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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DJ의 리베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hans@donga.com

‘DJ의 리베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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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한길 장관 인터뷰는 예정됐던 것이 아니었다. 9월 말경 공보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국정감사가 끝날 때까지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답을 들었다. 김장관의 조심성으로 미뤄볼 때 장관에 취임한 지 열흘밖에 안 된 시점에 인터뷰에 나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접 취재에 만족하기로 하고 김장관 주변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이 김장관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가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다른 경로로 김장관에게 직접 면담을 청했다. 그는 “나 스스로도 나를 제대로 되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그 얘기를 써준다니 어떤 기사가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며 시간을 내줬다. 다른 사람 말과 소문만 듣고 행여 부정확하거나 근거없이 비우호적인 기사를 쓸까봐 꽤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결국 이 인터뷰는 김장관의 신중함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가 바로 그 신중함 때문에 다시 성사된 셈이다.

-업무 파악은 끝났습니까. 둘러보니 딱히 ‘아, 이것이 내가 할 일이구나’ 싶은 게 있던가요?

“아직 막연합니다. 다만 초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모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일하고 먹고 자는 것 이상의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걸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문화관광부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 모두의 ‘내 속의 보물 찾기’를 돕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건 엄청나게 보람있는 일입니다. ‘어떻게?’에 대해서는 생각중입니다. 문광부가 다루는 분야가 워낙 방대해 많은 공부가 필요한데, 우선 현안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말은 뒤에 오는 게 순서가 맞을 것 같습니다. 국감이 끝나면 생각을 정리해 내놓겠습니다.”

-그 일에 자신이 적임자라고 봅니까. 전문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문광부는 문화 체육 관광 청소년 종교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들 분야에 두루 정통한 전문가는 드물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면서 정책을 다뤄가면 어지간히 해내지 않겠나 하는 자신감은 있어요.

개인적인 얘깁니다만, 지금까지 저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계속 생소한 분야를 넘나들며 살아왔습니다. 그랬어도 어디에 가서든 크게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 새로운 일을 맡으면 새로운 열정이 자극됩니다. 그래서 새롭게 자세를 다잡으면서 덤비고 버텼습니다. 청와대에 갈 때도 그랬어요.”

내 일 방기한 적 없다

-정치부 기자들이 ‘김한길 그 사람, 늘 뭔가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결과물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 같습니다.

“그렇게 보실 수 있죠. 저는 제 자신이 돋보이는 부분에는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치권에 들어온 후 계속 대통령과 밀접한 자리를 돌았습니다. 그런 자리에선 대통령을 드러나게 하는 게 중요하지, 그 과정에 저를 드러나게 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가령 92년엔가 ‘뉴DJ플랜’이라고 해서 대통령께 상의 윗주머니에 빛깔 고운 포켓치프를 꽂고 지팡이를 들고 미소짓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런 이미지 메이킹을 한 사람이 밖에 나가서 ‘저것은 내 작품’이라고 떠들어보세요. 그 후엔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하고 다니면 아주 우스워집니다. ‘모시는 분을 통해 나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렇다고 제 일을 방기하진 않았습니다. 정책기획수석은 청와대 수석 가운데 선임수석입니다. 부(副)비서실장인 셈이지요. 그래서 분야에 상관없이 참견하고 건의할 수 있는 자리예요. 제 의견과 건의가 다 옳은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일에 소홀했던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통령은 아시는 게 많을 뿐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분입니다. 그런 분을 설득하려면 그분보다 몇배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해야 합니다. 말을 쉽게 던지지 않되 자신있게 말씀 드리려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야 해요. 대통령은 무슨 말씀을 올리면 너무 잘 받아주시기 때문에 더욱 말을 아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대통령께 꼭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 말씀 드렸습니다. 제 신상을 생각해서 말을 아낀 적은 없어요.”

-대통령이 누구 얘기나 다 그렇게 수용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DJ 고집 꺾을 수 있는 사람은 김한길뿐’이라는 말도 들리더군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마 97년 대선 준비할 때 절 좀 이쁘게 보셨던 것 같아요. 그때 후보토론회를 57회나 했는데, 거의 매주 한두 번씩 했습니다. 그 기간에 대통령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죠. 제가 방송대책팀장이어서 대통령은 아무리 하기 싫은 얘기라도 저와는 해야 했습니다. 가장 적대적인 토론자가 던지는 최악의 질문까지 예상해서 답을 준비해야 했거든요. 그러니 대통령도 ‘저 친구가 무슨 얘기를 해도 받아들여야 된다’는 식으로, 저를 위한 얼마간의 ‘공간’을 허락하셨던 듯합니다.”

‘통합과 조율’에 관심

-적(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출신지역, 학교, 계파 등 어느 모로 보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은 없는데, 뒤늦게 영입돼 승승장구하면서도 ‘발목’ 잡히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대인관계가 매끄러운 비결이 있습니까?

“저는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잘 못합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어요. 사람들한테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처세술도 모릅니다. 친화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그걸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대인관계에 딱히 활용할 만한 게 없어요. 다만 특정 계파에 끼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늘 대통령 주변에 있었으니 다른 사람 옆에 가까이 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또한 누구에게나 내 생각을 정리해서 분명하게 말했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는 그걸 통해 나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저를 덜 싫어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5년이 다 돼 갑니다. 정치가 재미있습니까. 선거판과 청와대를 드나드느라 의정활동이 자주 중단됐는데, 훗날 다시 국회로 돌아가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습니까?

“정치하는 게 보람있어요. 더러 ‘정책통’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사회 전반을 챙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의원들 중에는 ‘전공’이 확실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저는 후자입니다. 국회에 있을 때 교육위, 재경위, 문화관광위, 국방위 등 4개 상임위를 제가 원해서 돌았어요. 사회 전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발전단계를 보면 어느 시기까지는 전문성을 요구하다가 그 단계가 지나면 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시기가 오더군요. 얼마 전까지 아주 세분됐던 대학 학과도 요즘은 벽을 허물고 통합되는 추세잖아요. 미국에서 빈손으로 덜렁덜렁 돌아온 저를 방송에서 부른 것도 여기저기 기웃거려본 놈이 필요했기 때문일 겁니다.

정치에서도 전체를 보면서 파악하고 통합하고 조율하는 일이 의미있다고 봅니다. 정책수석 자리도 각 비서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조율하는 게 주업이거든요. 나중에 다시 국회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때도 제가 해보지 않은 분야를 맡고 싶습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질문이지만, 김장관에 대한 거의 유일한 구설이니까 물어보겠습니다. 부인에게 손찌검을 한 일이 있습니까?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튼 그런 소문은 저도 들었습니다. 청와대에 있을 때 보고가 올라왔기에 비서실 직원들과 같이 보면서 웃어 넘겼지요.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아내와 저는 지금껏 심각한 갈등을 빚은 적도 없고 부부싸움도 거의 안해봤어요. 더구나 누굴 두들겨패서 다쳤다느니 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부부가 잘 안됐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죠? 당시 한 스포츠신문이 우리 결혼소식을 특종했는데, 그후 다른 신문사 기자들이 우리집 앞에 진을 치고 몇 달동안 우릴 못살게 했어요(그때 김장관은 기자들에게 ‘우리가 이혼하게 되면 특별히 당신들에게 먼저 알려드리겠소’라고 약속했다). 아마 우리를 좀 별렀던 것 같아요. 또 그때 아내가 몇 편의 CF를 찍고 있었는데, 그게 아주 활동적으로 뛰어내리고 달리고 하는 내용이었어요(맞아서 다친 여자가 어떻게 그런 광고를 찍을 수 있겠느냐, 혹은 그런 광고를 찍으면서 가벼운 상처를 입거나 몸이 불편해진 게 와전됐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 듯). 또한 저더러 아내가 일하는 것에 반대해서 싸웠다고 했다는데,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의 일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세종로 문화관광부 청사를 나와 광화문 사거리에 채 못 미쳤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장관의 비서관이었다. 김장관이 인터뷰에서 한 말 가운데 단어 두 개를 이러저러하게 수정해달라고 한다는 얘기였다. 정말 놀랍도록 신중한 사람이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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