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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경쟁력의 문화산업 현장 탐방|<3>LA 4대 영화 명문학교

철저한 현장주의로 할리우드 거장을 키운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wpark@donga.com

철저한 현장주의로 할리우드 거장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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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A 학위가 인정되는 교육과정으로는 촬영 감독 편집 제작디자인 극작가 분야에다가 1997년부터는 디지털미디어 분야가 추가됐다. 학풍은 예술이나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재의 주류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페트리카 학장보는 다만 “지난 5년간 독립영화의 흥행은 기존 상업영화에 훌륭한 자극이 되고 있으며 스토리상의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면서 “따라서 AFI는 스토리 전달을 위한 영화교육에 비중을 두고 실험영화나 예술영화 쪽 교재도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AFI는 미국영화자료원으로 출발한 기관답게 방대한 영화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영화·비디오 자료보관센터는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고 광범위한 미국 영상문화 유산을 자료화해 보존하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영화 스크립트부터 모두 비축돼 있다.

이 센터에 가면 로버트 드니로가 직접 쓴 메모,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스토리 보드(그림, 일지 등이 망라된 콘티의 일종) 등 기증받은 전시물들이 영화제작의 생생한 과정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장과 연계된 수업을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것이 촬영기자재 등의 외부지원이다. 예컨대 소니사가 제공한 소니비디오센터가 있기에 AFI는 디지털 편집용 기자재 등을 따로 살 필요가 없다. 나아가 이 밖에도 워너빌딩 MGM빌딩 등 유명 스튜디오들이 빌딩이나 시스템을 기증해준 경우가 많다.

매주 수요일에는 교내극장에서 유명한 감독 시나리오작가 프로듀서 촬영감독 등을 초청, 그들의 작품을 시사한 뒤 학생들과 토론하는 자리를 갖는다. AFI는 영화제작 예술 분야에서 유망한 인재에게 ‘AFI Life Achievement Award’라는 영광스런 상도 수여하고 있다. 또한 AFI는 매년 10월 할리우드에서 ‘AFI 국제영화제’를 여는데 올해 한국에서는 ‘춘향전’이 초청됐다.



AFI는 ‘트윈픽스’ ‘블루벨벳’의 데이비드 린치, ‘붉은 10월’ ‘다이하드 1·3’의 존 맥티어넌, ‘가을의 전설’의 애드워드 즈윅, 그리고 존 애브닛(John Avnet), 킬 프랭클린(Carl Franklin) 등 많은 중견 감독을 배출했다. 촬영감독으로 ‘쉰들러 리스트’ ‘쥐라기공원 Ⅱ’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야누스 카민스키’ ‘딥 임팩트(Deep Impact)’의 미미 리더, 올리버 스톤의 영화 일체를 촬영한 로버트 리처드슨, ‘히트’의 프로듀서 피터 존 블러기 등이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AFI 출신은 ‘비트’ ‘닥터봉’ ‘아름다운 시절’의 김형구 촬영감독(현 국립영상원 교수), ‘퇴마록’의 박현철 촬영감독(현 국립영상원 교수), 박종호 부산동서대(영상매스컴학부)교수, 최명근 상명대 교수 등이 있다. 재학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3명에 불과하고 교포학생이 4명이다. 충무로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현재 AFI에 유학중인 김수진씨는 “이곳에 와서 전문적인 실전공부를 하면서 한국에서 느꼈던 능력의 한계, 특히 여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졸업 후 전세계를 겨냥하는 이곳 할리우드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말했다.

LA 중심에서 북쪽으로 50㎞ 정도 올라가면 한적한 계곡 사이로 칼아트(CalA rts)가 나타난다. 일종의 종합예술대라고 할 수 있는 칼아트는 특히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최강을 자랑한다. 1961년 개교한 칼아트는 현재 여섯 개의 단과대학(School)으로 나누어져 있다. Arts, Dance, Film·Video, Music, Theatre, Critical Studies 등. 이 가운데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는 Film·Video 스쿨에 속해 있다.

애니메이션의 산실- 칼아트

칼아트는 특히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를 실험애니메이션(Experimental Animation)과 인물애니메이션(Character Animation)으로 구분하여 교육하는 것이 특색이다. 인물애니메이션 학과는 애니메이션 전문가가 되기 위한 전반적인 교육프로그램으로 학부과정만 있다. 실험애니메이션 학과는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창조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한다. 실험애니메이션은 학부뿐만 아니라 3년 과정의 대학원도 있다.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3분 이상의 작품을 제작, 교수진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두 학과 사이에는 과거 벽이 존재하는 듯했으나 현재는 장벽이 없어져서 인물애니메이션과에 있는 어느 학생이 실험애니메이션과에 있는 수업을 듣고 싶다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칼아트에서는 흔히 다른 영화학교에서 제작(Production)과로 불리는 학과(영화과·Cinema Production에 해당)를 애니메이션과와 구별하기 위해 라이브액션과(Live Action Film/Video Program)라는 명칭을 쓴다. 하지만 칼아트는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미술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영화 스토리에 대한 감각을 익히도록 스토리 라이팅을 전공 커리큘럼에 넣어놓았다. 자신의 스토리를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영화와 관련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칼아트 애니메이션 과정은 월트 디즈니사의 투자에 의해, 디즈니사의 직업연수기관격으로 설치됐던 까닭에 초기에는 예술이나 학문보다는 영화업계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는 데에 교육의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성격이 변해 칼아트 영화·비디오 스쿨의 학풍은 오락과 상업성보다는 대안과 실험, 대안영화 또는 실험영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트무트 비톰스키 학장은 “판에 박인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나 프로페셔널한 옛날 영화의 틀을 베끼는 것보다 생각이나 비전에서 한발 앞설 수 있는 창의적 능력과 더 넓은 예술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창의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실전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가르친다. 영화와 관계되는 모든 분야를 스스로 다룰 수 있게 해주어야 자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칼아트 영화·비디오 스쿨에 소속된 애니메이션학과도 역시-일반적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상업적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학생들을 철저히 실험적으로 키운다. 프랭크 테리 인물애니메이션학과장은 “칼아트 애니메이션 출신의 특징은 개성을 잘 표현하는 데 있다”면서 “전통적 애니메이션 기법부터 충실히 습득한 학생들이이야말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 첨단·응용기법에도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사고와 창작력을 갖추어야 졸업 후 상업화의 틀 속에서도 자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칼아트 애니메이션학과의 교육철학인 셈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한때 사양산업이 되어가자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운 주력군이 칼아트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전통으로 말미암아 칼아트는 감수성과 창의성을 고집하는 저항정신이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또한 다른 영화학교보다 개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하고 대중적이고 개방적이다. 칼아트 영화학교 400명 가운데 한국학생만 6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한국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학교다. 외국 출신 교수와 좌파적 또는 리버럴한 교수도 많다. 미국 전역에서 금연운동이 확산돼가고 있지만 칼아트의 복도에서는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복도벽에는 스프레이 등으로 갈겨 쓴 여러 형태의 낙서가 가득하다.

칼아트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들은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 등 만화기업들에 취업률이 높다. 칼아트 출신으로는 ‘가위손’ ‘배트맨’ ‘크리스마스의 악몽’ 등을 연출한 팀 버튼(79년 졸업)과 ‘벅스 라이프’ ‘토이 스토리’의 존 래스터 감독 등이 있으며, 미국의 음악전문 케이블방송 ‘M TV’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단편시리즈 ‘이온 플럭스’로 세계에 알려진 교포 애니메이션작가 피터 정도 이곳 출신이다. ‘라이온 킹’ ‘타잔’ ‘인어공주’ 등 국내에 소개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칼아트 출신이 감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4년 전 ‘LA 타임스’는 한 면 전체를 할애한 특집을 다루면서 “디즈니가 지난 25년간 투자했던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은 바로 칼아트를 만들어서 감독들을 배출한 것”이라고 썼다. 육상효 감독, 부산동서대 박종호 교수도 칼아트를 거쳐갔다. 칼아트를 졸업하고 TV시리즈 ‘퓨처 라마’의 제작사인 ‘Rough Draft 스튜디오스’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고 있는 이정환씨(29)는 “본래 만화가를 꿈꿨으나 영화는 물론 TV 인터넷 게임 등으로 수요가 끝없이 확대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매료돼 칼아트에서 공부한 뒤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철저한 시장과 현장 지향성

LA 영화학교들을 돌아보면서 느낀 공통점은 철저히 시장과 현장을 지향하고 현장에 의해 지배되고 교육된다는 점이다. 일종의 산학협동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각 학교의 경쟁력은 흔히 할리우드 현장에서 일하는 인력을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가, 또는 자기네 학교 출신 중 성공한 할리우드 거장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평가된다.

적잖은 수의 학생들이 늘 자신이 만든 작품이 조만간 자신을 벼락부자 또는 고소득자 반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긴장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올해 AFI 스크린라이팅과를 졸업하는 한 학생이 졸업논문으로 발표한 장편영화 시나리오가 무려 78만 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이나 지난해 USC의 스크린라이팅과 졸업생 중 한 명이 65만 달러에 자신의 스크립트를 팔았다는 등의 얘기가 늘상 학생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고 있다. 성공한 동문이나 현업에서 부를 축적한 영화업계 인사들은 출신학교에 서슴없이 거액의 시설을 기증(donation)하거나 강사로서 수시로 학생들과 만난다.

물론 내로라하는 영화 명문학교를 나와도 할리우드 시장에서 살아남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웬만한 영화인치고 이런 영화명문 출신이 아닌 이는 별로 없다. 그만큼 할리우드 시장의 경쟁이 거세다.

따라서 할리우드 영화학교들의 교육시스템도 졸업과 동시에 바로 현장을 움직일 수 있는 실전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대체로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가 끊임없이 현장과 학생들을 연결하며 학생들에게 할리우드 분위기를 파악케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영화학교 내에서도 전문성을 길러주기 위해 연출 스크린라이팅 프로듀싱 프로덕션디자인 등으로 전공이 세분화돼 있으면서도 학과간 또는 전공간 장벽이 없는 점도 특징이랄 수 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며 유기체라는 인식에 따라 서로 다른 전공간 학생들이 하나의 작품제작을 통해 협동하거나 수강 가능한 전공과목에 벽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방식도 교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발적 능동적 준비에 의한 실습 위주이고 교수는 접점을 찾아주는 데 그친다는 점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영화학교의 교육시스템과 교육방식이 당장 한국의 영화학교에도 그대로 도입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 수 있다.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영화교육 기자재를 확충하는 일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교수진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이와 같은 조건을 무시하고 영화 관련 학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영화제작을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체계가 없으므로 여전히 연기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칫 부실교육을 양산할 소지가 있다.

다만 미국 영화학교에 유학해본 경험자들은 이 영화학교들에 대해 덮어놓고 환상을 갖는 것은 금물이라고 충고한다. 한국과는 시장 규모나 산업시스템 교육방식 자체가 다른데 무턱대고 미국 영화학교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현장경험을 갖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할리우드에서 공부할 때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가 한층 분명해질 것이라는 충고다.

칼아트 인물애니메이션학과에 재학중인 고성욱씨(29)는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현업경력을 가진 사람이 미국 영화 명문에서 공부하고 귀국하면 일거에 감독급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런 바탕이 없는 단순 유학생 출신은 한국 영화산업의 두터운 기득권층에 막혀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만한 자리를 잡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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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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