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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명사들의 나의 집

소박한 역사의 현장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 글│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사진│박해윤 기자

소박한 역사의 현장 ‘상도동’

소박한 역사의 현장 ‘상도동’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언론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영삼(YS), 김대중 두 민주지도자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못했다. 대신 상도동, 동교동이라는 두 지도자의 사저가 있는 지명을 고유명사처럼 사용했다. 그 덕에 상도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저가 위치한 지명인 동시에 YS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상도동 사저는 YS의 정치역정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의 현장이다.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가택연금을 당했던 YS는 사저에서 암울한 시기를 묵묵히 견뎌야 했고, 민주화운동 열기에 힘입어 해빙무드가 조성될 때에는 민주화세력의 구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1월11일 오전 11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를 찾았다. 1960년대 지어진 그 모습 그대로 뼈대를 유지하고 있는 사저는 소박한 민초들의 집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965년에 상도동으로 이사 왔으니, 올해로 45년째가 되나?”

김 전 대통령은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뀔 만한 긴 세월을 한곳에 터를 잡아 살아왔다. 1993년 2월부터 98년 2월까지 청와대에서 생활한 5년을 빼면 꼭 40년을 상도동에서 보낸 셈이다. 집념과 끈기의 대명사 YS의 독특한 성정은 45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상도동 사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상도동 사저 곳곳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 진열하지 못한 액자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YS와 교분이 있는 하버드대 포겔 교수는 상도동 사저를 방문했을 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세계 각국의 여러 지도자 집을 가봤는데, 이렇게 작은 집은 처음 본다.”

101평(333.9㎡)에 불과한 대지에 작은 정원과 주차장을 빼면 실제 건물이 들어선 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거실 바로 옆에 딸린 서재는 책장에 꽂지 못한 책과 액자들, 기념품들이 의자와 방바닥에 빼곡하게 쌓여 전체 공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서재 의자에 앉으며 YS는 “우리 집이 너무 커서 말이야”라며 특유의 유머 섞인 농을 던졌다.

모두 9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 역시 비좁기는 마찬가지였다. 4인용 식탁이 어울릴법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도록 긴 식탁을 놓다보니 좁은 공간이 더 비좁아 보였다.

매년 신년휘호를 써서 지인들에게 연하장으로 보내온 YS가 글씨를 쓰는 공간도 식당이다. 테이블보를 걷어내고 그 위에 종이를 펴고 신년휘호를 쓴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치고는 소탈하다 못해 어딘지 궁색하다는 느낌마저 줬다.

상도동 거실에서 바라다본 작은 정원에는 한가운데에 단풍나무가 서 있고, 양옆으로 소나무가 운치 있게 자리 잡고 있었다.

단풍나무는 상도동으로 이사 오면서 당시 동료였던 김상흠 국회의원의 구기동 집에 있던 것을 옮겨 심었다고 했다. 자그마했던 단풍나무는 45년 동안 묵묵히 자라 멋드러진 정원수가 됐고, 상도동으로 이사 온 기념으로 심었다는 소나무 두 그루 역시 가지를 길게 뻗어 기품 있는 한국의 전통 소나무 자태를 뽐냈다.

YS가 처음 상도동에 자리 잡았던 1960년대 중반,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40년 넘는 세월을 거치며 성장을 거듭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도동 YS 사저 앞마당에 심어진 세 그루 나무도 굵고 튼튼하게 자랐다. 상도동 정원수가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을 상징하는 듯했다.

나무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YS도 정치적 성장을 거듭했다. YS는 상도동에 살면서 최다선(9선) 의원을 기록했고, 대통령까지 역임했다. YS의 상도동 사저는 한국 민주화의 산 증인이자 역사의 현장으로 같은 자리에서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소박한 역사의 현장 ‘상도동’
1 상도동에 이사 오며 옮겨 심은 단풍나무는 멋지게 자라 훌륭한 정원수가 됐다.

2 서재에는 공간이 부족해 꽂아놓지 못한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3 식당 한 켠에는 손명순 여사와 연애시절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신동아 2009년 12월 호

글│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사진│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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