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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에 돌입했다”

조선로동당 창건 55돌 참관한 한완상 전통일부총리

  • 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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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몇 개나 딸 것으로 보십니까.

“한 열 개쯤 따지 않을까. 태권도, 양궁이 강하고, 레슬링, 배드민턴, 유도도 따지 않겠어?”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실 종목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국민들 사기가 올라가잖아. 나는 그런 종목에 관심이 많아. 옛날엔 권투가 강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 요즘엔 잘 못하니까 안 보게 돼.”

―얼마 전 중국에 다녀오셨는데, 중국측이 갑자기 장쩌민 주석과의 면담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인데….



“내가 출국하기 전에 중국 쪽에서 양해를 구한 사항이야. 애초에 내가 요청한 게 아니라 중국 쪽에서 만나자고 한 거야. 특별한 일이 있어서 약속했던 것도 아니고 과거 한·중수교 당사자의 인연으로 만나기로 했던 거야. 일정이 맞지 않으면 취소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사실 나는 한중포럼 기조연설도 있었고, 여러 스케줄 중에서 장쩌민 주석과의 면담이 들어 있었을 뿐이야.”

―중국 산둥성에 있는 노씨 시조묘에도 참배하셨다면서요.

“중국에 사는 노씨들이 내가 간다는 걸 알고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해왔어. 예전에 내가 국가원수로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양상쿤 당시 국가주석한테 ‘우리 노씨의 뿌리가 산둥성에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어려울 것 같고 퇴임한 뒤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그걸 흘려 듣지 않고 묘를 다 찾고 비석까지 만들어줬어. 이번에 내가 가겠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중국 노씨들이 모여 ‘세계 노씨대회’를 열었어. 노씨가 중국 외에 남북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총 3200만명이 산다는 거야. 이번에 각국 대표들이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내가 격려사를 했어.”

―노씨 문중에서 왕위나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은 노전대통령이 처음인가요.

“아냐. 황제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8명이나 된다구. 노씨는 중국 신봉씨가 시조이고 강씨의 11대 자손인 강태공에서 노씨 성이 떨어져 나왔거든. 그때 나라와 토지를 받고 노씨가 별도로 생긴 거지. 시조부터 강태공까지 7명의 황제가 나왔으니까 내가 8번째인 셈이지.”

다시 분위기가 잡혔다. 노전대통령은 중국에서 보낸 일정을 흥미진진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중포럼에서 연설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이 순간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또다시 2년 전 인터뷰 때의 질문을 떠올렸다.

―2년 전 인터뷰에서 나중에라도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그럴 때가 오겠나? 지금은 전직 대통령들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 같아. 우리 국민성이 그래. 전직 대통령이 뭐라 얘기하면 좋아하지 않아.”

―9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지난 총선까지 전직 대통령들을 ‘가마솥’에 빗대어 표현한 유머가 유행했습니다. ‘가마솥’ 얘기를 아십니까. 그에 따르면 노전대통령은 누룽지를….

“몰라,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IMF 직후부터 떠돌았던 우스갯 소리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마솥에 밥을 짓고, 전두환 대통령이 밥을 다 먹고, 노태우 대통령이 누룽지를 긁어먹고, 김영삼 대통령은 가마솥을 잃어버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 솥을 찾아다닌다’는 얘기다.)

노전대통령은 테니스 코트에 시선을 박아놓고 있었다. 때마침 김옥숙씨가 멋진 플레이를 연달아 성공시켰다. 백핸드 발리가 정확하게 상대 코트에 꽂히는 순간 노전대통령은 ‘좋아’라고 소리쳤다.

―골프는 6공 때부터 대중화된 것 같습니다. 재임 시절 많은 골프장을 허가해주셨지요?

“골프 대중화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골프장에 다녀온 사람은 알아.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나는 재임 시절 교통부가 관장하고 있던 골프장 관련 업무를 체육부로 넘겨서 적극적으로 육성했어.”

―하지만 아직도 국민들 사이에는 골프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상류층의 운동이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런 말들이 많았지.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박세리 때문에 완전히 대중 스포츠가 됐어. 일반인이 즐기기엔 아직 좀 힘든 게 사실이지. 돈도 많이 들고…. 앞으로 퍼블릭 코스를 많이 개발하면 나아지겠지.”

“북은 과도기 체제로 간다”

노전대통령은 정말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방금 전의 썰렁한 분위기가 가시고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테니스 코트의 게임 스코어가 인터뷰의 종착역을 알리고 있었다. 수행비서도 ‘빨리 끝내라’는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88년 7·7선언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남북한이 그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사람들이 7·7선언의 중요성을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건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야. 그때부터 북한과의 교류를 민족 내부의 거래로 인정한 거잖아. 남북한이 그렇게 똑바로 나가기로 했는데….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졌잖아. 돌이켜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어. 사건이 벌어지면 냉각기가 오고 그러다가 잘해보자고 만났다가 다시 깨지고 그런 일을 수없이 되풀이해왔잖아.”

―아주 근원적인 질문이 될 것 같은데, 북한이 변화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한도 이젠 믿고 기댈 곳이 없는 거야. 배경이 다 없어지고 말았잖아. 동구권이 망하고 소련, 중국도 다 무너져버렸잖아. 소련은 여러 가지 문제로 벌써 붕괴됐고, 중국도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이념만 그렇고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로 변했거든. 그러니까 북한은 이제 뒷받침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북한이 당분간은 체제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과도기 체제로 갈 수밖에 없어. 이건 남북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야. 지금 잘못 판단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는 거야. 그래서 양보하고 이해하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거지.”

―6·15 합의문에는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들어가 있던 ‘불가침 조항’이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도 그 문제를 김대통령에게 따졌어.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그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것 같아. 마지막에 합의문을 만드는 과정에 빠졌을 뿐이지 정상끼리는 다 얘기했어. 정상회담을 한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 평화보다 우선하는 문제가 어딨어? 그것을 구축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래서 91년 기본합의서에서도 그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 거야. 이번엔 이북에서 여러 문제로 그것을 성문화하고 싶지 않은 뜻을 내비친 것 같아. 그런 냄새가 풍겨.”

노전대통령은 “이제 그만 하자”면서 비서진에게 “기자 양반 전송해드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코트에서는 게임이 진행중이다. 기자는 비서진에게 “빨리 끝내겠다”고 말한 뒤 다시 노전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전대통령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고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정치인들은 골프장에서 협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전대통령도 골프장에서 많은 정치인을 만나셨는데….

“골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릴랙스’되거든. 그런 데서 창의력이 나오고 머리 회전에 도움이 돼. 미국의 유명한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요강을 보니까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 골프를 못 하면 취직도 못 하는 거야.”

“정치 기사는 안보려고 해”

―90년 3당합당 때도 골프가 도움이 됐습니까.

“릴랙스하는 데 도움이 됐지.”

―요즘 신문은 자주 읽으십니까.

“대충은 다 봐. 주로 보는 기사가 예전과는 틀리지만…. 이젠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부분을 열심히 읽어. 정치는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해. 스포츠는 많이 봐. 재미있잖아.”

―정치기사를 읽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까.

“글쎄, 그런 이유도 있겠지.”

코트에서 게임이 끝났다. 김옥숙씨가 땀을 흘리고 벤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전대통령은 라켓을 들고 일어나 어깨를 돌렸다. 그러자 수행비서가 다가와 “그만 인터뷰를 끝내시죠”라고 말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묻겠다”고 하자 노전대통령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된 뒤 군의 사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점에 군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군대, 문제가 있지. 군대는…. 이제 그만하자구. 내가 이런저런 얘기해봐야 국민들이 좋아하지도 않아. 그런데 뭐하려고 자꾸 나한테 물어. 이제 테니스나 쳐야겠어. 테니스장에 왔으면 체육 얘기나 물어야지. 엉뚱한 얘기를 하고 그래. 오늘은 그만하고 다른 얘기는 나중에 조용한 자리에서 하자구.”

노전대통령은 ‘군대’ 얘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말문을 닫았다. 그는 기자의 취재수첩을 잠시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로 걸어갔다.

노전대통령은 라켓으로 공을 두어 번 튀겨본 뒤 수행비서를 불렀다. “기자 양반 전송해드려.” 그리고는 기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테니스 배우도록 해.” 기자가 답할 틈도 없이 노전대통령은 게임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자가 노전대통령 부부에게 포즈를 요청했다. 그러자 김옥숙씨는 ‘옷이 땀에 젖어서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진기자가 거듭 청하자 김옥숙씨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촬영에 응했다. 노전대통령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노전대통령측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동아’가 비공식 인터뷰를 기사화한다는 얘기를 듣고 노전대통령은 ‘젊은 기자에게 유도당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한편 노전대통령측은 2차 서면 인터뷰 내용을 보내온 뒤 “취재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꼭 밝혀달라”고 요청해왔다.

노전대통령의 아지트 양재 코트를 찾는 로열패밀리

양재동 테니스클럽은 지난 91년 최부길 전국가대표 감독이 서울시로부터 공원부지 3000평을 빌려 지었다.

당시 이곳은 국내 최초의 US오픈용 하드코트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최근 US오픈 16강에 진출한 이형택도 이곳에서 적응훈련을 실시했다.

양재 코트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유명인사가 많다. 그래서 이곳을 ‘로열패밀리 코트’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노태우 전대통령 부부는 퇴임 직후부터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 최부길 감독은 국가대표 시절부터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테니스를 가르친 인연이 있다.

이 밖에 정계에서는 민관식 전국회의장, 박근혜 정몽준 의원, 금진호 강봉균 전장관, 임창열 경기지사 등이 양재 코트의 멤버들이며, 재계의 구평회 LG그룹 고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영화배우 신현준 최진실 안성기씨, 가수 김건모 심수봉 윤종신씨 등도 이곳을 찾았다. 양재 코트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명사 테니스대회’가 열리는데 참가 자격은 차관급 이상(관계), 학장 이상(학계), 경영자(재계) 등이라고 한다.

양재 테니스클럽의 코치 중에는 86서울아시안게임 4관왕의 주역 유진선이 있다. 그는 최부길 감독과 ‘주니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양재 실내 코트의 이용료는 1시간에 3만5000원, 주말은 4만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전화 579-7277~9)


신동아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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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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