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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나무와 두 여인’ ‘우물가’

박수근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나무와 두 여인’ ‘우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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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관심

그림 한가운데는 키 큰 고목이 서 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함지를 인 여인과 아이를 업은 여인이 있습니다. 함지로 상징되는 ‘노동’과 아이로 상징되는 ‘육아’는 이 땅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감당해야 했던 일들입니다.
박수근의 작품들에 주로 나오는 이들은 여성이나 어린이들입니다. 여성과 어린이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합니다. 이들을 즐겨 그렸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박수근의 관심과 애정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자각, 그리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한 실천이 1980년대 민주화 시대 이후에야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박수근의 문제의식은 선진적입니다.
이 그림의 가운데 놓인 나목은 쓸쓸해 보이지만 참으로 당당합니다. 박수근은 나목을 즐겨 그렸는데, 그가 그린 나목은 박수근의 젊은 시절을 알고 지낸 소설가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의 제목과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림 속 나무를 보며 ‘이 나목은 작가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비록 지금은 헐벗었지만 봄이 오면 나뭇잎이 풍성해지고 꽃이 향기로워질 나목, 평생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화가로서 묵묵히 독자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 박수근 자신의 삶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을 그릴지는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화가가 다루는 주제에는 삶과 사회에 대한 화가의 마음과 인식이 집약돼 있는 법이지요. 박수근 작품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을 처음 볼 때는 마음이 다소 쓸쓸해집니다. 그 쓸쓸한 느낌은 그의 소박한 삶과 중첩되면서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이 가졌을 외로움과 고단함으로 번져갑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주는 감동은 외로움과 고단함을 느끼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은 신기하게도 큰 위로를 줍니다. 마치 지친 현대 생활 속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만 생각해도 위로가 되고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듯이 박수근의 그림에는 우리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위로와 힘이 있습니다.
박수근이 여성과 어린이들을 즐겨 그렸다고 해서 그가 약자들의 고통스러운 처지만을 의도적으로 부각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의도적인 계몽을 넘어 마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박수근 작품의 미덕이 있습니다.



현실을 견뎌내려는 자존감

‘나무와 두 여인’ ‘우물가’

‘우물가’

‘우물가’(1953)는 박수근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시골의 우물 주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초가집 앞에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 주변에는 두 여인과 한 아이가 있고, 빨래가 널려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닭 두 마리가 놀고 있습니다. 소박하면서도 평화로운, 그러나 가난해 보이는 시골 풍경입니다. 우물가는 여성들이 삶의 고단함을 나누는, 그 고단함을 이야기로 푸는 정겨운 장소입니다.
‘우물가’는 한국적 전원 풍경을 담았습니다. 시골에서 산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며, 그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박수근은 고향의 모습을, 한국적 풍경을,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선함과 순수함을 이렇듯 간결하게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네 무의식 속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포근한 어머니 품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작품들을 보노라면 박수근이 왜 우리 현대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박수근의 작품에 담긴 고향의 풍경은 최근 들어 크게 바뀌었습니다. 산업화가 이뤄지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농촌이든 도시든 그 모습이 적잖이 변화했습니다. 함지를 머리에 인 여인이나 한갓진 우물가를 주변에서 더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이 표현하는 것은 과거의 시간이지 현재의 시간은 아닙니다. 어쩌면 제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박수근의 그림 속 풍경은 참으로 낯설기 그지없는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박수근의 작품에 담긴 시간이 지나간 과거라 하더라도, 그가 전달하려 한 인간의 선함에 대한 존중,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현실을 쓸쓸하지만 당당히 견뎌내려고 하는 자존감은 시간을 초월한 예술적 감동을 여전히 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수근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입니다. 휴전선이 지나가는 양구는 태백산맥 서쪽에 놓인, 인제와 화천 사이에 놓인 고장입니다. 양구에 가면 박수근미술관이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가보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 중 하나입니다. 시골에 연고가 없는 서울토박이인 저는 어릴 적 시골 친척집에 가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어른이 됐는데도 박수근의 그림 속 고향을 꼭 가보고 싶은 것을 보니 그의 그림에는 어린 시절로 회귀시키는 마법이 있나봅니다.



‘나무와 두 여인’ ‘우물가’


박 상 희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신동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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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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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두 여인’ ‘우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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