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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

“남북철도연결 2007년처럼 용두사미 안 되길”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

  • ● 당국자들도 철도연결 국민 모금 앞장서야
    ●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태극기 휘날려
    ● ‘기부 삶’은 양어머니인 황녀 이문용 여사 가르침
권송성 아태산업개발㈜ 회장
2018년 12월 26일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동서해선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열렸다. 남북 당국자뿐 아니라 민간인 몇 명이 ‘국민 대표’로 행사에 참여했다. 권송성(78) 아태산업개발 회장도 포함됐다. 권 회장을 만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8년 12월 20일쯤 코레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나냐’고 물었더니 기부를 많이 한 분이어서 선정했다고 하더라.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게 돼 기뻤다.”

권 회장은 2000년, 2001년, 2018년, 남북 간에 철도 연결이 합의될 때마다 남북협력기금에 1000만 원씩 쾌척했다. 착공식 참석은 그의 남다른 남북 철도 연결 염원이 인정받은 셈이다.


106년간의 아픔

그는 지난해 5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 민족 분단의 상징인 단절된 철도를 복구한다고 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마침 직전에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이 있어 작은 성의이지만 경의선 철도를 복구하는 데 써달라고 통일부에 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철도 연결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남북 철도 연결은 그동안 끊어진 우리 민족이 다시 이어지길 기원하는 우리 국민의 염원을 대변한다. 우리가 앞장서서 철도 연결을 완공시키면 북한 민족도 ‘남한 민족이 정말 통일을 원하고,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지난 106년간을 아픔 속에서 살아왔다. 일제 치하 36년간 나라 없이 살았고, 광복 후 3년여 동안 잠깐 한민족으로 살다 6·25전쟁으로 인해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고, 이후 70여 년간 민족분단으로 서로 갈등하며 살아왔다. 이제 우리 민족이 갈등과 아픔을 서로 보듬고 하나가 돼 잘사는 민족, 부강한 민족을 만들어야 후손들이 잘살 수 있다.”

- 구체적인 바람이 있다면.

“생전에 남북 철도·도로가 원만하게 연결되고 현대화돼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그날이 꼭 오도록 기도하겠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개성에 갈 때는 꿈에 부풀어 갔는데 올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2007년에도 성대하게 행사를 치렀지만 용두사미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는 이어서 강조했다.

“남북 철도 연결은 정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떠나 온 국민, 온 민족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이뤄질 수 있다. 내가 통일부에 남북 철도 연결 기금을 낸 첫 번째 사람이었고, 이후에 성금을 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착공식 행사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모인 분들이 모두 즐거워하는데, 오늘의 우리뿐 아니라 온 민족이 다 같이 웃으면 좋겠다. 여기 모인 당국자들부터 만족하지 말고 남으로 돌아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도 받침목 하나, 모래 한줌이라도 기부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자’고.”


목에 태극기 걸고

권송성 회장은 북판 판문역에서 태극기를 목에 걸었다.

권송성 회장은 북판 판문역에서 태극기를 목에 걸었다.

- 북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가.

“2007년 열린 문산-봉동 간 화물열차 개통식에도 참가했다. 그때는 개성역에서 열렸다. 약 12년 만에 다시 북한을 가본 셈인데, 풍경은 그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집도 사람들 모습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북한 민족의 삶이 여전히 풍족하지 않다는 게 피부로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는 행사 때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한복에 두루마기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목에 태극기를 걸고 찍은 사진도 있다.

-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2007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다 양복을 입었지만 나는 한복을 입고 갔다. 민족의 큰 행사였고, 남북이 한 민족이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

- 목에 태극기를 건 것은 서울역에서 한 건가.

“아니다. 행사를 마치고 판문역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전 기차 앞에서 찍었다.”

-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 땅에서 태극기가 휘날린 건데, 제지당하지 않았나.

“남한 관계자도, 북한 관계자도 못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중요한 행사에 참석할 때는 꼭 태극기를 목에 건다.”

권 회장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났을 때, 특전사 부사관이 선행을 하다 숨졌을 때, 장병들이 서북도서에서 숨졌을 때에도 크고 작은 기부를 했다. 2015년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골드 어워드도 수상했다.


미국 정부로부터도 상 받아

“우리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군인들, 좋은 일을 하다가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위로라도 해주려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금을 내곤 했다. 골드 어워드를 수상한 건,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회갑연에 들어온 돈 전액을 미국 정부에 기부해서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 때도 사비를 털어 성금을 보냈다. 6·25전쟁 때 많은 미국 국민이 희생했다.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고 사랑해준 고마운 나라다. 그런 나라가 아픔을 겪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그걸 미국 정부에서 좋게 생각한 모양이다.”

- 기부하는 게 쉽지 않은데, 꾸준히 기부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렸을 때 몸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약하고 불쌍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면서 살아가겠다’고 기도했다. 하나님과 약속을 했으니 당연히 실천해야 한다. 고종황제의 딸인 이문용 여사를 양어머니로 보살피며 살았다. 양어머니께서는 항시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라,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선하게 살아라, 사심을 갖지 말고 베풀고 살아라’고 가르쳤다. 그 말씀을 따르고 있다.”

권 회장은 시설종합관리와 근로자파견 전문기업인 아태산업개발 회장과 동부전선 고문을 맡고 있다. 국보디자인 회장, 대우건설 고문, 현대건설 고문 등을 역임한 한국건설업계의 전설이다. 그렇다고 남다르게 재산이 많은 것은 아니다. 콩 한쪽도 나누는 마음으로 평생 번 것의 절반 이상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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