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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증언

5인의 특공조, 9·9절… 심야에 적비행장 날리다

죽음을 넘나든 北派공작원의 ‘30년 묻어둔 비사’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wpark@donga.com

5인의 특공조, 9·9절… 심야에 적비행장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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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본격적인 임무가 하달되는 겁니까?

“그렇지. 우리 사령부 본사에서 납치임무가 떨어졌지. ▼▼리 ×××GP에 들어가서 납치를 하라는 거야. GP 근처에 텐트를 쳐놓고 낮에는 자고 밤에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지나서 들어가는 거죠. 걔네들도 잠복조가 있거든요. 우리가 낮에 포대경으로 보면 잠복하고 나가는 것이 보여요. 그러면 그 자리에 가서 크래머 같은 것 깔아놓고 밤에 잠입하는 거야. 그러면 걔들은 안 나와. 그렇게 숨바꼭질 하면서 한 2개월이 지난 거야. 납치는 해야겠는데 ‘물건’은 잘 나타나지 않고, 우리가 여름에 들어갔는데 가을이 다 된 거야.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본사에서 다시 임무가 떨어졌어.

북방한계선을 넘어서 12㎞ 정도만 가면 P비행장이 나와. 그 앞에 새로 벙커를 지은 게 있는데 그걸 폭파하고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다시 새 목적지까지 간 겁니까? 진입해가는 데 위험도 많았겠죠?

“물론 적의 방해장치가 있죠. 하지만 그런 건 다 알아요. 낮에 우리 GP에서 포대경으로 우리가 들어갈 루트를 개척한다고. 개척한 다음에 ‘큰선생’이 있는데 그 선생이 지뢰 지대가 어디고 녹색 장애물 지대가 어디고, 모래장물 지대가 어디고 전기 철조망 장애가 어딘지 다 알아요. 그리고 우리가 그 교육을 6개월 이상 받았으니까 다 지나가지. 지뢰지대를 피해서 지나가고, 녹색 장애물 지대를 피해서 지나가고, 모래 장애물 지대도 발자국 흔적 안 나게 지나가고 전기철조망 장애 지대도, 전기가 흐를 때는 5만 볼트나 흐르는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흐르는지 다 알아. 이걸 안 걸리게 지나가는 거야.



그리고 쟤네들(북한군)은 돈이 없으니까 천연적인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놨어요. 울타리 장애물 같은 것도 돌멩이를 다 쌓아놓는다고. 어두워서 안 보이니까 건들기만 하면 와르르 다 무너지게 쌓아두는 거지. 그러면 아침에 걔네들이 순찰 돌 때 무너졌으면 ‘간첩이 지나갔구나’ 하고 수색을 한다고. 그런 교육을 받으니까 우리는 완전 전문가가 된 거야. 그래 가지고 남방한계선 철조망을 딱 열고 들어갈 때는 ‘이게 그건가 보다’ 하고 겁이 났는데 한 번 들어가고 두 번 들어가고 한 2개월을 들락날락하니까 악밖에 안 남는 거야. 걸리기만 걸려라, 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 이 정도로 악만 남게 되지. 그런 교육을 다 받았으니까.”

─목표지점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걔네들이 내무반에서 다 자더라고. 폭파는 식은죽 먹기야. 먼저 벙커에 들어가서 폭파시키기 위해 디트리트 6기를 갖다 깔았지. 어디다 장착을 하면 완파가 된다는 걸 다 배웠거든. 만약을 대비해서 내무반에도 크래머로 해서 깔아놓고 전화기는 팀장이 쥐고 있는 거야. 벙커하고 내무반에 동시에 터지게 준비를 하고 있었지. 우리가 5명인데 1번은 체포조고 2번도 체포조고 3번은 팀장이고 4번은 난데, 팀장을 내가 보호하고 팀장이 폭약 설치하고, 5번은 우리 동기인데 후미를 담당했어요. 준비가 다 끝난 다음 팀장이 쥐고 있던 전화기를 누르면 꽝하고 터지는 거야. 벙커가 무너짐과 동시에 내무반에서 크래머 6발이 터졌어요. 완전 전멸시키고 나온 거지.”

휴지조각된 생활보장 계약서

―터질 때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까?

“거기서 한 50m도 안 될 거예요. 탄피들이 날라올 정도니까. 벙커 안에 교통호가 다 돼 있다고. 우리는 그 교통호에 숨어서 확인하고 각자 철수하죠. 먼저 나온 사람도 있고 늦게 나온 사람도 있고.”

―폭발이 있고 나면 북한군이 수색에 나설 것 아닙니까?

“양쪽에서 자동화기가 쏟아지지. 낮에는 추격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밤에는 걔네들이나 우리나 추격을 못해. 쏘기만 하지 추격을 못해요. 추격했다간 저희들이 죽거든. 그러니까 속전속결로 하는 거야. 우리는 지상 단기공작이기 때문에 북방한계선 넘어서 멀리까지는 안 가. 멀어봤자 30㎞야. 근거리에서 걔네들 교란시키고 이러는 거지.”

―철수를 마친 것은 언제 쯤입니까?

“9·9절날 들어갔다가 9월10일날 새벽 2~3시경 나왔어요. 들어갈 때는 하루 이틀 걸려도 나올 때는 날라다니니깐 1~2시간이면 나와버리거든. 나오니까 동이 트는데 OP 애들 GP 애들이 문 다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더라고. 사령부에서 나와 확인하고 있고.”

─임무 마치고 그 다음엔 어떤 생활을 했나요?

“나와가지고 안가에서 보안교육을 한 2개월 받았어요 입 벌리지 마라, 헛소리하지 마라, 2개월 동안 교육받고, 열흘 동안 포상휴가 주더라고. 그때는 처음으로 군복을 주더라고. 우리는 그때까지 하등사복 전사복을 입고 지내고 위장복을 입고 지냈거든. 그리고 신분증을 하나 해주는데 육군 첩보공작대 5★★ 지상대 이렇게 써 있었어. 그것만 보여주면 어디든지 통과됐지.”

―그때가 입소 후 처음으로 휴가 나온 겁니까?

그렇죠. 70년도 1월달인가 2월달에 나왔을 거야 아마. 한겨울이었니까.”

―첫 휴가 나와서 가족들 만나니까 뭐라고들 하던가요?

“가족들은 내가 어디서 뭘했는지 잘 모르지.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고, 생활비 같은 것 누가 안 보냈느냐고. 근데 그런 것 없었어, 아무것도 없었대. 되레 그 무렵 군입대하라고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어.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 신체검사를 내가 뭐하러 하냐, 받아 갖고 나온 신분증을 가지고 육군첩보대 5★★ 지상대 대장한테 갔지. 휴가 갔더니 이런 것이 있습디다 라고.

그런데 얼마 뒤 또 신체검사 통지서가 나왔어. 나는 안 들어가고 버텼어요.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다는 것은 해줘야지 들어갈 게 아니냐’. 보상도 안 해주고, 가족들한테 생활비도 안 주고 아무 약속도 안 지켜주는데 내가 왜 들어가냐 이거지.”

─처음에 북파공작으로 들어갈 때는 가족들에게 그런 걸 다 해준다는 약속을 받고 들어갔어요?

“그럼요.”

―서면으로?

“다 썼지. 도장까지 찍은 계약서를 썼다니깐. 생활비도 보내주기로 하고.”

―그럼 계약위반 아니냐고 따졌어요?

“그렇게까지는 얘기하지 못하고, 그냥 부대에 안 들어가고 한 20일간 서울에 쳐박혀 있었어. 신촌 이대입구라든지, 내가 옛날에 놀던 창신동에 가서 설쳤어. 한 친구가 서울 사령부에서 나와 가지고 계속 나를 따라다니길래 ‘나 안 가’라고 버텼어. 그러니까 잡아가지는 못하고 따라다니면서 나를 설득하더라고.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고 큰일 나니까 들어가자고. 그 친구 집이 후암동인데 거기서 하루밤을 자고 같이 들어갔어.

들어갔더니 이 자들이 나를 안가에 집어넣더라고. 거기서 한 2~3개월 정도 하는 일 없이 어영부영 세월만 보내니까 영등포 양평동으로 키퍼반 교육(조교교육)을 가라 이겁니다. 갔지. 거기서 교육 받으면서 내가 1등을 했어요. 내가 원래 힘이 좋아요. 그 당시 진종채씨가 사령관으로 왔어. 그 양반이 오자마자 내게 1호로 표창장을 줬어. 조교교육을 마치고 5★★부대로 들어가서 ‘돼지’(공작원 피교육생)를 두 명 키웠지. 여럿을 한번에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키워서 내보내고 또 하나를 받아가지고 교육시키고 그랬다고. 산악부터 시작해서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1 대 1 교육을 시키는 거야.”

“잡히면 산채로 껍질 벗긴다, 자폭하라”

―그렇게 키워낸 후배들도 북한에 ‘파견’ 됐나요?

“그럼요. 다 살아서 왔어요. 성공해 가지고 왔어. 수집(적의 서류 등을 훔쳐내는 것) 쪽일 건데,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는 나도 잘 몰라. 그건 비밀이니까.”

―북파 임무 중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게 어떤 겁니까?

“수집이야. 수집은 10명 들어가면 8명은 죽어요. 특공은 5명이 한팀이 돼서 들어가는데 들어가다가 재수가 없어서 발목지뢰를 밟으면 발목이 날아가기도 하지.”

─만약 그런 지뢰를 밟으면 죽었다고 봐야겠네요?

“선생들이 우리한테 그래요. ‘너희들은 올라가서 생포되든지 자수를 하게 되면 죽는다’고. 이북에서 우리를 최고악질로 본다 이겁니다. 세워서 묶어놓고 산 채로 껍데기를 벗긴대요. 그 고통이 어마어마 하니까 올라가다가 유사시에는 자폭하라고 세뇌교육을 받았어요. 영화에서처럼 극약 같은 걸 주는 게 아니라 수류탄 같은 걸로 자폭하라 그러더라고.”

―특공은 가서 타격을 하면 끝이지만 수집은 직접 들어가서 해와야 되니까 어렵겠군요. 요인 납치도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

“납치는 특공 파트가 하는 건데 우리 선배들이 굉장히 크게 했어요. 자랑스러운 선배들이지.”

―소련 대령 납치했다는 그건가요?

“예. 소련 고문관들 전방 시찰 나온 거 납치해오고. 그래 갖고 처음으로 무공훈장이 세 개가 나왔지. 그 선배들한테 배워가지고 그 이듬해 내가 투입된 거지.”

―그 비행장 벙커폭파로 상 받으셨어요?

“상은 못 받았지만, 전 육군 첩보대 내에서 최고실력을 인정받았지. 내 나이가 50이 넘었어도 그건 아직 생생해요. 그 세뇌 속에서 헤매고 살았으니까. 그런 애들이 나뿐만 아니라 엄청 많아. 사회에 적응 못하고 말야. 그러니 사회에 나와 방탕 생활도 하고 그랬어.”

─사회에 나와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죠?

“그때 일했던 친구 중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니까 사시미칼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가정파괴범 짓을 한 경우도 있어. 교도소에서 17년간 썩다가 결국 청송감호소에서 자살했대요. 애들이 그래요, 환상에 사로잡혀 가지고, 거기서 세뇌받으면서 니네는 대한민국 최고다, 니네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빼주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세뇌를 받고 나온 사람들이 할 게 뭐 있겠어. 그 전에도 얘들이 가정환경이 좋은 애들도 아니었고 가진 기술도 없었고, 재건원에 있다 온 애들, 구두 닦다 온 애들, 그런 애들이거든요.”

― 동료들 중에서 작전에 실패한 경우도 있을 것 아닙니까?

“실패한 경우는 모르고, 내 동기 중에 김아무개라고 있는데 걔는 올라가서 자수했어요. 그래 갖고 대남방송도 나와요. ‘김일성 어버이 수령 덕택에 잘 있으니까 너희들 거기서 고생하지 말고 올라와서 자수하라’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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