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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쉰 넘어 빛 본 ‘대기만성’의 전형, 韓紙작가 전광영

“나를 향한 온갖 거부(拒否)가 나를 키웠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쉰 넘어 빛 본 ‘대기만성’의 전형, 韓紙작가 전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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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가까운 무명 시절을 보내고 작품 한 점당 10만달러가 넘는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선 사람. 후배들이 초대전을 할 때 대관 전시를 해야 했던 신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오늘의 작가’가 된 사람.
  • 한지 작업으로 유명한 전광영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대가’가 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늘 곁에서 발버둥치던 그를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쉰 넘어 빛 본 ‘대기만성’의 전형, 韓紙작가 전광영
멀리서는 극히 절제된 미니멀리즘 작품으로 보인다. 마치 조약돌이 깔린 강변 같기도 하고, 가을날 누렇게 익은 논 같기도 하다. 삭막하게 갈라진 달 표면 같고, 아니면 구멍이 뻥뻥 뚫린 채석장 같다. 구획된 평면 속에 사방으로 뻗은 선과 색의 농담은 묘한 리듬감을 준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고서에서 나온 한지로 정성스럽게 싼 스티로폼이었다. 한자와 한글이 언뜻언뜻 보이는 이런 것 수천개가 캔버스에 빽빽이 붙어 있다. 서로 끌어당기듯 밀어내고, 튀어나오듯 파고든다. 그렇게 촘촘한 조각들에서 풍겨나오는 한국적인 정감이 아주 현대적으로 드러난다. 한지 작업으로 유명한 전광영(全光榮·61) 화백의 한지 오브제 ‘집합(Assemblage)’ 연작이다.

이 연작에 세계는 열광했다. 해외의 미술평론가들은 “소립자를 연상시키는 개체들을 모아 화면을 이루는 동양적인 방법과 군집을 이룬 개체들에서 느껴지는 삶의 유비(類比)라는 서양철학이 더해진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보통 100호짜리 크기에는 7000여 개의 한지조각이 들어가는데, 한지를 쌀 때 사용하는 실 역시 한지를 꼬아 만든 종이실이다. 즉 한 작품을 만드는 데 7000번 싸고 꼬고 붙이는, 그래서 2만 번 이상의 수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순백의 공간에 대형 붓으로 뻘건 줄 두 개를 그어놓고는 완성됐다는, 극단적으로 단순한 미니멀리즘 작품에 허탈해한 사람들, 특히 서구인들은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 같은 노력과 그 속에서 나온 진정성에 ‘오 마이 갓!’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놀라게 한 건 또 있다.

“여기에 사용된 한지는 모두 100년은 된 고서에서 나온 것들이죠. 논어, 맹자, 법전, 의전, 시문이나 소설, 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요. 이 작품 앞에 서면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나이 지긋한 선비부터 서당의 어린 학생까지, 애환 많은 아낙네부터 볼이 빠알간 규방 소녀까지 말이지. 그들의 손때가 묻은 책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 다양한 역사의 결과물들이 촘촘하게 한자리에 모인 거야. 이런 동양의 정신을 ‘집합’해서 쌌다고 말해주면 다들 감탄합니다.”

이 작품은 30년 가까이 ‘안 팔리는 작가’로 살아온 전 화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후배들이 번듯한 화랑의 초대를 받아 전시회를 열 때도 쌈짓돈을 털어 화랑을 대관해 작품을 발표해야 했던 그다. 하지만 ‘집합’ 연작을 선보인 1995년 이후 전혀 다른 인생 행보를 보인다.

1995년 LA 국제전시회를 뜨겁게 달군 현지 언론의 반응, 1997년 시카고 아트페어(여러 개의 화랑이 한 곳에 모여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것) 매진, 이후 참가한 13회 아트페어 모두 전 작품 매진, 1999년 뉴욕 맨해튼 중심가 킴포스터 화랑과 전속작가 계약,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해외 개인전 다수 유치, 2006년 6월 세계 10대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런던 애널리 주다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대규모 회고전 예정…. 현재 그의 웬만한 작품은 한 점 가격이 10만달러가 넘어가는데도 국내외 컬렉터들이 사지 못해 안달이다.

“1997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처음으로 작품이 다 팔렸을 때 스태프들에게 저녁을 샀어요. 시카고에 있는 중국음식점엘 갔는데, 디저트로 포춘 케이크가 나오잖아. 그런데 그 안에 ‘오늘부터 너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어요. 그후 늘 그 메시지를 지갑 속에 넣고 다녔습니다. 마치 부적처럼 나를 지켜주는 것 같거든.”

아버지 가슴에 못박은 아들

경기도 판교, 자그마한 야산을 등지고 자리잡은 작업실에서 만난 전광영 화백은 지갑에서 종이조각을 꺼내들며 잠시 회한에 잠기는 듯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들어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다는 그의 삶은 계속되는 거부와 끝없는 외로움, 그리고 실낱 같은 희망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거부는 아버지에게서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천한 짓이 ‘딴따라’와 ‘환쟁이’라고 믿은 아버지는 환쟁이가 된 아들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분이셨어요. 내가 태어났을 땐 강원도 홍천에서 내로라하는 유지셨지. 벽돌공장을 크게 하셨는데 직원이 50여 명이나 됐을 만큼 규모가 꽤 컸어요. 외아들인 나를 안고 ‘잘 봐라, 앞으론 네가 이 공장을 경영할 것이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그런데 난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했을 때도 ‘화가’라고 썼지. 하지만 집에선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미술선생님이 내게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하니까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미술선생님을 혼냈을 정도였지. 아버지를 회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실패했어요. 하지만 나도 고집이 있거든. 고등학교 졸업하고 무작정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냈어요. 그렇게 아버지랑 완전히 틀어지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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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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