜짝 놀랄 일은 내년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해발 5895m) 등반이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따로 준비라고 할 것은 없고, 여행용 가방에 등산화만 챙기면 된단다.

“원래는 작년에 등반을 하려 했어요. 그런데 킬리만자로산을 등반한 사람들을 조사해보니까 80세 고령자가 등반에 성공해 기네스북에 실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기록을 깨보기 위해 만 나이로 81살이 넘는 내년으로 미루었지요.”

박박사는 기네스기록 보유자다. 76∼77세에 히말라야 카라파타(5545m), 메라피크(6654m) 봉에 잇따라 올라 세계 고령 등반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95년 10월 희수(喜壽·77)의 나이에 메라피크봉 무산소 등반에 성공하자 네팔 산악인들조차 경탄을 금치 못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 네팔인 셰르파들은 이 특이한 할아버지를 붙들고 ‘신비한 체질’을 가지게 된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산만 타고 다니는 자신들도 정상에서 두통과 호흡곤란을 겪는데 여든이 가까운 할아버지는 별로 곤란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알파파 명상의 세계

박박사는 자신이 신비한 체질을 타고난 게 아니라 근 40년간 해온 참선(명상) 덕분이라고 말한다.

“참선을 과학적으로 풀이하면 두뇌의 뇌파가 알파(α)파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알파파 상태의 두뇌는 산소부족과 기압 저하, 심한 기온차 등 극한의 히말라야 환경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몸을 조절해줍니다. 저는 등반 중 쉬는 틈틈이 참선에 들어갔고, 이동할 때는 제가 발명한 ‘슈퍼 아이큐’(두뇌가 지속적으로 알파파 상태가 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몸에 부착해 항상 머리가 명상하는 상태에 있도록 했습니다.”

즉 박박사는 두뇌를 알파파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초인적인 의지와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뇌파는 감마파(30Hz)에서 베타파(14~30Hz), 알파파(8~14Hz), 세타파(4~8Hz), 델타파(0.4~4Hz)로 나누는데, 참선을 하면 알파파가 활성화돼 마음이 안정되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 인체의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또 인체의 알파파 상태를 유도해주는 그의 슈퍼 아이큐는, 모전자회사가 현재 ‘솔로몬’이란 이름으로 제품화해 판매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그는 건강치 못한 체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안 내력으로 본태성 고혈압 증상을 앓다가 뇌출혈로 돌아갔고, 그 역시 40대 초반에 혈압 수치가 120~180mmHg로 병원입원 치료를 권유받을 정도였다. 게다가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해 자신의 교수 연구실을 1층에 둬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빴다.

그러던 그는 68년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중 일본인 경산 스님을 만나 참선에 입문, 40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오고 있다. 참선을 시작한 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물론, 모든 신체 증상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의학계에서는 본태성 고혈압 환자의 경우 고혈압 진행을 늦출 수는 있어도, 혈압 자체의 수치를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대한 박박사의 불만.

“제가 의학계에 지인이 있어서 내 몸을 모르모트로 제공할 테니 정밀 검사를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검사해보지도 않고 믿으려 들지를 않아요. 실제로 저한테 와서 참선을 배우는 사람 중에도 고혈압으로 약을 몇 년씩 먹던 사람이 약도 안 먹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 사람도 모르모트가 될 용의가 있다고 해요. 또 제 안사람(이경수·75)도 아이를 낳을 때 골반이 잘못돼 좌골신경통을 심하게 앓아왔는데 5∼6년 전부터 참선으로 완전히 고쳤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저를 실험해보겠다고 초청의사를 밝힙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제가 조국도 아닌 일본에서 모르모트 신세가 된다는 게 영 자존심이 상해서 가지를 않아요.”

그는 또 자신이 주장하는 ‘출장식 호흡법’(내뿜는 숨을 들이키는 숨보다 길게 하는 호흡법)을 지속적으로 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출돼 파킨슨병이나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고, 성장호르몬이 분비돼 노화방지와 회춘 및 체중감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지도하는 회원 중 파킨슨병을 앓던 남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다수의 여성 수련자가 체중감소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박박사는 명상을 하다 보면 뇌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이 스스로 감지된다는, 선뜻 납득하기 힘든 말도 내뱉는다. 그의 피부를 가까이서 관찰해보았다. 81살 노인의 피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고 윤기가 흘렀다. 과연 그의 말은 사실일까?



정력 세지는 호흡법



그는 참선, 즉 명상을 지도하면서 자세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뇌의 알파파 상태를 왕성하게 방출시키려면 절에서 하는 참선처럼 마음 조절만 가지고는 힘들며, 자세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뇌파 측정기로 테스트한 결과 알아냈다는 것.

매사 이렇게 과학적으로 명상을 얘기하는 것도 그의 특기다. 과학자로서 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실제로 그는 우리나라 금속공학의 학문적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아무튼 그가 제시하는 자세는, 가부좌 상태로 앉되 상체를 5도 정도 앞으로 숙이고 허리를 앞으로 내밀어 체중이 삼등분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른바 ‘피라미드’ 자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몸의 무게중심과 하단전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하단전은 몸의 무게중심에서 등쪽으로 약 3cm 떨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가 권하는 자세로 앉으면 일반인들도 단전을 무게중심에 근접시킬 수 있으며, 좀더 수련을 쌓으면 일치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자세로 5분 가량만 앉아 있으면 아랫배 쪽이 따뜻해지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인체의 중심에서 방사하는 피라미드 파워를 이용하여 단전을 자극하고, 활성화된 단전이 즉시 뇌로 전달돼 결국 뇌의 알파파 방출을 왕성하게 만드는 원리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호흡운동. 숨쉬기만 잘해도 정력이 세진다고 그는 주장한다. 들숨을 쉴 때는 인체의 횡격막이 하부로 약간 내려갈 뿐이므로 폐를 자극하지 못하지만, 날숨일 때는 횡격막이 상부로 올라가 폐를 압박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인의 날숨은 폐를 약간 자극할 뿐이요, 그가 제시한 것처럼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하여 약 10초 정도 내쉴 경우(출장식 호흡법) 폐가 활성화돼 전립선호르몬 등 각종 호르몬이 분비되고 정력 증강의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이 귀가 솔깃해질 만한 말이다.

“최근 폐에서 전립선 호르몬을 비롯해 각종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연구 보고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립선 호르몬은 전립선 외 다른 기관에서는 분비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폐가 이 호르몬의 합성, 분비를 담당하는 중요한 장소라는 것이 밝혀진 겁니다. 일리가 있는 게 옛날부터 폐병 환자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성욕이 왕성한 바람에 부부생활을 못하게 했어요. 이것은 폐균의 자극으로 전립선 호르몬의 왕성한 분비에 기인한 것이지요. 그러니 건강한 사람이 출장식 호흡으로 폐를 자극하면 얼마나 정력이 왕성해지겠습니까?”

박박사는 이렇게 자세와 호흡을 중요시하는 명상은 한마디로 무질서한 인체를 질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현상계는 단순에서 복잡으로 변해가는 엔트로피 법칙이 작용하지만, 명상은 이를 거꾸로 돌리는 네거티브 엔트로피라는 것. 그는 이에 ‘네겐트로피(Neg-entropy)’라는 신조어를 붙였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네겐트로피 현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즉 노화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잠시 정지시킬 수도 있고 역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연수명이 120세라는 말에 그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가 킬리만자로에 가는 까닭도 바로 그것이다.

신동아 2000년 1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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